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부터 마음을 사로잡은 책
2024.12.12 목
4월부터 12월까지, 평일 오후에는 학습상담사로 활동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 그중 가장 열심히 한 학생과 도서관 체험을 왔다. 웹툰 전문 도서관이라 학생은 만화책을 뽑아 들었고, 나는 눈에 띄는 책 하나를 골랐다.
읽고 쓰는 것은 내 생활인 줄 알았거늘, 8월 이후 책을 거의보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다. 딸 말로는 엄마가 쓸 만큼 써서 마음속 말이 남아있지 않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랬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살고 있다고 느껴졌다.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재미에도 흠뻑 빠졌다. 실컷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야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내 글은 아직도 누구에게 보여주기보다는 나를 위한 글이다. 내 마음을 가지런히 하기 위함이다. 어떤 때는 타인의 기록들을 보는 것이 내 마음에도 도움이 된다.
오늘 집어든 책이 그랬다.
프롤로그에서 마음을 훅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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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능력을 상실한 대신 나는 ‘성실’이라는 능력을 얻었다. 말 그대로 나는 끊임없이 읽고, 듣고, 보고, 찍고, 경험하고, 배우는 부류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인간 부류에 속한다. 한 선배가 농담처럼 말했다.
“넌 나보다 열 배를 더 열심히 살지만 어차피 열 개 중 아홉 개는 잊어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나와 같은 분량을 살고 있는 거야. “ 나는 선배의 말일 옳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선배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잊어버린 아홉 개가, 그러니까 내 머리가 ‘기억’ 하지 못하는 아홉 개가 내 몸 아딘가에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다. (모든 요일의 기록,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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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인가 싶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잘 잊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랬다. 기억하지 못하는 거였다. 하지만 몸의 자국으로 남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글로 매끄럽게 그 느낌을 정리할 수 있다니…..
역시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 마음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이런 표현으로 정갈하게 쓸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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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그 책은 ‘어떤’ 부분이 좋았던 책이라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그러니까 ‘어떤’이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희뿌연 구름처럼, 뭔가, 어딘가, 좋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만 남아 있는 것이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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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이 부분도 폭풍공감했다. 나도 그랬다. 구체적으로 뭔가 물어보면 기억나지 않는다. 주인공 이름도 그렇고, 어떤 장면도 그렇다. 하지만 느낌은 남아있다. 이렇게 핀셋처럼 내 마음을 짚어내다니….
그래서 책을 읽나 보다. 다른 이의 문장에서 내 마음을 발견할 때 그 반가움이란.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서 술자리에 가지 않고, 도서관으로 오게 되나 보다. 나에겐 이 즐거움이 훨씬 더 큰가 보다. (물론 술자리도 좋아한다. 몇 달에 한 번씩 가는 전제하에 말이다.)
어떤 부분은 눈물 나게 부러웠다. 남편도 책을 지독히 좋아해서 집안 빼곡히 책장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침대도 특별제작해서 눈뜨고 손만 뻗으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울 대목이 아닌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슬픔은 상실의 감정이 아닌가. 나는 함께하는 그 부부의 공동 취미가 너무나도 부러웠나 보다.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이기에.
지난 몇 년은 수플레케이크처럼 부풀어 오르는 시간이었다면, 내년은 팬케이크보다 더 얇은 크레페같이 침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깥을 시선이 향해있었다면, 한 동안은 또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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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내가 껴안을 순 없어도,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다.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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