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여짐과 불안 사이
2025.7.1. 화
지난 금요일, 박사과정 지도(예정)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우리 학교는 올해 박사과정을 처음 개설한 터라, 모든 제도가 이제 막 만들어지는 중이다. 교수님도 학생들도 이러한 혼란을 함께 하고 있다.
박사과정은 수업과 논문을 병행해야 하는데, 지도교수님이 정해지지 않으면 그만큼 준비 시간도 늦춰진다.
사전 컨택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나로선 그것이 다행이었다. 한 학기를 보내며 수업, 동아리 등 여러 접점에서 교수님들을 지켜볼 수 있었고, 평생 함께할지도 모를 지도교수님을 조금 더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관찰하고 고민한 끝에, 내 생활지도 교수님이셨던 분께 조심스럽게 컨택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함께 컨택했던 동료 선생님께는 명확하지 않은 답변을 주셨다고 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연대’라는 단어에 유난히 마음이 간다.
가정 내에서 단단한 결속감을 경험하지 못한 탓일까,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관계에서는 믿음과 신뢰가 중요하다. 함께 컨택했던 동료 선생님은 몇 번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눈빛과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고, 서로를 향한 신뢰가 싹텄다.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은 알아보게 되는 법이다.
교수님에게서도 그런 편안함을 느꼈다. 언어 선택, 말의 흐름, 눈빛 모두에서. Zoom으로 처음 만났을 때, ‘이 분이 내 지도교수님이면 좋겠다’는 감정이 들었다. 결혼을 선택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희미하지만 선명한 ‘확신’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밀려온 감정은 ‘무거움’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나는 과대포장 과자처럼 속은 빈 사람인데, 들키면 어쩌지?”
“나는 진짜가 맞을까?”
상대에 대한 신뢰가 생기자, 나 자신에 대한 신뢰는 흔들렸다.
나는 ‘잘’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잘’하지 못할까봐 불안해지는 사람이다.
이번 방학 동안 논문 계획서를 써야 한다.
교수님이 나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여온다.
“나는 정말 그 증명을 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지금의 나를 무겁게 하고 있다.
나는 항상 애쓰며 살아왔다.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고,
가정 내에서 수많은 일들을 해내기 위해 애쓰고,
상담사로서도 내담자에게 좋은 상담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이제는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으로서도 ‘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엔 또 다른 감정이 웅크리고 있다.
어릴 적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마음.
동생이 셋이었고, 나에게 엄마는 1/4이었다.
그래서 내가 공부라도 잘하지 않으면, 그나마의 엄마마저 잃을까봐 걱정했다.
어릴 적 엄마가 “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했을 때, 정말 그렇게 믿었다.
나는 엄마의 ‘진짜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안 깊숙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번 교수님과의 만남에서도, 그 두려움이 확 올라왔다.
혹시 내가 버려지면 어떡하지?
혹시 나에게 실망하게 하면 떠나실까?
그 자리에선 솔직하게 내 두려움을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그것이 자신의 이슈이기도 하다고, 조심스럽게 나누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교수님이 될 그분도, 박사과정 제자를 처음 맞는 상황이라 낯선 과정을 겪고 계시다는 걸.
이 관계, 우리는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관계’, ‘친밀감’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내게, 이 시작은 쉽지 않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어떤 감정들이 올라올지 예상된다.
이제는 예전처럼 압도당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받아들여졌다.’
(물론 아직은 잠정적이고, 확정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이 ‘받아들여짐’의 감정을 곱씹는 중이다.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다.
이것은 내게 여전히 어려운 감정 과정이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몇몇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중이다.
나를 안전한 곳에 두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