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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진 Dec 20. 2018

아무 것도 없이 식당을 시작하려고?

오픈 전 이야기 

결심을 한 후 곧장 한 일은 가게 자리를 정하는 일이었다. 매의 눈과 민감한 촉으로 목이 좋은 숨겨진 자리를 철저히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말하면 보기 좋겠지만, 사실 자리 선정은 우연과 끌림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여러 가게들을 보러 다녔다. 비어있어 권리금이 없고 엄청 넓은 가게, 권리금이 좀 세지만 점심에 회사원들이 많이 오는 길에 있는 가게, 새로 지은 건물이라 깨끗하고 권리금이 없는 가게.... 그 모든 가게가 마음에 내려앉지 않던 중에, 문을 닫은 작은 카페를 알게 되었다. 아기 엄마가 카페를 했다가 몇 달 못하고 내놓았는데, 내놓은 지 시간이 지나 권리금이 좀 저렴하다고 했다. 공사 값도 안 나올 거라고.


휑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 보이는 길에 있는 아주 작은 가게가 계속 떠올랐다. 그 작은 가게가 처음 시작하는 서툰 우리에게 딱 맞게 느껴졌던 것일까. 며칠 고민하고 계약을 해야겠다 싶어 부동산에 갔는데, 그새 계약이 됐다는 것이다. '아... 여기가 딱이었는데.'


아무래도 아쉬워서 그 동네 오피스텔을 다 돌아보면 뭐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하나의 오피스텔 건물에 3~4개씩 있는 부동산을 대략 10개 이상 돌아다니면서 묻고 다녔다. 그러던 중에 그 카페 바로 옆 옆 자리에 있던 이불 가게를 내놓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 가게의 바로 옆집 부동산을 통해서. 다른 부동산에 공유하지 않았던 매물인 듯했다. 이상하게 다른 부동산을 가도 그 부동산에는 발길이 가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다니! 계약을 뺏긴 카페와 같은 건물에 같은 크기의 공간이고 또 같은 길에 위치한 가게인지라 큰 고민 없이 바로 계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길 이런 느낌


계약을 하고서는 본격적으로 가게 영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구청에서 영업허가증을 받고, 사업자등록을 하고, 인테리어를 시작하고, 대출을 받고... 사실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리가 가진 돈은 400만 원이 전부였다. 4000만 원으로 가게를 시작해도 대단하다 하는 판국에 400만 원이라니...!  그 외의 비용은 모두 빌렸다. 부모님께 빌리고 형에게 빌리고 친구에게 빌리고 은행에게 빌리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뻔뻔하고 무모했다. 그만큼 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일단 출발해버린 기차에 올라탔기에 어쩔 수가 없었을까? (지인에게 빌린 돈은 오픈 한두 달 후에 대부분 다 갚을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갚을 거라는 확신 없이 빌렸는데 불행 중 정말 다행이었다)

  

영업 허가 신청하는 나와 대출 상담 받는 W (대출 받는 뒷모습은 꼭 찍어놓고 싶었다...)





오픈 준비기간 중에 W가 돈가스를 배우러 부산으로 갔다. 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던 분을 통해 부산에 5개 매장이 있는 일식 프랜차이즈 전문점 주방에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내려간 길이었다. W가 패스트푸드점이나 호주 일식집에서 일을 해보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일을 했던 건 아니었기에 돈가스라는 음식이나 일식 음식점 주방에 대해서는 배움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돈이 없는 젊은 친구에게 살짝(공짜로) 가르쳐주는 걸로 이야기가 되어있다고 알고 찾아갔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일식 전문점 대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프랜차이즈 식당을 차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기의 기술을 가르쳐줄 이유가 없었다.  


처음이었고 돈이 없어서 기술을 정식으로 배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젊은 친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의 권유와 소개를 통해 시작한 일이었기에 뭔가 알아서 다 될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시작했던 상황인지라 마냥 도움과 자비만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W는 힘없는 을이 되어 묘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만 보다가 축 처진 어깨로 다시 올라왔다. 큰일이었다. 오픈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그동안 돈가스를 한 번도 안 튀겨볼 수는 없었다.


이 이야기를 W가 호주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했더니, "집에서 미니 튀김기에라도 튀겨봐"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부터 다년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치킨과 감자튀김을 튀겨낸 경력이 있고, 일을 정말 압도적으로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친구였다. 그래서였을까? 그 조언은 바로 효력을 발휘했다. 우리는 바로 중고카페를 통해 미니 튀김기를 구입했다.


W의 친구 중에 또 한 사람은 정육 일을 오래도록 했었고 흔쾌히 돼지 등심을 직접 구해와서 손질하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이후로 집에서 돈가스를 계속 튀겨보았다. 조리대도 없는 좁은 주방에서 이리저리 비집고 앉아서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묻혀서 튀기고 또 튀겼다. 튀긴 돈가스를 둘이 다 먹지 못하니 이김에 친구들을 불러서 먹였다. 친구들은 먹으면서도 맛과 퀄리티를 잡아가는 길을 함께 고민해주었다. 고기의 밑간 정도, 튀김에 적정한 온도를 찾는 일, 튀김옷이 너무 두꺼워지지 않게 하는 일, 튀김옷이 고기와 자꾸 분리되는 일은 계속 튀기고 먹는 일을 함께 반복하며 알아나갔다.

 

지금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돈도 기술도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가 무모한 도전을 했다. 백종원 아저씨가 본다면 이 상태로 음식점을 오픈하려고 했냐고 천인공노할 모습일 수도 있다. 이 도전이 망하지 않았던 이유 중 팔 할은 갖추지 못했던 우리를 도운 곁의 사람들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도움을 얻는 일이 민폐라는 이름으로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게 다가오는 세상에서 우린 사람의 가면을 쓴 천사들의 자애로운 손길 덕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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