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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Jul 08. 2024

저도 예술가에 좀 끼워주시면 안 됩니까

[고양신문 김수지 칼럼] 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 칼럼] 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에 올린 칼럼을 연재합니다.


고양신문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극본을 쓰고, 얼마 전에는 『어느 날, 글쓰기가 쉬워졌다』라는 글쓰기 책을 출간한, 김수지라고 합니다. SNS에는 ‘노파’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쓰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예술 비슷한 것을 하는 M세대의 생활과 글쓰기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이 칼럼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한편으론 유쾌하고 한편으론 애잔한, 예술가 호소인의 쓰는 일상으로 시민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그럼 대망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얼마 전에 경기문화재단 보고회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예술 사업도 종종 하는데, 최근에는 경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원을 받은 예술가들은 재단에 와서 사업 내용을 보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단에서 보낸 안내 메일에 ‘18인의 예술가들이 모일 거다’라고 쓰인 문장을 보고 어쩐지 좀, 남사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이 간 동화 작가님께서 “우리 예술가들이”라고 운을 뗐을 때 괜히 찔려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전 아닌디요…”라고 했던 겁니다.

왜 아니냐는 작가님의 질문에 “저는 좀… 상것입니다”라고 실토했습니다. 동화 작가님은 그리 생각지 말라고 하셨으나, 방송을 팔고 강의를 팔고 글을 팔아먹고 살아온 제겐 늘 순수 예술가가 아니라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우리 예술가들은”이라고 말하는 사람 앞에 서면 어쩐지 기가 죽습니다. 저도 예술가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실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몇 차례 신춘문예에 기웃거려봤으나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쓴 원고는 중편 소설이라 낼 수 있는 데가 딱 한 군데밖에 없다고 하소연을 해보지만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어쨌든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떨어질 때마다 너희가 무언데 내 예술성을 평가하냐며 코웃음도 쳐봤지만 실은 엄청 기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만 보면 나도 좀 끼워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참고로 저는 이번에 ‘다원예술’이라는, 어감에서부터 어딘지 ‘예술 외의 것들’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야의 예술가로 선정됐습니다. 정의를 보니 올드미디어, 뉴미디어, 장르 불명의 예술이 여기에 속한다고 돼 있습니다. 역시 ‘예술 외의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질투심과 기대감을 안고 보고회에 가보니, 선정된 사람들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저와 동화 작가님,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자기를, 어떤 사람은 무용을, 어떤 사람은 음악을,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저것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것을 들고 와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예술성을 피력했습니다. 


지금껏 내 안의 어떤 것을 끄집어내는 방법은 글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점토와 레진과 춤과 사진 등 어떤 형태로든 내 안의 ‘그것’을 끄집어내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 갑자기 울컥해졌습니다. 엄청나게 다양하고 엄청나게 뜨거운, 진짜 예술가들이 그곳에 있었던 겁니다. 또 그 말이 심연으로부터 핑그르르 떠올랐습니다. 나도 끼워 줘.


그날 예술가분들이 저를 끼워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맙게도 재단에서는 저를 예술가로 끼워주셨습니다. 18인의 예술인 중 최후 5인에 선정되어 또다시 뭔가를 해볼 기회를 주신 겁니다. 경기문화재단 선생님들, 여러분의 만수무강을 늘 기원하겠습니다 :)

김수지,『어느 날, 글쓰기가 쉬워졌다』(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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