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난 돈을 생존비 성장비 사치비로 나누었다.
이 개념을 나누기 전에는 책 한 권을 살 때도 손을 벌벌 떨었다.
생존비도 없는 내가 책쇼핑이라는 사치를 한다고 느껴졌다.
결과적으로는 그 책 몇 권의 나를 성장시켰고 나를 살렸다.
생존비 성장비 사치비로 나누어서 어떻게 가난을 탈출했나?
너무 뻔한 이야기라 궁금하지 조차 않을 것 같다.
누구나 하는 말이며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냥 그런 말이다.
사치하지 말고 성장해라.
그러면서 성장비에 대해 수익에 직결되는 성장비가 있고,
지식을 늘리는, 건강을 늘리는, 시야를 넓히는 성장비 등등이 따라 나온다.
지금 당장 사치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공부하고 투자하고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고 (그게 맞다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성장비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지 적고 싶진 않다.
나는 차라리 가난한 사람에게 있어 생존비가 얼마나 힘든지,
그 당연한 것이 힘들어졌을 때 얼마나 자존심이 무너지고,
그 좌절감을 극복하기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성장비에 대한 투자가 옳은데
사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생존비를 말하기 전에 시간이 지나 깨달은 효과적은 성장법을 생각해 본다.
부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되진 않는다.
누구 봐도 왼쪽사람이 더 좋은 몸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왼쪽사람처럼 사는 게 건강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고 모든 면에서
더 낫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다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른쪽사람의 몸도 많다.
그들은 왼쪽이 나은 걸 모르는 건가? 그들도 안다.
그럼 그들은 왼쪽처럼 되는 방법을 모를까? 모두 다 안다.
당장 더 먹고 싶어도 참고하기 싫어도 꾸준히 운동하고
안 좋은 걸 안 하고 좋은 걸 하면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되진 않는다.
누구나 그런 의지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엔 이것과 같은 일들이 무수히 많다.
책 읽고 공부하고 몸에 좋은 거 먹고 운동하고 누구나 아는 좋은 것들이 있고,ㅇ
술이나 담배처럼 누구나 아는 몸에 나쁘며 돈과 시간까지 써야는 것들도 있다.
사고하게는 과자 먹고, 과당음료 마시고, 쇼츠로 시간 날리고, 우리가 매일 하는 것들.
왜 그럴까? 이게 인간이다.
우리는 기계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거 좀 하면서 살 수도 있잖아?
나도 그랬다. 돈의 여유는 없었지만 나이키 신발이 너무 갖고 싶었고,
최신 휴대폰도 갖고 싶었다.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디아블로도 하고 싶었다.
다만 상황이 나빠지며 그런 사치는커녕 당장 직원식당에서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지고 남은 돈으로 며칠을 더 먹을 수 있을지 계산했다.
생존이 위협받으니 나도 나이키를 사고 싶지만 참아야지 그딴 생각은 사라지더라.
남은 돈으로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철저히 구분하고 그대로 따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서.
그렇게 나는 성장했고 생존할 수 있었다.
글로벌시대에 영어라는 세계공용어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수백 가지의 장점이 있고 단 하나의 단점도 없다.
하지만 난 영어를 못했다.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지만 막연하게 평생 못할 줄 알았다.
호주에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영어로 일도 찾고, 일도 배우고, 일도 하고
말싸움도 하고, 식당에서 주문하고, 친구들과 대화도 해야 하고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어떻게 영어로 말은 하게 되더라.
내가 한국에서 1년을 똑같이 했어도 됐을까? 절대 안 됐을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영어를 못 해도 내 생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호주에서는 영어가 곧 생존의 도구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 영어는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영역인데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고
이 사건과 운동이 내게 큰 깨달음을 줬었다.
나는 운동도 못 하는 사람이었고 학생 때는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다.
항상 구석에 앉아있는 타입이었고, 운동신경이 없다는 말을 평생 듣고 살았다.
사람 없어서 억지로 낀 축구시합에서는 혼자 굴러가는 공을 밟으며 넘어지기도 했다.
난 평생 운동은 하지 않고 살거라 생각했다.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부자가 되려면 운동은 해야 한다는 말에
힘든 와중에도 운동을 시작했고 결국 그 운동이 나를 살리게 되었다.
집 앞 클라이밍 센터를 갔는데 1주일쯤 다니니 주말에 산을 가자더라.
산을 갔더니 공중에 로프를 걸고 사람이 다니고 있고,
뜀바위는 거리는 별로 안되지만 떨어지면 죽을 수 있으니 최대한 세게 뛰라 하고,
로프하강은 한 손은으로 제동하고 한 손으로 줄을 푸는데
두 손을 놓으면 추락하니 조심하라 하고, 잡을 것도 없는데 바위 잡고 올라가라 하더라.
매 순간이 죽음의 공포였다.
로프를 걸며 올라가다가 추락하는 순간의 그 느낌은
몇 년을 해도 적응이 되긴커녕 여전히 죽을 만큼 무서웠다.
