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연말, 여행으로도 와본 적 없던 낯선 시골에 갑자기 발령을 받아 오게 되었다. 어렸을 때 신도시에 이사 와서 초, 중, 고 모두 규모가 큰 학교만 다녀본 난, 학생수가 30명이 채 안 되는 학교들이 수두룩한 이 시골 생활이 아직도 많이 낯설고 어색하다. 나는 어딜 가도 적응을 잘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지금은 내가 정말 작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안다.
여긴 영화관도 없고, 선뜻 들어가고 싶은 미용실도 없다. 대형마트도 당연히 없다. 심지어 물가는 여기가 훨씬 더 비싸다. 본가가 있는 동네에선 코인 노래방에 가서 1000원을 넣으면 기본 4곡에 1곡을 서비스로 더 넣어줬었는데, 여긴 1000원에 딱 3곡이다. 이 설명 하나로 이 시골 동네 물가에 대한 설명은 다했다고 보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누려왔던가,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굉장히 자주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의 내 미래에 대한 고민도 저절로 깊어진다.
‘차는 언제쯤 사야 할까, 어디에 정착을 하는 게 좋을까, 내 집 마련은 죽기 전엔 할 수 있겠지?’ 같은 지극히 뻔하고 재미없는 이런 고민들을 하루라도 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고민한다고 당장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열심히 살아서 이런 시골에서 다시는 살지 말자는 생각이 강해진 탓이다. 젊은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나중에 큰 자산이 될 거라며 나름대로 마음을 붙이려 하곤 있지만, 내 성향과 잘 맞는 동네는 아니라는 것이 지금 유일하게 명확한 결론이다.
그때도 똑같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본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의 버스 안에서. 한참을 그런 생각들에 빠져있다 문득 창밖 풍경에 시선이 꽂혔는데, 아득해졌던 정신이 순간 또렷해지면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싶어 졌다. 저 멀리 빛나는 것만 멍하니 좇다 지금 내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창밖에 멋지게 펼쳐진 푸른 나무들도 다 놓쳐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무신경하게 그냥 흘려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가 조금 안타까워졌다. 물론 지금은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기만 해도 충분한 시기지만, 좀 더 좋은 마음으로 즐길 수도 있을 텐데. 현실적인 고민에 빠지는 것만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음악에 빠지는 일도 나한테는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일인데.
그래서 요즘 들어 ‘칵테일 사랑’ 노래 가사에 꽂혔었나 보다.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질 쓰고파, 나는 아직 순수함을 느끼고 싶어, 어느 작은 우체국 앞 계단에 앉아 프리지아 꽃 향기를 내게 안겨 줄...’
내 직장생활 첫 한 달은 그야말로 우당탕탕이었다. 내 상태도 전혀 돌보지 못했고, 바깥 상황 돌아가는 것들 캐치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나는 내가 누굴 만났었는지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가끔 나를 잡아 세워야지.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뛰어가려는 날 잡아 세워놓고, 천천히 무릎 꿇고 신발끈을 다시 묶어줘야지. 신발끈이 풀린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어가다 넘어져 크게 다칠지도 모르는 나를, 내가 지켜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