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습작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티스 May 17. 2024

행복과 행운

2024.5.17 금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라디오에서 이 구절이 나왔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 생각했다.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는 사람일까? 내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일까? 문득 내가 무언가 말하고 싶을 때 그 '대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 슈퍼비전에서도 관련한 내용이 나와서 기록해두려고 한다.


 어떤 분들은 지식적인 이야기는 잘한다. 사실, 정보를 전달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 자신의 모습을 전달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혼자서 생각하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과 실제 '자기'의 모습에 차이가 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일상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어차피 말에서 공감 못 받을 텐데.'

'어차피 말해도 안 들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내가 편안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충분하지 않을 때,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말해봤자 공감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중심에 자리 잡으면, 관계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예를 들면, 엄마한테 오늘 일상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을 때,

'그랬구나, 그때 힘들었겠네?'라든지 등의 친밀감을 느끼는 대화를 원했는데

막상 '밥 먹었니? 들어가서 자.'라는 일상적인 말을 들으면 대화를 거부하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특정한 몇몇의 사람들은 이러한 패턴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예(다소 과장이 있지만)

여자친구에게 전화 왔을 때, 오늘은 꼭 "사랑해"라는 애정을 확인하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밥 먹었어?"라는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지게 되면 뭔가 불만감이 올라올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일상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인지하면 요구할 수 있지만, 안타까운 건 뭔가 불편한 게 그게 뭔지 모르는 경우이다.


결국 관계에서 더 원하는 건 얻지 못하게 되고 더 외로워진다. 외로움이 깊어지는 패턴이다. 


눈앞에 그 상대는 내가 원하는 걸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냥 '밥 먹었니?' 물었을 뿐인데, 싸늘한 반응으로 놀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후 상대의 반응은 어떻게 될까? 


스스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경험을 일상에서 할 수 있었다면 어떨까.


그래서 요즘 '수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비효율적인 시간이라 생각했다.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수다는 왜 필요한 걸까 싶었다. 


최근 몇몇 경험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수다'는 일상에서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욕구'를 알게 되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도 알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되기도 한다.


'저 사람은 이럴 때 이런 것들이 중요하구나!'

세상의 다양성을 맛보게 되기도 한다. 수다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는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선물처럼 나와 꼭 맞는 사람들을 만나야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러한 '행운'을 바랐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표현하고 알아가며 친밀감을 느껴가는 이 소소한 시간들이 사실은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시간이 참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