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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Oct 16. 2024

공덕역 죽음 목격

[노파에세이] 산다는 건 뭘까


아침 9시 공덕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출근 시간치곤 조금 늦은 시각이었지만 출입구 앞은 내리려는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나도 뒤에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꽝, 하며 무거운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건너다보니 남자의 머리가 지하철 바닥에서 경련하고 있었다. 허옇게 뒤집힌 눈은 기괴하게 움찔거렸고 남자의 입에선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몸은 이미 자기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꿈틀거렸다. 눈앞에 죽음이 있었다.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연신 괜찮냐고 물으며 주변 사람에게 119로 전화 좀 해달라고 했다. 지목을 받은 사람은 당황해했고 주변에 있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핸드폰을 꺼내 들긴 했으나 뭘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함께 당황했다.


*

그러나 순수한 당황은 아니었다. 머뭇거리는 기색이 보였다. 지하철이 곧 공덕역에 도착할 터였다. 핸드폰을 꺼내든 사람의 얼굴에도, ‘어떻게’를 연발하는 사람의 얼굴에도 ‘왜 하필….’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읽혔다.


다들 그저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문을 나가, 1분도 늦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해, 자신의 지겨운 일상이 무사히 펼쳐지길 바랐다. 나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래도 모두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고, 나 역시 부지런히 서울교통공사 번호를 검색했다.


그때 누군가 몸을 돌려 부산한 틈을 빠져나가 옆 출입문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 나이든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짜증과 단호함이 역력한 얼굴. 자신은 절대 쓰러지는 일 따윈 없을 거라는 확신. 아니요, 아주머니. 누구나 생애 마지막 순간에는 쓰러진답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보게 될 얼굴은 지금 당신의 얼굴을 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일 거예요.


*

저것도 인간, 이것도 인간. 인간의 스펙트럼은 지나치게 넓다고 생각하며 다시 번호 찾기에 집중하는데 쓰러진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바로 선 남자는 우리 중 누구보다 키가 컸고,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몸에, 나이는 50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저렇게 건장하고 평범한 사람에게 수요일 아침부터 죽음이 찾아오다니. 산다는 건 대체 뭘까.


그런데 남자는 옆에서 괜찮냐고 물어대는 질문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바쁜 회사원처럼 내렸고,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행동에는 어떤 당황함도, 어색함도 없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그를 보는 듯하더니 이내 출구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모두 1분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

마음이 복잡해져서 천천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반대편에서 남자가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자기 역이 아닌 곳에서 내렸던 것 같다. 아마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당황함이 없는 얼굴과 익숙한 대처를 보건대, 남자는 이번에 처음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죽어가는 게 분명했다.


아침부터 누군가의 정수리 위로 죽음이 앉았다가 날아가는 것을 보니 조금 무서워졌다. 마지막 숨이 내쉬어지고 모든 정신작용이 멈추는 것, 그게 단가?


그리고 고작 쉰 언저리의 남자가 죽어가는 것을 함께 봐놓고도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무서웠다. 영원히 살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긴. 수요일 아침 출근길에 달리 뭘 할 수 있겠어.


*

오늘 아침 일산


오늘은 2년 동안 팟캐스트로 법문만 들어온 주지 스님을 직접 보러 선원에 간 날이었다. 어떤 아주머니 신도와는 싸웠고, 어떤 할아버지 신도와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머리만 하얗게 셌고, 나이는 사십 대였다.


그는 죽음이 무서워서 왔다고 했고, 나는 사는 게 무서워서 왔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임종을 본 후 죽음이 두려워졌고, 나는 직접 죽음을 경험하고 나니 사는 게 더 무서워졌다.


그는 본격적으로 수행자가 될 거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뭔가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또 친구가 출가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마트에서 잘 익은 파인애플을 하나 샀다. 삼천 원이었다. 다시 중생으로 사는 게 좋아졌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618434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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