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원으로 지내며 바뀐 몇 가지 풍경들이 있다.
코로나, 태풍 같은 천재지변은 배송에 차질이 생기는 1순위다. 계속적으로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코로나로 이동이 제한되어 온라인 주문량이 급증하거나, 모두 약속한 날짜에 배송해 주긴 어려운 실정이다.
항공사에서 일했던 한 동료가 말했다. 날씨 걱정은 그때도 했었지만,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비행기 못 뜹니다"라고 하면 끝이란다. 그런데 배송은 '무조건 무조건' 그 날짜를 지키라고 아우성이다. 언제부터 우리의 배송 문화가 이렇게도 빨라진 건지, 기다림의 미덕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건지. 새벽 배송까지 생긴 요즘에는 하루 이틀 배송이 늦는 건 체감으로는 일주일 이상 늦는 기분이니 말해 뭐하겠는가.
날씨는 맑아야 한다. 비도 눈도 많이 오지는 말아야 한다. 자나 깨나 날씨 걱정.
처음 상담할 때는 워낙 비슷한 요청들이 오고 보니, 해결책 제시를 먼저 했다. 책을 바꿔주겠다, 환불을 해주겠다 등 섣부른 제안을 한 거다. 그러나 고객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해결책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사과를 원했던 것. 당연하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고객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지금은 매우 공손하고 죄송한 목소리로 "불편드려 정말 죄송합니다"로 시작한다. 집에서도 곧잘 '미안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나의 대화법에 아들도 요즘엔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지만, 이것 좀 치워줄래?"
전화를 받기 전, 마실 물, 커피, 확인할 사항들을 미리 체크하고 전쟁에 임할 준비를 한다. 지각 따윈 없으며, 20분 전 출근을 목표로 하고, 성수기엔 더 일찍 가야겠다 마음먹고 있다. 9시 넘어서도 종종 출근한 적이 있었던 나로서는 놀랄만한 변화다. 긴장감 최고의 업무 덕에 성실녀로 거듭나고 있다.
고객센터에서 일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바가 있다. 처리해 놓고 뭔가 모르게 마음에 걸린다, 이상하게 찜찜한데? 이게 맞는 건가? 싶은 건 반드시 내가 안내했던 내용이 틀렸고, 큰 항의로 돌아온다는 것. 그래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꼭 다시 체크를 한다. 먼저 안내하지 않고, 확인하고 다시 안내드리겠다고 종료한다.
이런 습관을 만들어준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있다.
분홍색 파우치를 받고 싶었던 한 고객은 해당 이벤트 금액과 도서에 맞춰 구매했는데, 사은품 노출이 안되어 문의를 했다. 같은 분홍색 파우치이지만, 다른 모양의 파우치가 출판사 이벤트와 당사 MD의 이벤트에 각각 걸려 있었다. 물론 수령 조건도 달랐다. 나는 ‘분홍색’만 듣고는 고객이 선택한 파우치를 받을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모두가 예견할 수 있듯, 고객이 말한 분홍 파우치는 다른 파우치였다. 결국 다른 상담원을 통해 욕설을 퍼부으며 재인입됐고, 내가 잘못 안내했으니, 내가 다시 상담해주라는 매니저님의 지시가 있었다. 당사 부담 반품으로 마무리되어가던 중, 받은 분홍 파우치는 그냥 쓰고 싶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받았다. 도대체 그 험한 말들은 왜 쏟아낸 것인가!
사은품만 받으실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연도 있다. 신입 때의 흑역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이건 정말 기억에 크게 남는다. 홈페이지를 통해 교환 신청을 했던 고객은 마찬가지로 홈페이지를 통해 교환 정보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정보가 없다고 했다. 자주 듣던 문의는 아니어서, 나는 몇 번을 반복해서 물어봤고, 고객은 짜증이 날대로 나 있는 상태였다. 해당 부분 확인하고 연락하겠노라고 했더니, 본인도 바쁘니 문자로 달라고 했다.
지원 담당자에게 클레임 접수를 하고, 이 건은 직접 로그인해야 알 수 있다며 고객 동의 후 로그인을 해보겠다고 했다. 바쁘시다고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떡하죠.. 어영부영하는 사이 지원담당은 로그인을 시도했고, 나는 황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고객님의 오류건 확인 위해 임시 비밀번호 발급하여 확인해보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시스템 오류로 확인되었고, 고객께 문자 안내도 드렸다. 다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던 고객은 매니저도 아닌 개인정보 담당자를 소환했고, 개인정보 동의 없이 사용한 부분에 대한 문서를 요구했으며, 소송을 걸 거라고 했다.
개인정보는 워낙 민감한 부분이어서 고객 동의 없이 로그인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실수인데, 빨리 해결하려는 마음, 지원 주임과의 소통 부족, 화내는 고객에게 다시 전화 걸어 대화를 시도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등이 일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 이 일은 전사적 이슈가 되었고, 나는 개별적 교육을 받았으며, 상담원이 임시 비번을 발급하여 로그인하는 일은 이제는 고객 동의가 있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고객은 아직까지 소송은 걸지 않았다.
고객이 귀찮아해도, 화를 내도, 내가 확인해야 할 건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
고객의 항의는 상담원을 교육시킨다.
매뉴얼을 잘 보지 않은 타입, 제품설명서를 꼼꼼히 읽지 않는 타입인데, 고객센터에 일하면서는 귀찮지만 주의사항, 안내사항을 꼭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온라인 주문 시에는 상세 이미지, 옵션명, 조건사항을 눈이 빠지게 체크한다. 사은품은 눈에 잘 띄게 올려도, 조건사항은 워낙 작게 기재되어 있어 고객이 놓칠 때가 많은 걸 몸소 경험했기 때문. 상담 초기에는 고객이 당당하게 사은품을 요구할 때면, 회사가 누락했다고 생각하고 클레임 접수를 했고, 포인트 적립 조건, 무료배송 조건 등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도 지원 담당에게 물었다. 당연히 클레임은 삭제되고, 지원에게는 피드백이 왔다.
“다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다 있기는 했다. 눈에 익자 자세히 안 봐도 다 보였다. 하지만 온라인 주문에 익숙지 않은 고객들은 나처럼 쓴 물을 삼키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안내가 되어있는 내용들은 어쨌든, 안타깝지만 도올 수가 없다. 그걸 알기에 구매자가 될 때에도 매뉴얼은 꼼꼼히 읽어보는 편이다.
브런치에 이렇게 많은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급변하는 상황과 다양한 고객들, 마음의 부침들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출퇴근 길이면 그날의 일들을 죽죽 적어 내렸다. 구독자가 하나, 둘 생기고, 좋아요가 눌리고, 어떨 때는 댓글도 달리는 걸 보면서 신기해하며 계속 글을 썼다. 또 어떤 글은 조회수가 7만 건 가까이 되었고, 어떤 글은 공유가 58개나 되는 걸 보며, 내 글이 공감이 되는 글인가? 하는 자신감도 조금 생겼다. 글을 쓰고 싶지만 꾸준히 이어가지 못한 이유가 ‘게으름’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었던 걸까, 생각도 들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고객센터에는 넘쳐난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