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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Jan 12. 2024

마감 시간

여기는 회사, 깨방정(표준어: 개방정)을 떨며 “팀장님, 팀장님.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이 책이 4월에 마감이니 지금 여유 있을 때 미리 표지를 작업해 두는 건 어떨까요?” 그러자 팀장님 왈. “음, 마감 시간이 다가와야 집중이 잘 돼요. 지금은 스케치 정도로 하고, 한 달 전부터 작업하는 게 좋겠어요.” 자리로 돌아와 다이어리에 받아 적었다. ‘OO팀장님, 마감 시간이 다가와야 집중이 잘 됨.’


그래도 ‘마감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뿌듯함을 느꼈다. 우리가 함께 작업하고 있는 이 책의 이야기는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2년 2월 3일, 원서로 1,500쪽 정도인 번역 초고를 받아 교정을 보기 시작했는데,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약 12,500쪽 정도 되는 분량이었다. 물론 지금도 초보 편집자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 큰 분량의 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는 초초초 초보 편집자였다.


당시 마감 목표는 2023년 3월이었다. 자, 그러니까 약 1년 뒤에 마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글을 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2023년 3월, “안녕하세요, 유동운 편집자입니다. 분량이 방대한 책이라 번역과 편집에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해 출간기한 연장(12개월)을 신청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마감 시간은 미루어졌고, 2024년 상반기까지는 꼭 책을 마감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다만 내가 스스로 마감하려고 했던 시간은 12월에서 1월이었다. 하지만 회사 내부 사정으로 다시 4월까지 미루어졌다. 이상하게 시간이 늘어나니 글이 읽히지 않았고,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1월에 마치는 계획을 따르면 벌써 전체 원고를 두 번 읽고도 시간이 남아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00페이지 남짓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시간이 늘어나니 꼼꼼하게 보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여유가 생겼는지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어서 끝내야지’ 하는 의지와 마음이 사그라지고, ‘천천히 해도 되겠네’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여유를 넘어 나태로, 나태를 넘어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고개를 계속해서 떨구게 되었다. ‘어서 끝내야지’ 하는 마음보다 ‘아몰랑’ 하는 나 자신을 발견. 그러다 팀장님의 말이 귀와 마음에 꽂혀 되새기게 되었다. “마감 시간이 다가와야 집중이 잘 된다.” 마감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인지, 아무래도 집중하기를 포기했다. 다음 월요일에 다시 출근하게 되면 마감 시간을 두고, 그 마감 시간을 중심으로 계획을 다시 짜야겠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어쩌면 마감 시간에 있는지 모른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생각할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플랫폼 롱블랙은 24시간 동안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사람들은 그 시간 안에 글을 읽으려 한다. “24시간만 공개합니다.” 이 글을 읽은 나는 한정된 시간 안에 어떻게든 그 글을 읽으려 움직인다. 이게 바로 인간이다. 이처럼 인간은 삶이 유한하다고 느낄 때,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이 소중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하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행동에 옮긴다. 성경은 장례식에 가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한다. 장례식에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절실히 경험하고,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또한 어떻게 살면 좋을지 잠시라도 고민하게 된다.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삶에 집중하게 만든다. 죽음이라 하니 너무 거창한가. 마감 시간은 우리가 오늘, 그리고 지금, 적어도 이번 한 주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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