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준비하는 자세, 연애의 연장선만은 아니랍니다
2011년 초봄, 나와 내 배우자는 만 하루에 걸쳐 서울의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교육을 받았다. 우리 말고도 여러 쌍의 예비부부들과 함께였다.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프란치스코회 수사 한 명이 들어와 부부 한 쌍 당 교리책 한 권씩 주었다. 교재의 뒤표지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예식장과 예물, 주고받을 예단과 함, 신접 살림집과 혼수 등 외형에 대한 준비 리스트는 많이 공유되고 있지만 사실 결혼 생활과 부부 관계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준비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결혼'인가, '결혼식'인가.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망상 중 하나는 가정생활은 저절로 돌아가고 그것을 다루는 최선의 책략은 긴장을 풀고 저절로 돌아가게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들이 이런 생각을 맘 편히 한다. 그들은 직장에서 성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출세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안다. 그래서 집에서는 그냥 풀어지고 싶어 하고, 가족으로부터의 어떤 심각한 요구도 부당하게 느낀다.
그들은 종종 자신의 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거의 미신처럼 믿는다. 너무 늦었을 때에야 (아내가 알코올 중독이 되고, 자녀가 차가운 이방인으로 변해 버렸을 때), 많은 남자들은 가정이 다른 모든 공동 사업과 마찬가지로, 그 존재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신 에너지의 끝없는 투입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Csikszentmihalyi, 1990)
전문가들은 이런 환상을 깨고 원만한 부부 적응을 도우며 결혼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태도 및 기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결혼 준비 교육을 추천한다. 일반적으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정민자, 1996)
1) 결혼에 대한 가치관(결혼과 독립, 결혼의 목적, 과정)
2) 배우자의 개인적인 배경과 유래
3) 배우자의 성격
4) 부부 사이의 대화 기술
5) 결혼에 있어서의 각자의 역할
6) 갈등을 해결하려는 기술
7) 재정과 경제 문제
8) 성관계, 임신, 출산, 애정의 문제
9) 종교적 혹은 정신적인 가치
10) 자녀와 부모에 대한 기대와 방식
상기 나열된 주제가 너무 추상적이라면 보다 현실적인 체크리스트가 있다.
결혼 체크리스트
1) 상대방의 급여, 재정과 신용상태를 자세히 알고 있는가?
2) 통장 관리와 재테크 등은 누가 할 것인가?
3) 상대방의 평소 소비 습관에 대해 만족하는가?
4) 각자 지출을 할 때 얼마가 넘으면 상대방과 협의할 것인가?
5) 배우자 가족들은 서로 화목한가? 아니라면 그 이유가 이해되는가?
6) 모셔야 할 상황이 온다면 배우자 부모를 모실 수 있는가?
7) 양가 부모에게 각각 얼마의 용돈을 드릴 계획인가?
8) 우리 부부관계에 양가 부모가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가?
9) 서로의 가족문화(종교, 제사 등)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10) 원가족 방문 시 순서와 횟수에 대한 원칙을 정했는가?
11) 올바른 대화의 기술과 갈등 해결 능력이 있는가?
12) 원하는 자녀 수는? 그리고 자녀 양육은 주로 누가 맡을 것인가?
13) 상대방이 어떤 부모가 되기를 바라는가?
14) 아침 식사 준비 등 가사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
15) 휴일과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16) 건강 검진서를 서로 교환했는가?
17) 갑작스런 임신에 대비한 검진과 치료를 마쳤는가?
18) 출산 조절은 어떻게 할 것인가?
19) 성관계를 원할 때와 원하지 않을 때 주고받는 신호는?
20) 성관계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해주는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싫은가?
인용 : MBC 스페셜 新궁합-결혼 체크리스트
이 모든 항목을 확인하겠다는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결혼식 준비에서 예단과 함을 생략하거나 폐백을 드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체크리스트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부부 서로 간의 합의를 거쳐 넘길 수 있다. 긴 대답이나 확실한 답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필요 없다. 더하여 현재의 합의가 영원한 언약이 아니라 환경이 변하면 바뀔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서로 간 인정하며 대화할 필요가 있다.
이 체크리스트의 가장 큰 목적은 부부 사이에 삶과 생활에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나누고 협의하는 습관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결혼 후 함께 살아가는 동안 위와 같은 갈등사항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인지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아직도 결혼은 단순히 독립적인 두 사람이 서로 좋아서 함께 사는 것 이상인 경우가 많다. 위 체크리스트에도 원가족에 대한 항목이 많은 것처럼 가족과 가족이 얽히는 것이 현재의 결혼이다. 그저 연애의 연장선이 아닌 결혼을 결심했다면 1)경제, 2)건강, 3)부모, 4)자녀 5)생활습관 등에 대해 둘이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