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일부터 시작한 9급 공시생 생활이 2018년 7월 27일 오늘부로 끝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든 다른 직렬 공무원이든 뭐가 됐든 난 언젠가 공무원이 될 거라고 생각해왔어서 그런지, 내가 진짜 공무원이 됐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큰 목표가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허무하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 든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 앞에서 눈물콧물 다 짠 적도 있고, 엄마한테 진지하게 아빠랑 이혼하라고 몇 번씩 얘기한 적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쉽게 꺼내기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다. 정확히 어떤 일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지난 1년 반 수험기간동안 나는 ‘무감흥 인간’이 되었다. 브런치에도 이것에 관한 이야길 몇 번 쓴 적이 있는데, 나는 원래 아주 감성적인 인간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씩 보면서 감동을 느끼고, 여름날 햇살과 새파란 하늘을 사랑하고, 밤길을 걸을 땐 노란 가로등에 감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수험기간 내내 내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나 걱정이 될 정도로, 그런 말랑말랑한 감정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들어도 감흥이 없었다. 새파란 하늘과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나무들을 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서 웃다가도 금방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일쑤였다. 나 같은 공시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취준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물을 쏟을 정도로 크게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불안과 초조, 잠깐의 기분전환 정도인 생활은 마치 감성적 탈수증을 겪는 느낌이다.
5월 마지막 필기 시험을 앞두고 핸드폰 메모장에 이렇게 썼었다.
“지금 나한테 떠오르는 이미지가,
내 자아 1이 있는 대로 너덜너덜 해져서 널브러져 있고
내 자아 2가 걔 팔 한 쪽을 붙잡고
어떻게든 끌어당기는 거..
이 고립 상태도 너무 힘들고 외롭고
진짜 지겹고 미쳐버릴 것 같아
나한테 청춘이라는 게 있긴 한가
...
힘들다 힘들어 힘들어 너무 너무 너무
내가 나를 너무 몰아세우나
미안해 ㅇㅇ야
마음은 급한데 몸이 안 따라주지
나는 진짜 최선을 다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고
나는 도대체 잘하는 게 뭔가 싶고
...”
지금 봐도 저 당시 내가 정말 말그대로 멘탈이 탈-탈 털렸다는 게 느껴진다.
필기 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고, 오늘의 최종합격까지,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으니 내 감성도 조금씩 돌아온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완전히 회복 되려면 시간이 좀 더 흘러야 할 것 같다.
자랑 하고싶지도 않고, 누군갈 위로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이 글을 씀으로써 내 무감흥의 시절이 이제 완전히 끝났다는 걸 내 자신에게 확인시켜주고 싶다. 무너지는 멘탈 수십번씩 다시 붙잡으면서 버텨줘서 고마워. 오히려 더 겸손한 사람이 되어줘서 고마워. 공무원 시험에 합격 했다고 인생 역전 되는 건 아니지만, 나도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 믿음 잃지 않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