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가 한창 인기인 시절, ‘책 소개’에 중점을 두고자 북소믈리에를 뽑았고, 그 직무를 하기 위해 입사했지만, 사실 기본 업무는 ‘기본 서지의 등록’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메일 한가득 출판사의 서지 등록 요청이 있었고, 다른 분야 담당이 대신 처리하기도 어려워 휴가를 다녀오기가 겁났다. 이메일 등록을 처리하고 나면, 책상 위에 내 키보다 높이 쌓인 책들의 ‘책소개’를 작성해야 했다.
대부분은 보기 좋게 문단 구성만 맞추어 올리고, MD의 주력 도서나 내가 픽한 책들은 조금 공을 들이는 편이었다. 좀 더 잘 팔리기 위해 MD들이 특정 문구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나름 마케팅보다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만 올린다는 원칙이 있어 MD들과 약간의 줄다리기가 있기도 했다.
공식적인 글을 쓰는 일이 많아지면서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서평’을 잘 써보기 위해 학원에도 다녔고,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독서지도사’ 자격증 준비도 했다. 다른 동기는 자격증을 땄지만, 규격과 형식에 치중하는 시험이 맞지 않아, 나는 수료만 했다. (어디까지나 변명이다. 게을러서 못 딴 거면서 말이 많다.) 동기들과는 필사도 하고 책 토론도 하면서 이것이 일인지 취미인지 모르게 열정을 불태웠다. 퇴근 후에도 찜해놓은 책이 있으면 한아름 가져와 집 앞 카페에서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맘에 둔 문장들을 페이스북 같은 곳에 공유하면서, 이 일을 사랑했고, 자부심을 느꼈다.
회사의 공식 채널뿐 아니라, 블로그로, 때마다 유행하는 SNS로, 작은 일간지의 추천 채널로, 나름의 ‘책 추천’들을 꾸준히 했다. 글은 꾸준히 썼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출중해지는 건 아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쓰면 쓸수록 내 글의 빈약함, 경험과 식견의 부족이 더 잘 보일 뿐이었다. 우리가 했던 모든 기획과 연재들은 폭발적 반응도, 길게 가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책 소개’의 중요도도 의문이 들었다. 사실상 책 소개는 ‘출판사 서평’의 요약본에 불과했다. 요약본에는 주관적 의견은 달 수 없었다. 공공의 장이기 때문에 개인적 의견은 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그래서 매력이 떨어졌다. 실제로 책을 구매하는 사람이 과연 ‘책 소개’를 보고 살까? 어차피 출판사 서평의 요약본이라면 무엇하러 책 소개를 힘들여 재가공할까? 잠재적 구매자들은 실제로 책을 읽은 사람의 진짜 리뷰가 필요할 텐데 말이다.
마케팅 팀에 합류될 때에 팀장님은 ‘스타 CP’를 만들어 보자고도 했었다. 아쉽게도 글만 쓸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관적인 글쓰기를 펼칠 수 있는 장은 아니었기 때문에, 업무 외 개인적인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쓰자고, 이 적은 월급에 누구도, 나조차도 강요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팀장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책 소개에 공들이기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출판사 서평을 잘 짜깁기하는 것이 업무의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북소믈리에’라고 불리는 직함은, 나의 무지와, 부족한 내공으로 인해 간극이 깊어만 갔다.
3년 차가 되던 해, 동기 한 명이 퇴사 선언을 했다. 글도 잘 쓰고 일도 잘하는 똑 부러진 친구였다. 역시나 그녀답게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당당하게 성공하여 퇴사 의사를 밝혔다. 잘된 일이었지만 아쉽고 서운했다. 같이 책을 읽고, 쓰고, 공유했던 동기이기에 끝까지 이 길을 갈 것만 같았다. ‘급여’가 중요한가, ‘일’의 적성이 중요한가. 일은 일일 뿐이었나? 일을 할 바에는 돈을 많이 주는 게 나은 것인가? 다른 곳으로 이직할 욕심도 능력도 없었지만,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