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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Apr 25. 2024

호랑이와 염소

'깊은 인생' 중에서

2024.4.25 목


깊은 인생

216-217쪽 발췌



암호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새끼를 배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굶주렸다. 어느 날 염소 떼를 발견하고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어찌나 먹이를 잡기 위해 용을 썼는지 그만 새끼를 낳고 죽어버렸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던 염소들이 돌아와 보니, 어미 호랑이는 죽어 있고 갓 태어난 새끼 호랑이는 울고 있었다. 불쌍히 여긴 염소들은 새끼 호랑이를 대신 키웠다. 호랑이는 ‘매에’하고 염소처럼 우는 법을 배우고, 풀을 먹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자랐으니 그 새끼 호랑이는 참으로 볼품없는 비실이가 되어갔다.


새끼 호랑이가 사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커다란 호랑이가 염소 떼를 덮쳤다. 염소들은 사방팔방으로 도망갔지만 비실이 새끼 호랑이는 도망도 못 가고 멍하니 서 있었다. 큰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를 보자 놀라 물었다.

“뭐야 너, 염소들과 사는 거냐?”

“매에……”. 새끼 호랑이가 대답했다.


큰 호랑이는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몇 번 쥐어박았지만 새끼 호랑이는 그저 염소 소리로 울 뿐이었다. 큰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끌고 잔잔한 호소로 데리고 갔다. 새끼 호랑이는 난생처음 자기의 얼굴을 보았다. 큰 호랑이는 자기 얼굴을 그 옆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이것 봐. 너와 나는 같지? 넌 염소가 아니라 호랑이다. 알았느냐? 네 모습을 마음에 새겨 호랑이가 되어라.”


새끼 호랑이는 이 메시지를 이해했다.

큰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데리고 동굴로 갔다. 그곳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영양의 고기가 있었다. 큰 호랑이가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너도 먹어라. 마음껏 먹어라.”

그러자 새끼 호랑이가 말했다.

“나는 채식주의자인데요.”

“헛소리하지 마라.”


그리고 고기 토막 하나를 입에 찔러 넣어주었다. 새끼 호랑이는 숨이 막혀 캑캑댔다.

“씹어라 호랑이는 도망칠 수 없는 풀을 먹지 않는다. 달려들어 생명을 잡아먹고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새끼 호랑이는 고깃덩어리라는 새로운 깨달음 앞에서 캑캑 숨이 막혔지만, 그래도 그것을 자기의 몸속과 핏속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올바른 먹이였기 때문이다. 새끼 호랑이의 포효과 터져 나왔다. 최초의 호랑이 울음소리였다.


드디어 호랑의 몸에서 염소라는 과거가 뚝하고 떨어져 나갔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데, 마음속에서 뭔가 툭 떨어졌다.


심학원(문요한 학장님이 운영하는 대안대학원)에서 내가 한 작업들이 이 문장과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냥 흘러간 시간은 없다.

그냥 아프진 않는다.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이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해서 그렇게 애썼구나 싶었다.

깊은 슬픔과도 만나고, 아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다.


이제는 평안과 조금 만났다.

완전히 만날 순 있을까, 그건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방향일 것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기로 선택한 사람으로 삶이라는 파도에 울렁이며 살아갈 것이다.


예전과 다른 건, 이제 그 파도에 몸을 맡기려 한다는 것이다.

그땐 파도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더랬다.

그래서 힘들었지.




오늘 오전 11시 5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깊게 만난 책.

구본형 선생님의 '깊은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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