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 3) 내게는 애착 고양이가 있다
세상에는 구겨진 옷에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고 남의 옷에 묻은 먼지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다행히 전자에 속한다. 키 크고 덩치 좋은 검은색 옷을 주로 입는 캘리그라피 작가를 본다면 그게 나다. 패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림질이나 보풀 제거는 평생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나도 삼십 대 중반이 되었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제법 선선해진 날씨에 베란다 문을 모두 열고나니 바람이 들었다. 치즈도 괜히 베란다에 나가서 창밖을 구경하고 미루고 미루던 대청소를 했다. 아기의 장난감은 바구니에 넣어서 정리하면 그만이지만 고양이 털은 매일 쓸고 닦아도 모서리마다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청소기를 아침저녁으로 돌려도 뿜어져 나오는 털을 따라갈 수 없다.
치즈와 쇼키와 함께하고 난 뒤에는 유독 나를 ‘쯧쯧’하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늘었다. 치즈는 노란 털과 하얀 털이 섞여 있는 고양이고 러시안 블루 쇼키보다 털이 더 많이 빠진다. 만지기만 해도 털이 집 안으로 흩어지는 게 보인다. 청소기는 물론 매일 방을 닦는 부지런함(?)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털은 내 검은 옷 사이로 송송 박힌다. 털은 옷에 붙기도 하지만 섬유 사이로 박혀 있어서 돌돌이로 털을 제거하는데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등 뒤에서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진다.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하면서 책상에 항상 서예 붓과 모포(검정 천)을 깔아 놓는다. 종이 위에 앉아 있는 것은 집사로써 애교스럽게 봐줄 수 있다. 하지만 검은색 모포에는 붙은 털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캘리그라피 수강생에게는 수업 시간 대신 고문의 시간을 만들어 준다. 집으로 수강생을 부르는 일은 이제는 더 이상 없지만 작업실이 없을 때에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고양이들과 살고 있는 내게는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있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는 수건에 붙은 털들이 얼굴에 붙으면서 종일 간지럽다. 고양이와 오랜 시간 함께 한 나는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결혼을 하고 함께 살게 된 반려자는 그것을 처음에 퍽 어색해 했다. 결혼을 하고 안방은 고양이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했었다. 꽤 오래 방에 들어오기 위해 노력하던 고양이들은 포기하는 듯싶더니 가끔 문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금지 구역은 2년 후에 풀렸고 이제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고양이는 털 빼고 완벽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털이 없는 스핑크스라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몇 차례 털을 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은 어떤 폭신한 이불과도 바꿀 수 없다. 내겐 고양이의 털마저도 완벽하게 느껴진다. 잠결에 닿았을때의 포근한 느낌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애착 인형, 애착 이불, 애착 베개 대신 내게는 애착 고양이가 있다.
그래도 반려동물 털 깔끔 제거 된다는 건조기는 갖고 싶은 것을 보니 이제 주부가 다 된 것 같다.
<이미 지나간 어떤 날>
- 반려동물 에세이, 매주 목요일 만나요
* 언니 예진 @iyj1120
* 동생 수진 @__am.09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