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는 ‘북소믈리에’라는 번지르르한 명칭에 현혹되어 입사했는지도 모른다.
‘문헌정보과’의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에 한창인 친구들은 대부분 공무원에 도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취업의 문은 너무나도 좁았다. 대기업 자료실이나, 대학교 도서관은 엄청난 스팩을 요구했고 장벽이 너무 높았다. 노력 대비 가성비가 훌륭했던 건, 공무원이 맞았다. 공무원에도 ‘문정인’(문헌정보학과 졸업생을 일컫는 말)이라면 한번 쯤 꿈꿔봤을 ‘국립중앙도서관’ 이나 ‘국회자료실’의 국가직 공무원이 있는 반면, 각 지역마다 있는 ‘지방직’ 공무원도 있었다. 그 중 나는 어느 것도 도전하지 않았다. 뻔한 길을 가고 싶지 않았던, 어릴 적의 오기 같은 거랄까.(실제로 어리지도 않았다. 그냥 철이 없었다.)
책을 좋아해서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했다면 학과에 실망한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실상 컴퓨터공학과가 아니냐며 수업을 거부하는 이도 있었다. 책을 읽고 쓰는 곳은 '문예창작과'이지 '문헌정보'는 아니었음을, 공부하면서 알았다. 도서관을 운영하고, 정보를 관리하는 학문이기에,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하고 수집하고 보관하는지가 중요한 과제였다. 나역시 그런 '관리'의 직무는 성향상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서점의 공고를 뒤적거렸다. 그 중 CP(Contents Provider)의 모집공고를 운명처럼 만났고, 취향에 맞는 와인을 골라주는 '와인 소믈리에'를 참고한, '북소믈리에' 라는 직함에, 주저없이 지원했다.
서류에 합격하면 1차로 글쓰기 테스트가 있었는데, 홈페이지 맨 첫 칸을 장식하는 '책소개'를 무작위로 나눠주는 책 2권을 골라 시간 안에 작성해야 했고, 연습한대로 열심히 적어냈다. 2차는 면접이었다. 바르르 떨면서 면접관의 질문에 얼토당토 안한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뛰어난 스펙과 장기를 지닌 지원자들 사이에서 당연히 떨어진 줄 알았던 나는, 풀이 죽어 다음 취업준비를 위해 학원 수업을 받고 있었고, 느닷없는 합격 전화에 감격하며, 지금의 회사에 첫 발을 들였다.
동아리처럼 재미있던, 입사후 2년.
나도 떨어질 것 같았지만, 같이 면접본 4명 중 떨어질 것 같은 2명이 더 있었다. 나머지 한명이 워낙 적극적이고 말도 잘해서, 우리조에서 합격한다면 그 사람일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빼고, 나머지 셋이 다 합격했다. 입사 후 마주보며 어떻게 너희들이 됐냐는 멋적은 표정들이 생각난다. 이유인즉슨, 이 일 자체가 너무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거였다. (일을 하고 보니 이해가 많이 됐다.)
여느 회사 동기들이 그렇듯, 책을 좋아하는 3인방은 금방 친해졌다. 또 여느 회사 생활이 그렇듯 꿈꿔왔던 일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머지않아 깨달았다. 특히 급여가 그랬다. 연봉에 대해 개념이 없던 나는, 면접 당시 인사팀에서 말해주는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고, 입사 후 100만원이 조금 넘는 급여를 보며, 이것이 실화냐고 동기들끼리 실망했더랬다. 그래도 일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갓 나온 모든 책들이 내 손을 거쳐 가는 것이 마냥 신기해서, 동기들과 책수다를 펼치는 게 너무 즐거워서, 2년간은 급여와 상관없이 행복했다.
당시 우리는 매일매일 쏟아지는 책들 중에 절반 이상이 매장의 서고로 묻혀버리는 게 아쉬워서, 전문 서평가가 되야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가졌다. 같이 서평 수업도 들으러 다니고, 같은 책을 읽으며 필사도 하고, 블로그를 만들어 다양한 기획으로 맘에 꼭 드는 신간을 소개하기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짧은 기획으로 꾸준한 컨텐츠를 쌓지 못한채 이리저리 배회하다, 우리의 글 역시 그 많던 신간들처럼 묻혀 버렸다. (어딘가에 살아 있기는 할거다. 아무도 찾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