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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에세이] 찌르르를 주세요

<최단경로>, 강희영

by NOPA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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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글 이미지 1

2019년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다.

특이할만한 점은 약 150페이지 분량의 중편 소설인데, 무려 90페이지에 다다라서야 스토리와 인물 관계가 이해된다는 점이다.


심사위원 평을 보면, 몇몇은 60페이지 정도에서 감을 잡았다는데, 나의 60페이지 지점을 복기해보면 거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이 독백의 파편들은 대체 언제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지는 것인가. 나는 왜 이걸 계속 읽어야 하는가.


90페이지 부근에서 모든 것이 이해됐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우와! 이런 큰 그림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였다. 앞에서 대충 눈치채서 시큰둥해 있었고 무엇보다 너무 지쳤다.


*

글은 정말 잘 쓴다. 작가의 첫 등단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매끄러운 문장이 수준급이다.


그런데 그게 없다. 심장을 푹 찌르고 들어오는 것.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것. 하루키의 표현을 따르면 ‘찌르르하게 만드는 것.’


천명관의 <고래>나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를 읽을 때는 분명 그게 있었다. 머리부터 심장까지 연타로 두들겨맞은 듯한 강렬함. 그 감각이 너무 좋아서 나만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에 지독한 소외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다만 표현이 거칠고 투박한데 그런 것은 이야기를 감상하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때 깨달았다. 독자에게 강렬한 감각을 선사하기 위해 필요한 건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이 아니라는 것을.


그 경험 이후 최진영과 천명관의 소설은 계속 찾아 읽는 중이다. 그런데 강희영 작가의 다음 소설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할 걸 생각하니 벌써 지친다.


*

브런치 글 이미지 2

내용적인 면을 잠깐 언급하면, 이 짧은 분량에 생리, 발기, 자위에 펠라치오까지 등장하는 건 좀 허세처럼 느껴졌다.


서울대에 입학한 애들은 그렇게 자기가 고등학교 때 놀았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데, 후배가 “저 사실,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가출도 해봤어요”라고 했을 때 소름이 쫙 끼쳤다. 이번에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 사실, (문장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센 것도 잘 써요”하는 느낌.


그러나 내보기엔 “여름이었다”의 발기 버전 같았다. 니가 발기/생리/펠라한 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독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센 걸 못 쓴다는 뜻이니 안 쓰면 좋겠다.


*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본 후로 내가 뭔가를 놓친 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최근 이런저런 수상작들을 찾아 보는 중인데, 음… 놓친 게 별로 없었다.


물론 다들 문장은 어마어마하게 잘 쓴다. 그런데 찌르르가 없다. 문장 따위 험하게 써도 좋으니 제발 찌르르를 좀 주면 안 될까? … 설마, 심사위원들이 안 뽑는 건가?


*

이런 글을 썼으니 나는 공모전은 다 했다.

하지만 어차피 내 글은 안 뽑을 것이니 잃은 것도 없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https://m.blog.naver.com/nopanopanopa/223762500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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