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했다 싶었지만,매번이 고비였다.

by 수박씨

업무도 어느 정도 숙지되고 콜도 안정감 있게 뽑아내고 처리하는 수준이 되었으니 할 만하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욕설을 퍼붓는 고객이나,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가며 본인의 것을 얻어 가려는 고객을 맞닥뜨릴 때마다, 아 역시 아니었어.라고 되뇌게 되었다. 이곳에 적응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걸까? 콜을 잘 받더라도, 난 여전히 어딘가는 모자란 사람이었다.


조직생활에 부적합한 성격


어떻게 10년이나 조직생활을 했나 싶게, 내 천성은 자유인에 가깝다. 해야 할 말이나 궁금한 점은 물어봐야 직성이 풀려서 신입시절엔 '송 다르크'라는 별명까지 있었을 정도다.


사회생활을 해 보니 알았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궁금하지 않아서 안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 물음으로 인해 돌아오는 막중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궁금증으로 인해 상사에게 각인될 만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건, 안전한 회사 생활을 위해 삼가길 바란다. 어지간하면 관리자에게까지 물어보거나 보고하지 않는 것이 회사생활의 에티켓 같은 거랄까. 이제 알만도 한 데도 나는 번번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게 도대체 왜 안된다는 거지?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나? 관례적으로 다들 그렇게 지내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도화지처럼, 나는 내 생각을 말해 버린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드러내야 상사도 안다! 알려줘야 한다! 내 인생의 모토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살았다. 나 하.고.싶.은.대.로. 그러나 회사를 다닐 거라면 안.된.다. 참.아.라!


회사가 내 개인의 편의를 봐주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개인 의견은 한 발짝 물러날 필요가 너무 많다. (는걸 이제야 안다. 나처럼만 하지 말자.) 그 관례가 싫다면 조용히 회사를 떠나는 게 낫다. 내가 조직의 문화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모든 걸 덮을만한 강점, 나만의 무기가 있다면 또 모르겠다. 그냥 그 사람의 특징이라고 덮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것조차 없었다.


갈수록 혼자가 되어가는 관계


고객센터에 맘붙이고 다닌지가 어언 1년 8개월. 2년여 가까운 시간에도 이렇다할 짝꿍이 없이, 뜨내기처럼 일만하고 퇴근한다. 맘맞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소규모 지향 인물이라, 어느 누구 없이 회사 생활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나는 복귀자들을 눈독 들여 왔었다. 아이도 있고, 경력도 있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들. 그들에게 나는 쉬이 맘을 열었고, 메신저로 오가는 대화 속에 혼자 친하다고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내 기대와 다른 반응 속에 나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내가 그렇게 매력없는 사람인가? 인성에 문제가 있나? 왜 이렇게 친해지기가 어려운거지?


가족과 친구에게 얘기하니, 가족들은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으며, 내 직급과 나이가 편할 수는 없다고 했고, 친구는 혹시 내가 모르는 나의 뒷담들이 나쁘게 퍼져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그렇다. 회사에서는 사람이 아무리 좋다한들 일을 너무 못한다거나, 미루는 등의 업무 민폐자들과 가깝게 지내기를 꺼려한다. 내가 그런 사람인가? 누구한테 폐 끼치면서 일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일을 못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외부의 평가는 다른건가? 부서 특성상 서로 욕하고 말고할 자리도 아닌데..관리자도 아닌데 욕할일이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스무 살 넘은 조카가 이렇게 말했다.


원래 왕따는 본인이 왜 왕따인지 몰라~

나는 은따가 되었다. 밥을 먹을 사람이 없고, 점심에 산책한번 나갈 사람이 없다. 내가 먹자고 하지 않는 이상, 먼저 먹자고 하는 이도 없다. 이렇게 지내는 직원은 사실 많다. 젊은 직원들은 자리에서 밥을 간단히 먹고 개인 생활을 즐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맘이 어려울까?


아들이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서운한 얘기를 종종 한다. 6살 난 아들은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두어 명 있는데, 이들이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 때 매우 속상해한다. 아들과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는 모양새가 꼭 같다. 이런 것도 유전이란 것인가? 이런 아들한테 뭐라고 조언해 줄까?


노력도 해봤다. 먼저 밥을 먹자고도 해보고, 밥도 사줘 보고, 워킹맘들을 모아도 봤지만, 더 이상 이어지진 않았다. 나이가 비슷하면 관심사가 달랐고, 신입의 위치에서 얘기하기엔 상황이 너무 달랐다. 결국 나는 혼자 밥을 먹고, 운동하고, 글을 쓰는 걸로 관계의 빈자리를 채웠다. 관계 때문에 글에 매진하지 못했던 적도 있는데, 관계가 없으니 글을 쓰기에는 참 좋은 조건이었다.


급작스런 아빠의 간암 소식


고비는 다른 일로도 찾아왔다. 소화가 잘 안된다던 아빠는 2020년 겨울 병원을 찾기 시작했고, 동네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 2021년 2월 간암 판정을 받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내 인생에 부모님의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위궤양도 심한 상태여서 항암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고, 병원 치료를 거부한 아빠는 판정 후 4개월 만에 세상과 작별했다.


인생 최대의 큰 일을 치르고 돌아오니, 전화를 다시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이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고객을 잘 대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때마침 이메일 상담팀에 공석이 생겨 지원을 했다. 피하고 싶던 관리자가 있는 자리였지만, 차라리 그게 나을 정도로 상담은 그만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메일 상담팀이 아닌 문구 판매의 제휴몰 담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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