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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사람 Nov 20. 2019

'암기'와 '폭력'

가장 '폭력적인 방법'이었던 '암기'부터 시작한 이유

  최근에 읽었던 글 중 가장 좋아하는 글귀를 한 가지 꼽으라면 '관심을 먼저 갖고 주식이나 채권, 펀드를 사지 말고 일단 아무거나 눈에 띄는 것을 돈을 주고 조금이라도 사 보아야 관심이 생긴다. 나는 재테크를 외환으로 하는 사람이어서 매일 환율을 체크한다. 당연하지 않을까? 내가 만약 달러가 하나도 없다면 환율을 왜 체크할까?'는 글귀였다.


 그 말은 무엇이든 '내 손에 무엇이든 가지고 있고 일단 해 보아야' 관심이 생긴다는 의미다. 실제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무서워서 이리저리 계산만 해 보면 '판매 마감' 또는 '품절'이라는 글자만이 두 눈 앞에 맞이한다. '에이, 그냥 돈 주고 일 저지르고 볼걸'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후회해도 한참 늦었다. 반대로 무식하게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면 어떻게든 유지 해 성공하든 중간에 포기하든 선택해도 후회는 하지 않은 것 같다.




 돈을 주고 배우는 곳에 가서 수업을 들어보면 항상 하고 듣는 이야기는 '자, 이 부분 ★(별표) 체크하세요'다. 실제 별표 체크 한 문장은 눈에 잘 들어온다. 빨간 색으로 큼지막하게 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아도 그게 '중요한 것'이라고 한 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생각 해 보면 이 '★'표를 어떻게 공부하고 복습해야 하는지는 생각 해 보지 않았다. 집에 가서 복습 할 때 들여다 보라고 하는데 이걸 몇 번 봐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지 오고 가는 이야기도 없없다. 그저 '복습하세요!'다.


 따지고 보면 소통이나 대화 없이 그저 '복습해!'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꽤 폭력적이다. 더 나아가 어릴 때 부터 들어 온 '공부해!'라는 말도 꽤 폭력적인 문장이다. 결과를 담보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하라니! 


 그래서 사춘기 시절 많이 대들면서 하는 이야기가 '공부를 하면 무조건 성적 잘 나와요?'였다. 그렇지 않은가? 어딜 가도 일을 하면 돈을 주는 세상인데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면 점수라도 무조건 잘 나와야 하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선 해야 점수가 잘 나올 것 아니야! 그러니까 공부해!'였다. 그럼 마지못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 공부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오래 할 수 있겠냐만.


 아니, 애초에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손에 꼽힐 것이다. 모두들 나가서 놀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어릴 적이라고 다를까. 전교 1등하는 학생도 성적만큼 관심 있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게임의 레벨업이고 전교 1등 하는 여학생도 BTS의 최신 소식이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다고 비법이 있을까? 아니다. 냉정하게 이야기 하면 '없다'. 그래서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필자가 다시는 실패하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살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던 상황에 처하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 '무엇이든' 지르고 보았었다. 그렇게 지른 것 중 한 가지가 '무식하게도' 배운 문장을 '암기'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故) 최동원 투수처럼 '마 함 해 보입시더!' 정신 상타였다. 그러니 일단 '★'가 붙은 것은 한 번 '외워서' 써 보든, 입으로 이야기 하든 '외운다'가 하루 계획이었다. 그게 다였다.


 거창하게 계획표 같은 것을 종이에 써서 만들어 붙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해 보아야 욕심만 너무 앞서서 잘 지키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 아무것도 없으면 '그건 좀 그래서' 탁상달력에다가 '그 날 배운 문장 그 날 자기 전에 암기하기'만 적어 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무식한 방법을 정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실제 나는 'NO BASE'였다. 뭐를 '알아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틀도 없는 녀석이었으니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 바닥부터 만들어야 응용이든 적용이든 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결국 '머리 속'에 만들어 놓은 구조가 아무 것도 없는데 '문제를 맞춰라', '해석을 해라'는 이야기 듣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틀리면 망신만 남으니 점점 싫을 수 밖에.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다. 포기하든지 아니면 끝까지 버텨가면서 학습하든지.


 그래서 그 날 수업한 것을 모두 외워냐면 그것은 아니다. 욕심 버리고 '★'이 붙은 것만 외웠다. 단, 반드시 지킨 약속이 있다. (생각 해 보니 1년간 스스로의 지킨 약속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미루지 말자'였다. 이 약속은 무조건 지켰다. 




 경험상 (냉정하게 이야기 해) '내일 해야지', '주말에 해야지'라고 하면 거의 100% '안 했다'.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그냥 때려 치워라'라고 자책 하는 것이 속 편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마음 먹는데 가장 좋은 선택지였었다. 머리에 잘 안 들어와도 무엇이든 한 문장이라도 외우고 '주말에 다시 봐야지'가 훨씬 나았었다.


 그런데 암기가 왜 가장 '폭력적인 방법'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암기가 모든 학습 중에서 '가장 하기 싫기 때문'이다. 


 생각 해 보자. 아무 이유 없이 전화 번호 외우라고 해도 열 받는 일인데 하물며 '남의 나라 말'이라니! 게다가 해도 남는 것이 별로 없고 입에서 암기 한 것을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톰'이나 '제인'처럼 줄줄 영어로 말 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글도 가장 하기 싫은 것을 지금 '하라고' 무려 '권장'하고 있다. 


 다행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너무 무식하고 바닥도 없어 하다하다 안 되어서 찾았지만) 당장 아무 이면지 하나 가지고 와서 오늘 배운 것 해석만 써 놓고 입으로 말 해 보거나 써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힌트도 없이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라도' 그 해석에 맞춰서 적거나 말을 해 보면 그게 '자신만의 암기 시험'이었다.




 틀렸다고 스트레스 받지도 않았다. (당연하다. 워낙 모르니 스트레스 받을 것도 없을 정도로 바닥이었으니까.)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어떻게 잘못 적었고, 어떻게 잘못 말로 이야기 했는지 확인 해 보고 몇 번 더 해 보는 것이 나았다. 그러면 생각보다 머리 속에 꽤 오래 남았었다. 그리고 끝났으면? 그냥 그 종이는 구겨서 버렸다. 행여나 꿈에서도 보기 싫어서.


 다만 복습 하려고 책을 열었을 때 그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해서 확인 해 보았다. 돌이켜보면 그게 나름대로 자산으로 변한 것 같다. 적어도 쉽게 무너지지 어떻게든 않고 버텼으니까.  

 



 (경험 해 본 결과) 무조건 '한 번은' 암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남을 수도 머리 속에 그 언어만의 구조 역시 세울 수 없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글쎄, 학습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하기 싫고 '폭력적인' 방법이지만 그것이 가장 빨리 구조를 잡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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