brunch

매거진 허튼 상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TXP Jun 21. 2024

좀 먹은 국가 시스템에 관하여

누가 죄인, 아니 좀 벌레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근대국가 시스템을 기본으로 안고 가는 시대다. 근대국가 시스템은 그 이전의 전제국가나 봉건국가 시스템에 비해 진일보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과거와 비교할 때 그렇다. 요즘 나는 근대국가 시스템가 여전히 유효한가를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다.


우리 땅에 사는 사람들이 서구와 서구를 닮기 위해 천 년 넘던 자기 전통을 버렸던 일본의 강압에 의해 근대를 택한 이후, 백 년이 넘는 시간 힘들게 건설해 온 것이 지금의 근대국가 시스템이다. 분명 노력했고, 전근대와 비교한다면 더 나은 것을 만들었다. 특별히 1987년 이후 시스템에서는 진일보가 있었다.


그러나 2020년대의 오늘을 살면서 보니, 작금의 근대국가 시스템은 아주 제대로 망조가 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가 노력해서 건설한 우리의 국가를 도대체 누가 망쳤는가? 어디서부턴가 좀 먹기 시작했던 것인데, 이제는 너덜너덜해져서 도무지 다시 입을 수 없는 옷이 돼버렸다. 누가 좀인가? 좀을 제거한다고 될 일이 아닌 지경이 아닌가!?


선한 의도로 건설했던 국가 시스템의 근간을 자기 사욕대로 훼손할 수 있는 자들이 좀이다. 그러니 안타깝다. 그들에게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을 맡기고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권한을 부여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함께 하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기를 기대했다. 봉사의 대가로 그들이 받은 것 또한 적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함께"라는 가치를 배신하고 좀이 되었다


좀을 도려내는 것으로는 제 기능하는 국가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스스로 좀 먹을 수밖에 없는 근대국가의 자생적 한계와 운명이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 더디게 좀 먹기를 바랐건만, 이젠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두려울 지경이다. 이런 한탄 속에서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누가 좀인가? 어떤 자들이 좀이 되었는가?


근대국가의 본질적 한계를 참기에 어려운 지경이 되었는데, 왜 아직 새로운 국가 시스템에 관한 논의는 전무한가? 다시 고쳐 쓸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조금 덜 유해한 좀이 있어, 더 나쁜 좀을 몰아내게 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가? 보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용기는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인가? 모두가 좀이 되어 한 조각의 미래도 남기지 않고 다 아귀처럼 갉아먹고 말 것인가? 어느 쪽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