이것 역시 내가 생존의 위협을 느꼈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영역 같다.
그 결과 클라이밍이란 취미는 적성에 맞는 직업이 되었고
운동신경이라곤 하나도 없던 내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치비를 절약하고 성장비에 투자하라.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실천하긴 어렵다.
하지만 생존을 위협을 받으면 누구나 하게 돼있다.
식사량을 줄이고 나가서 달리면 누구나 살은 빠진다.
하지만 귀찮고 힘들고 시간이 없고 많은 핑곗거리가 있다.
기간 내에 몸무게를 줄이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하면,
덜 먹고 운동하는 것은 너무나 쉬울 것이다.
목숨 걸고 하면 된다는 열정론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 나를 넣으면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나 역시 여러 번 환경이 변화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호주에서 사실 영어를 안 써도 죽진 않는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한인타운도 있고, 한국어로 일도 구할 수 있다.
난 한국인이 별로 없는 시골마을을 선택했고 그 결과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영어를 써야만 하는 환경에 나를 넣어서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얼마 전까지 고등학생이었던 애들이 2년 뒤 군인이 되어있더라.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확 변할 수 있었을까?
군대라는 공간으로 환경이 변한 것이었다.
지난 글에 쓴 컴포트존에서 스트레치존으로 환경을 변화시킨 결과였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돈을 배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초등학생이었던 로버트와 친구 마이클이 돈을 배우려고 부자아빠에게 찾아갔다.
부자아빠는 이 가게에서 시키는 일을 해라, 하고는 말도 안 되게 적은 돈을 주고,
시간이 지나자 그 적은 돈마저 주지 않았다.
로버트와 마이클은 일은 하지만 돈은 못 받고 화를 내다가 스스로
돈을 벌 아이디어를 만들어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내가 겪었던 환경과 비슷했다.
일은 하는데 돈은 벌리지 않고 가진 돈은 줄어만 드는 상황에 들어가며
내가 세상과 돈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스위치를 누르면 당연히 불이 켜지고,
물은 왼쪽으로 돌리면 언제나 온수가 나오고,
집에서는 당연히 인터넷이 되고,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있었다.
돈을 내야 받는 서비스였지만, 너무 당연해서 돈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당연하게 여겼지만 사실은 내가 노동을 해야만 굴러가는 것들이었다.
아니 노동을 해서 급여를 받아야만 굴러가는 자전거였고
내가 페달을 멈추면 저 당연한 서비스들도 멈추는 것이었다.
내가 돈을 벌기를 멈추면 내 생존도 멈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동으로 돈이 들어오는 구조소득을 꿈꿀 수 있었다.
인간이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오마에 겐이치가 난문쾌답이란 책에서 쓴 글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는데, 환경을 바꾸면 사람은 변한다.
내가 환경의 변화로 성장을 이뤘을 때 결국 저 세 가지는 항상 변했었다.
지금 당장 내 현실이 마음에 안 든다면 의식적으로 내 환경을 바꿔야 한다.
내가 가장 쉽게 환경을 바꾼 방법은 혼자 떠나는 긴 여행이었다.
사는 곳, 시간을 쓰는 법, 만나는 사람이 저절로 바뀌게 되어있다.
너무 짧은 여행은 잠깐의 휴식 같은 느낌이지만,
꽤 길게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생각을 접하는 여행은 내 태도의 일부가 되더라.
혼자 떠나야만 하는 것은 혼자가 아니면 만나는 사람이 바뀌지도 않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그것은 내 변화를 구속한다.
최근 여행이란 게 시야를 넓히는 좋은 경험인지,
단순한 사치이자 낭비인지 의견이 분분하더라.
내가 생각하는 여행을 성장비로서 좋은 경험으로 만들어 주는 조건은
혼자서, 길게 떠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사는 곳이 바뀌고, 시간을 달리 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럼 우리는 변한다.
난 생존비가 없을 때 스스로 아주 불행하다 생각했다.
난 하루 두 끼를 대형마트 내 직원식당에서만 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2500원 김밥집이 단골집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주 좋았는데,
다른 직원들이 맛없다며 나가서 사 먹자며 먹기 싫어하는 걸 볼 때마다 비참했다.
내 기준을 떠나서 남과 비교해서 그랬던 것이었다.
여행을 나갔고 환경이 변했다.
난 돈이 떨어질 때까지 최대한 낮은 생존비로 최대한 오래 여행하고자 했었다.
제한된 금액으로 의식주를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크게 바뀌었다.
환경이 바뀌니까 내가 더 싼 것을 소비하는 것이 슬프거나 짜증 나지 않더라.
좋은 것은 비싼 것, 맛있는 것은 비싼 것, 이런 틀린 생각을 갖고 있더라.
내 상황에 내게 필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한테 좋은 것이더라.
