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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Apr 17. 2024

퇴사한 선배가 가장 후회하는 것

회사를 먼저 떠난 선배에게 조언 하나를 구했다. “선배, 퇴사하면서 가장 후회하는 게 무엇인가요?” 선배는 컴퓨터 앞에 앉아 무기력하게 지냈던 날들이 가장 후회된다고 대답해 주었다. 이왕 회사에서 일해야 한다면 의미 있는 일을 찾으라고, 가능하다면 즐거운 일들을 많이 해보라고, 적어도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흘려보내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여 말해 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오랜 시간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마다 나는 종종 그 선배의 말을 떠올린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자, 그냥저냥 하루를 보내지 말자, 의미 있는 일을 찾자, 할 수 있다면 즐겁게 일하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려고 하자. 적어도 회사를 떠날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하루하루에 마음을 다하자. 나도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즐겁게 일하라고, 적어도 나는 그런 나날을 보냈다고 떵떵거리며 자랑하고 싶다.


어릴 때 내가 꿈꾸었던 직업 중 하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PD였다. 1박2일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PD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영상 편집을 배웠다. 짤막한 영화도 한 편 만들어 보았다. 아마도 제목이 ’슈퍼스타‘였던 것 같다. 방황하던 어느 한 청소년이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며 슈퍼스타가 되는, 뻔하지만 자전적인 단편영화였다. 이 단편영화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학교에 남아 영상 작업을 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누구도 학교에 남아 영상을 작업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저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다. 요즘에도 종종 영상 작업을 해볼까, 고민한다. 유튜브에 영상을 간단하게 몇 개 만들어 올리는 재미를 다시 찾아보아야겠다.


한편으로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좋아했다.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 아무 말이나 쓰는 일, 지금처럼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심지어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독백과 같은 그런 글을 쓰며 사색하기를 좋아했다. 한때 ‘사상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가질 정도로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쓰는 일이 즐거웠다. 그렇게 쓴 글들을 모아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책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재밌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다 보니 어느덧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요즘이다. 어릴 적 내 꿈에 출판사 편집자는 리스트에도 없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내게 물었다. ‘자,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슨 일을 즐거워하는가?‘ 질문의 끝에 나는 강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남겨 두었다. 아무래도 문자를 확인하고 답장을 주지 않는 것 같아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강 선생님, 무례하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생님 원고를 받고 싶어요.“ 강 선생님은 내게 “아직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기 전에 강 선생님은 내게 여운을 남겼다. “마음이 움직인다면 한번 써볼 수도 있고요.“


마음이 움직이면 글을 써 준다는 강 선생님의 말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 솔직한 대답인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움직이게 만들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강 선생님과 전화를 끊은 뒤, 나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글을 쓰는 일? 책을 만드는 일? 책을 기획하는 일? 잠시만, 일에 국한하지 말고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고민하다 두 글자가 떠올랐다. 퇴근. ‘그래, 난 지금 퇴근이 하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왜인지 오늘은 쓸모없는 일들을 많이 했지만, 나름 주체적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더니, 스스로 퇴근해도 좋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퇴근하다 보면 회사를 그만두는 날에도 웃으며 퇴사할 수 있겠지. 이렇게 살다 보면 인생을 떠나는 날에도 여운이 덜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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