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 2) 초보집사지만 최선을 다해볼게
고양이는 조용한 동물이다. 치즈는 낮에는 편안한 구석을 찾아 잠들었고 밤에는 내 무릎에 올라와 마냥 나를 바라봤다. 가끔 원룸을 대각선으로 혼자 뛰어 다니고 키보드 앞에 와서 딩굴거렸다. 식사와 화장실만 케어해주면 그럭저럭 잘 지냈고 무작정 두려워했던 과거의 내가 무안했다.
치즈는 동생이 이사를 하고 자리를 잡으면 데려가기로 했지만 곧바로 사랑에 빠진 나는 이미 평생가족이 되었다. 동글동글 얼굴에 보들보들한 털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동물 친구들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한꺼번에 불러왔다. 가족 없이 혼자 지냈던 적막한 원룸은 온종일 머물고 싶은 포근한 공간으로 변했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양껏 가져다줬던 치즈에게 문제가 딱 하나가 있었으니 잠들만한 새벽이 되면 베란다에 가서 야옹거렸다. 고양이는 처음이었지만 나는 내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
초보집사였던 나는 고양이가 신나게 뛰어다니는 용어를 우다다라고 부르는 것도 몰랐고 고양이 사료에 등급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티셔츠 하나를 사도 쇼핑몰마다 돌아다니며 최저가를 찾았고 편의점의 가장 저렴한 김밥을 먹어도 살만하다고 생각했으니 당연히 치즈 사료도 저렴하고 급이 낮은 사료가 배송되었다.
발톱을 주기적으로 깍여야 하는 것도 몰랐고 스크래쳐라는 것을 둬서 스트레스 해소를 도와줘야 하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치즈가 키보드 주변에서 딩굴었던 것은 고양이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데 작은 원룸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책상 밖에 없었다. 잦은 이사로 내 방에 가구는 책상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무지했으면서 당당했다.
치즈를 아기 고양이때부터 키웠던 여동생에게는 룸메이트가 있었고 치즈는 지금까지 쭉 다른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 시끌벅적하게 사람 두명과 고양이 친구와 살다 내게 온 것이다. 갑자기 혼자가 된게 힘든 것이라고 판단하고 몇일 동안 고양이 분양 글을 확인했다.
그러다 한밤중에 갑자기 보게 된 고양이 분양글을 보고 서울로 무작정 출발했다. 치즈가 우리 집에 오고 딱 한달 정도 뒤의 일이었다. 고양이를 분양하는 내 또래의 남자는 취직을 하면서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게 되어 고양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데리고 가기로 했던 고양이 옆에는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가 한마리 더 있었다. 막상 실물로 보니 고양이는 사진에서보다 컸다. 뽀얗고 순하게 생긴 치즈와 다르게 러시안 블루 종을 처음 본 내 소감은 근엄한 아저씨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 둘째 고양이는 기존에 있던 고양이보다 어린 고양이를 입양한다. 새롭게 가족이 된 고양이는 치즈보다 몸집도 컸고 나이도 더 많았다. 회색 빛깔의 점잖던 고양이는 집에 오는 내내 괴상한 소리를 냈고 천안으로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내 블라우스를 찢어 놨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처음으로 하악질이라는 것을 목격했다. 날카로운 이빨이 회색 얼굴 사이로 보였고 치즈가 다가오면 금방 한대라도 칠 것처럼 주먹을(실제로는 앞발) 들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고양이
낯선 장소
그게 얼마나 스트레스가 될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잘한다고 믿고 있었던 내게 무식하고 용감하기만 했던 나의 두번째 고양이 쇼키와의 첫 만남이었다. 한마리도 겁냈으면서 이미 내겐 책임져야 할 고양이가 둘이 되었다. 처음보다 더 난해하고 어려운 미로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그나저나 그래서 치즈의 문제가 해결되었냐고? 한동안 새로운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이던 치즈는 곧 다시 베란다에서 울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밤에 운다. 친구가 필요한게 아니었구나...... 출구가 없는 집사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미 지나간 어떤 날>
- 반려동물 에세이, 매주 목요일 만나요
* 언니 예진 @iyj1120
* 동생 수진 @__am.09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