난 배낭에 텐트와 취사도구를 넣은 20kg 배낭을 메고 대륙을 이동하며 여행했다.
동북아 동남아 중동 동유럽 서유럽을 거쳐 중미와 남미를 여행하며
내가 평생을 가졌던 기준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미니멀리즘을 체감했고, 비싼 물건이 주는 스트레스도 깨달았다.
비싼 물건은 소유하기만 해도 내가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게 되고
도둑맞을까 봐 편하게 다니지도 못하게 되었다.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은 나를 여유 있게 만들어주었다.
카페에서 직원이 실수로 음료를 내게 쏟았던 적이 있었는데
싼 옷이라 괜찮다며 정말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나올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의 여유는 이 옷이 내게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란 생각을 했었다.
항상 더 가지기보단 더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주기적으로 배낭의 무게를 재며 꼭 필요한 물건, 사용빈도가 높은 물건,
무거운 물건 상황이 변해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적고 정리하며 주기적으로 버렸다.
그 이후 한국의 집에 돌아오니 쓸모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옷이 오래되면 버렸는데 여행 이후는 옷이 찢어질 때까지 입었다.
생각이 변하자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자 행동이 변하고
그게 내 라이프스타일이 되더라.
남들의 평가보다 얼마나 나한테 맞는지가 중요하더라.
프랑스 숲에서 한 달 동안 텐트에서 살았던 시절,
한 달 만에 온수샤워를 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체코에서 평일은 숙소가 5천 원이었고 주말은 7천 원으로 올랐었다.
겨우 2천 원이지만 평일은 숙소에서 지내고 주말은 산에서 텐트를 펴고 잤었다.
겨우 이틀이지만 텐트에서 지내다 숙소에 들어오면 삐걱거리는 이 층침대가
그렇게 안락하고 편안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론 집이 낡고 좁고는 문제가 아니라 감사한 것이었다.
내가 생존비가 없어서 힘들었다고 징징댔던 시절의 내 인생조차도
사실은 안전하고 편리한 상태였고, 세상엔 그것조차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당시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지옥 같다 말했지만,
난 한국이란 선진국에 태어나서 엄청난 혜택을 받았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많은 나라에서 현지인 친구집에서 지내보기도 하며
난 정말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 더 가진 사람과 비교만 했단 생각이 들더라.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맛있는 음식이 비싼 음식이란 틀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그 나라의 로컬음식이 가장 싼 경우가 많았고,
로컬음식의 몇 배를 내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피자, 파스타 같은 양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태국 시장에서 사 먹는 2천 원짜리 팟타이, 카우쏘이가 더 맛있었고,
베트남 로컬 시장의 쌀국수, 분짜, 반쎄오는 파인다이닝도 부럽지 않았다.
인도에선 마살라도사와 고비 맨츄리안을, 남미에선 타코와 세비체를
중동에선 팔레펠과 슈와르마를 먹으며 살았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다면 다시 먹고 싶고 그러워질 음식은 그런 로컬의 맛이었다.
그 나라 사람들의 표정, 친절함, 분위기, 내가 이방인이 아닌 듯한 느낌은
비싼 음식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만족이었다.
이러한 경험이 내 소비 기준을 완전히 바꿨다.
이런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환경에서 나의 가치관은 크게 변했다.
나는 좋은 집, 좋은 차, 최신 기기, 멋진 옷을 당연히 소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없으면 부족한 사람이고, 그걸 가지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비싼 것을 추구하는 대신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 나를 가볍게 해주는 것을 고르게 됐다.
집을 선택할 때도 크기나 위치보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가’가 우선이 됐다.
차를 살 필요가 없어졌고, 대출을 질 필요도 없어졌다.
고정지출이 줄어드니, 더 많은 시간과 자유가 생겼다.
이 변화는 단순히 여행에서 느꼈던 것이 아니었다.
환경이 바뀌면, 가치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면
인생의 방향이 바뀐다는 사실을 내 몸으로 체득한 경험이었다.
내 옷은 5000원짜리야 하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도
난 25개국을 여행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야 라는 베이스가 있어서였다.
좋은 경험이 쌓이면 내 자존감이 높아지고 나라는 사람이 단단해지더라.
결과적으로 누구나 성장이 중요한 것은 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진 않다.
내가 해야만 하는 환경을 만들면 하게 되어있더라.
내겐 여행이 새로운 환경에 나를 넣는 것이었다.
그 결과 가치관이 변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더 가지기 위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극소수만이 선택한다는 파이어족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건 돈을 얼마나 가졌냐가 아니라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기가 힘들다면 책을 읽어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그럼 생존비가 적어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치하지 않고 성장함에 기뻐할 수 있더라.
난 직장인에서 파이어족으로, 그리고 디지털노마드로 상태와 환경을 바꾸고 있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힘들고 짜증나고 스트레스받는 순간들도 당연히 있지만
그 결과는 학습 성장 성과 보상으로 이어진다고 했으니 꾸준히 기록을 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