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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Jul 16. 2024

첫 방송 출연과 패배의 감각

[고양신문 김수지 칼럼] 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에 올린 칼럼을 연재합니다.


얼마 전에 고맙게도 제 책, 『어느 날, 글쓰기가 쉬워졌다』를 소개할 기회가 생겨 KBS에 다녀왔습니다. 인기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저자 자격으로 출연 요청을 받으니 어쩐지 성공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방송작가 경력을 십분 발휘하여 직접 스크립트를 써서 달달 외워 갔습니다. 스튜디오에서는 44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가 진행을 잘 해주셨고, 저 역시 라디오 패널을 한 경험이 있어서 떨지 않고 글쓰기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만족스럽게 방송을 마치고 제작진과 식사를 하는데, 문득 피디님이 요즘 40대들의 관심사는 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글쎄요…. 그건 저도 알지 못합니다. 끝물이긴 해도 저는 아직 30대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당황해하는 이유가 저를 노안으로 본 미안함 때문인지, ‘저 얼굴이 어떻게 30대냐’하는 것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제겐 이 상황이 익숙했습니다. 방송국에만 가면 다들 저를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게 보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한 출연자가 말해준 바로는 제가 너무 노련한 방송쟁이처럼 보여서 그렇다는데, 그래서 저를 마흔일곱쯤으로 봤다고…. 저, 선생님?!


김수지 작가가 출연한 라디오 방송의 대본. [이미지제공=김수지]


어제도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첫 화 녹음이 끝나자 진행자가 방송 시간(RT)을 맞추기 어렵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40년 차 방송인에게 이런 지적을 받으면 일반인 출연자는 보통 주눅이 들어 다음 방송을 제대로 못 합니다. 그러나 겉보기 등급 마흔일곱인 저는 “아이고, 제가 너무 말이 넘쳤죠? 다음에는 시계 보면서 할게요~”하고는, 다음에도 역시 시계를 보지 않고 준비해온 답을 쭉쭉 말했습니다.


원래 방송 시간 조절은 진행자의 역할입니다. 일반인 출연자가 시계를 봐가며 RT를 조절하면서 떨지 않고 정확한 답변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두 번이나 시계를 확인하라는 핀잔을 들었고, 두 번째 지적을 받을 땐 저도 “오디오가 비는 것보단 말이 넘쳐서 편집하는 게 낫죵, 홍홍홍”하고 대꾸했습니다.


이것은 기실, 방송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기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는 자기 분량을 챙기려는 것인데, 여기서 예 예, 하고 끌려다니다간 방송에 얼치기로 나오기 딱 좋습니다. 제가 비록 얼치기이긴 하나 자신이 쓴 책을 설명하면서까지 얼치기처럼 굴면 아무도 제 책을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지제공=김수지]


그러나 방송이 끝나자마자 저는 “선생님~” 하면서 진행자에게 납작 엎드렸습니다. 바닐라 라떼도 대접하며 전력을 다해 비위를 맞췄습니다. 그래야 프리랜서는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그게 방송국에만 가면 저를 40대 중반으로 보는 이유일 겁니다.


하지만 말만 번지르르할 뿐 저는 사실 실패한 방송작가입니다. 방송국에서 10년 가까이 원고를 썼고 큰 상도 여럿 받았으나, 누구도 저와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닳고 닳은 인간인지라 부리기 쉽지 않은 탓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족스럽게 방송을 해놓고도 돌아오는 내내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제가 일하고 싶던 방송국에서 정년까지 무사히 살아낸 그들이 부러웠고, 일을 두 개, 세 개씩 같이 하자는 사람이 있는 작가에게 질투가 났습니다. 제가 끝내 패배하고 말았던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멋지게 완주를 해내는 이들을 보니 지독한 열패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차갑게 식은 눈물을 닦고 결연하게 떨쳐 일어나 부르주아를 척결, 이 아니고 부지런히 써야겠습니다. 다들 투쟁, 아니 건필하십시오. 


"방송 내용이 궁금하시면 'KBS 콩' 앱에서 다시듣기를 하시면 됩니다^^"


출처 : 고양신문(https://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77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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