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진 Jul 15. 2021

너를 처음 만난 날

예진 1) 온전히 나만 의지하는 작은 존재

                                                                                                                                           

내 나이 삼십 대 중반, 내 인생의 전환점은 너를 만난날부터다. 이십 대 중반 함께 사는 고양이가 생겼다. 온전히 나만 의지하고 나만 따라다니는 작은 존재.



내겐 나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고 일도 동물과 함께하는 여동생이 있다. 자취방을 이사하면서 고양이를 잠시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 한다는 공무원 준비와  짬짬이 논술 강사 일을 하며 빠듯하게 살고 있었다. 시간도 돈도 딱 1인분의 삶을 살던 내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니. 가장 큰 문제는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다. 마지막 강아지가 떠나고 난 뒤 다시는 어떤 반려동물도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십 대를 보냈다. 내게는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이 있었고 이유 없이 의심이 많던 시절이었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모든 게 부족했다.



' 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하는 날도 있겠지'

' 사료값에 병원비도 만만치 않을 거야'

' 집을 비우는 것도 항상 마음이 쓰이겠지'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늘 최악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갈 곳 없는 생명을 외면하지 못했고 대전에서 천안으로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 고양이는 코리안 숏헤어라고 불리는 노란 무늬였다. 동생 집에서 낯선 사람의 방문에 겁에 질린 채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 침대 아래로 잠깐 눈을 마주친 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고양이는 고속버스에서 내내 조용히 있다가 이동장 안에서 똥을 눴다. 원망스러웠다. 터미널에서 집까지 오는 길에 이해한다고 말해주시는 택시기사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최악의 하루였다.




똥 묻은 고양이를 씻기고 난 뒤 그제야 내 몸은 땀 범벅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도 모르고 이미 고양이는 의자 밑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작은 원룸에 잠시 누웠는데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렸다.  피곤한 몸으로 주변을 뒤져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으니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난생 처음 들어본 골골 송이 었다. 너의 피곤함과 힘듦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기적이었던 나, 그렇게 느슨한 진동소리와 함께 치즈는 나의 고양이가 되었다.                                                





<이미 지나간 어떤 날>

- 반려동물 에세이, 매주 목요일 만나요

* 언니 예진 @iyj1120

* 동생 수진 @__am.09_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