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에세이] 보후밀 흐라발과 윤석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여러모로 근사한 책이다.
2차 대전 중엔 나치 독일에 던져졌다가 이후엔 소련에 먹힌 후 연방이 붕괴한 후엔 슬로바키아가 숭덩 떨어져 나가 분리된 체코라는 나라의 작가가 쓴 책이니, 어느 면으로든 범상할 리 없다.
그쯤 되면 삶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많은 소비에트 인물들의 증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도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으며,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후렴구처럼 되풀이되어 나온다.
그러나 작가가 풀어놓는 ‘무슨 일’은 대체로 작고 시시하다. 폐지, 생쥐, 기차, 유골 그리고 똥 같은 것들.
하지만 그 안에 펼쳐 보이는 세계는 결코 작지 않다. 고막이 터질 듯 소란스럽게 재잘대는 이야기를 꾹꾹 짚어가다 보면 내 머릿속 생각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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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 ‘만차’가 스키 뒤꿈치께에 변을 달고 내려온 일화를 읽고 특히 많은 생각이 오갔다. 얼마 전에 나도 누군가의 변을 보고 만차의 똥을 본 것처럼 경악했기 때문이다.
자주 가는 몰의 화장실이었는데, 물을 내리려고 뒤를 도는 순간, 휴지통 속에 활짝 펼쳐져 있던, 상당량의 변이 묻은 휴지를 보고 말았다. 문제는 그 휴지가 다였다는 점이다. 2차, 3차로 닦은 휴지가 없었다.
나는 그날 온종일 딱 그만큼만 변을 닦은 여인에 대해 생각하느라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분명 항문에도 다량의 변이 묻었을 텐데, 어떻게 거기서 닦기를 멈출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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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한 새댁이 남편의 속옷을 세탁기에 넣으려다가 변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기함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주변 여자들과 송사리 떼처럼 모여 그것에 관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야, 남자들 팬티엔 똥이 묻어 있단다.
거짓말 마라, 어떻게 팬티에 똥을 묻히고 다니냐.
아니다, 내 남동생도 팬티에 똥 묻힌다고 엄마한테 혼났다.
니 남동생 몇 살인데?
스물 넘었지.
순간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 아빠는 내가 공부를 잘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아까워했는데, 여자가 공부를 잘해봤자 결국 서방 똥팬티 빨아주기밖에 더하냐, 하는 이유에서였다.
정말 서방은 똥팬티를 입는 사람인 거로군!!
그러나 한때 나의 서방이었던 남자는 나보다 더 깨끗했고, 덕분에 나는 한 번도 그런 추악을 경험해볼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아버지, 염려마셔요, 아버지 딸은 이제 누구의 똥팬티도 빨지 않게 되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의 똥묻은 휴지로도 한 페이지씩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고상하게 자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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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엊그제 지인의 집에서 불혹 파티를 하기로 해서 이 주제에 관해, 즉 변을 본 후 몇 번이나 닦아야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토론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가 까먹었다. 윤석열 욕하다가. 모르긴 몰라도 그의 팬티에도 변이 잔뜩 묻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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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번에 이해했다. [만차]의 삶에서 이제 제2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명예를 지키지 못하고 치욕을 견뎌야 하리라고 예견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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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열은 다시 3.5평의 공간으로 돌아와야했다. 변기가 노출된 그곳에서 여름을 보내는 동안 석열은 처음으로 자신의 변에 대해 생각했다. 좀 덜 먹고 좀 더 꼼꼼하게 닦게 되었다. 일생에서 유일하게 문명인으로 산 시간이었다. 그의 마지막 숨이 내쉬어지고. 화장을 하려고 그의 옷을 벗겼을 때 팬티는 깨끗했다. 그렇게 노자의 말도 실현되었다. 치욕을 겪고 명예를 지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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