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마케터
“OO 편집자, 자네가 만든 책이 주간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들었어! 이건 우리 출판사에서 유일무이한 일이야!“
주간 베스트셀러 100위에 든 그 책은, 내가 기획한 책도 아니고 그렇게 열심히 만든 책도 아니었다. 단지 운이 좋아 100위 안에 들었고, 그리고 저자가 자신의 책을 여기저기에 알려준 탓이었다. (이렇게 말은 해도 내심 기분은 좋았다.)
그때부터였다. 책이라는 것은 저절로 사람들에게 읽히는 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게. 그리고 한편으로 제아무리 어떤 책이라도 책을 알리면 일단 팔리는구나, 하는 점도. 왜냐하면 그 책은 팔릴 책이 아니었고, 팔려서도 안 되는 책이었다…(?)
그 책을 편집하며 느꼈던 점은 ‘내용이… 너무 아쉽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내용이 너무 아쉬웠다. 교정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동의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저자와 면밀히 대화하며 교정을 했느냐고? 전혀 아니다. 한 달에 3-4권의 책을 만들어내야 했던 현실 때문에 오타만 없으면 넘어갔다(당당).
음, 아니 잠깐만. 한 달에 3-4권의 책을 만들었다고? 그렇다. 저자에게 제작비를 받아 그 돈으로 책을 만들고 인건비를 충당하며, 심지어 초판에는 인세도 주지 않는 악덕 출판사였다. 그러니 한 달에 많은 책들이 나오면 나올수록 출판사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였다. 책이 팔리지 않아도 말이다.
주간 베스트셀러 100위에 2주, 3주 연속으로 내가 만든 책이 이름을 빛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물었다.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을 이렇게 잘 팔 수 있냐고! 그래서 나는 없는 일도 만들어내 설명했다. 자, 내가 올린 블로그입니다. 유입이 아주 많군요. 소개글은 어떻고요. 독자 타깃도 명확하네요. 허세였고, 의미 없는 말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지금. 최근에 만든 책이 주간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거뜬히 들었다. 또 허세를 시작해 볼까. 이제는 책이 나오기 전에 독자들에게 기대감을 준다. 그리고 흥미로운 주제 몇 개를 꼽아 텍스트를 소개한다. 어떻게 소개하느냐고. 이건 영업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허풍 한번) 그리고 신간이 나오면 멋지게 소개를 한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오랫동안 쌓아 온 출판사의 브랜드 힘 덕분이다. 무얼 만들어도 책을 사주는, 출판사를 신뢰하는 독자들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신간이 출간되면 최소 10위 권 안에 든다.
어제는 타 출판사 편집장과 통화를 했는데 “거기 출판사는 한 권, 한 권 출간될 때마다 임팩트가 있게 꽂힌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내가 만든 책도 아니고, 내가 기획한 책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책을 소개하는 일에 일조한 탓에 “소개하느라 힘들었어요” 하고 또 한 번의 허세를 부렸다.
이전 출판사는 안 되고, 지금 출판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1년에 100권 이상의 책을 낸다고 출판사가 흥하는 건 아니었다. 한 달에 1권을 출간해도, 아니 심지어 책을 한 권도 출간하지 못하는 달이 있어도, 중요한 건 1권의 책을 내도 메시지가 명확한 책을 기획하고 출간해야 한다는 것, 이것을 배웠고 배우고 있다.
한마디 말을 해도, 하나의 책을 만들어도, 하나의 문장을 써도, 한 번의 인생을 살아도, 누군가와 한 번의 만남을 가져도, 하나하나가 임팩트 있는 삶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 일이 주어진다는 말처럼, 작은 일 하나하나에 임팩트 있는 태도로 살아간다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급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