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잘 버텼다.

by 수박씨

잘 버텼다.

이런저런 일에도 나름의 페이스를 잘 유지했다. 해야 할 말은 해 가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참아 가면서, 듣기 싫은 말은 흘려버리면서, 기억해야 할 말은 메모하면서, 버티어 냈다.

고함을 치며 나무랐던 관리자도 ‘너무 잘하고 있다’며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소정의 인센티브도 받았다. 단축근무임에도 10만 원이라도 탈 수 있다는 건, 퍽이나 고무적이었다.


인센티브는 각 팀에 2명씩 콜 인입수, 아웃콜 수, 근태, 친절 및 불친절, 대기시간, 작업시간 등을 수치화하여 실적이 좋은 팀원에게 매달 시상하는데, 단축 근무자인지라 아예 대상에서 제외된 줄 알았다. 1등은 넘사벽이었고, 풀로 근무한다면 10만 원 정도의 인센티브는 노려봄 직도 했더랬다. 하지만 단축 근무하면서 인센티브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기에 욕심내지 않았는데, 불현듯 찾아온 10만 원의 격려금은 자신감도 북돋아 주었다.


인센티브 대상자가 되고 보니, 실적표를 꼼꼼히 살펴보게 되고, 모니터링 점수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이전에도 89점 받은 적이 여러 번이었는데, 그냥 잘 안 나오네 하고 말았지, 아니 이번엔 왜 이렇게 낮게 나온 거지? 하고 의문을 품지 않았다. 콜 점수에 연연하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자꾸 콜수를 들락날락하며 확인하는 나였다.


모니터링 , 콜 인입수, 작업시간, 친절 &불친절, 근무태도로 점수가 매겨지고, 합산한 점수가 80점 이상은 10만 원, 85점 이상은 20만 원, 90점 이상은 30만 원의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나는 간당하게 턱걸이로 80점을 넘어 인센티브를 받아 왔는데, 모니터링 점수가 떨어진 달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달 인센티브는 물 건너갔구나! 그러면 어느덧 목소리가 상냥해졌다. 다음 달 모니터링 점수는 잃지 말아야지! 통장에 돈이 들어와야 연기가 된다던 배우처럼, 떨어진 모니터링 점수는 상담원을 친절하게 했다.


콜이라도 많이 받으면 만회할 수 있을 테지만, 통화가 끝나자마자 대기를 눌러도, 많은 콜이 꽂히지 않았다. 표면적으론 절대 평가지만, 인입되는 콜수를 상담원끼리 나눠 받는 것이기에, 누군가가 많이 받으면 누군가는 떨어지게 되어있다. 오는 대로 받고 있지만, 이전처럼 콜수가 늘지 않는 걸 보니 다들 열심히 받나 보다 싶었다.


이런 참, 10만 원이 뭐라고!! 아무래도 인센티브의 노예가 된 것 같았다. 10만 원 못 받을까 봐 안절부절인 내 모습을 누가 눈치라고 챌까, 부끄러웠다.


이런 속내를 오랜 친구들이게 내비쳤는데, 이런,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다. 성과급 여가 나오는데 본인만 B+라 다른 동료의 절반 정도밖에 못 받는다는 얘기가 메신저를 통해 들려왔다. 일도 잘하지만 윗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 또한, 직장인의 숙명이다. 아이들 케어로 퇴근하기 바쁜 그녀는 상사 눈엔 그저 일보다는 육아가 먼저인 엄마일 뿐이기에 성과급의 욕심은 사치였다.


또 다른 친구가 점심시간에 잠시 다녀갔다. 딸아이 작아진 옷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곤 했는데, 오늘도 자그만 쇼핑백에 아이들 옷을 챙겨갖고 왔다. 한창 아이들 교육 얘기에 심취하다가, 7급 승진 대상자이고 본인이 가장 연차가 많음에도 밀려 속상하다는 속내를 전했다. 그들은 휴직한 적 있니?라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그녀는 휴직 때문은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관계가 있다고 확신했다. 엄마들은 승진이, 성과가 자꾸 밀려난다.



-육아휴직 기간 중 조직 변동이 있었다. 육아휴직 후 복직했으나 업무 없이 방치되었고 퇴사를 종용하고 있다.
-매장 관리자였는데 육아휴직 후 회사에서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며 관리자로 발령을 내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반 업무를 하고 있는데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발령이 되지 않았다. 내가 육아휴직을 사용해서 관리직으로 발령을 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중간 관리직으로 근무하다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복직하니 회사에서 TO가 없다는 이유로 직책을 박탈했다.

<2019 서울여성노동자 사회 평등의 전화 상담사례 오마이뉴스 기사 중 발췌>



그러면서 친구는 국중(국립중앙도서관) 공고를 보여줬다. 공무원이 됐음에도 그녀는 늘 국중 시험을 봐왔고, 한동안 잠잠했으나 진급까지 밀리니 다시 시험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열심히 공부할 자신은 없지만, 시험은 보고 싶은 그런 마음, 나도 안다. 나도 그 공고를 보고 한번 더 해볼까 싶어 잠깐 고민도 했다. 나이 마흔에 신입? 공무원 공부? 들어간다고 해도 정년까지 다닐 수는 있을까?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아니다 싶었다. 친구에게도 같은 급수고, 그쪽 승진도 밀려있다는데, 똑같은 고민 아니냐, 그냥 있는 게 좋겠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계속 거기 못 가서 아쉬운 거면 가버려!라고 얘기했다. 그게 뭐 쉬운 일인가, 둘 다 알고는 있었지만.


인센티브에 눈 멀 정도로 나는, 이곳 고객센터에 꽤나 적응했다. 3년여의 휴직으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서에 와서 마음고생했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본다. 그리고 복직하여 고군분투하는 나의 모든 친구들, 이 시대의 워킹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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