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없습니다만,

by 수박씨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동기와 내가 최고참이었다. 이제부터의 연차에서는 ‘책을 소개하는 일’ 따위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일의 중요도에 맞게, 회사에서 그 해에 치중하고자 하는 사업에 맞게, 업무를 개편하고 조정해야 했다.


동기와 연차가 똑같다 보니 승진에서는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진해봐야 10만 원 차이나 나려나,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는데, 둘 중에 한 명이 먼저 승진을 해야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서로 예민해지며 신경전을 벌였다.


한 살 어린 동기는 나보다 조직적인 일을 하는 데에도 탁월하고, 후배들도 동기를 더 믿고 따랐고, 인간적인 매력도 훌륭했다. 그렇다고 경쟁에서 질 수도 없었다. 경쟁심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타 부서의 과장님이 그녀를 자기 소속으로 데려가 일을 가르칠 때면 질투심이 폭발했다. 개편해야 할 업무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눌 때에도 그녀가 말할 때면 나는 어깃장을 놓았다.


사실 나에게 리더의 기질은 딱히 없었다. 무엇보다 결정력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합창단을 했던 때가 생각난다.


노래하기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동아리를 합창단에 들어갔다. 나를 따라, 친한 친구 두 명도 같이 들어왔다. 피아노도 조금 쳤기에 악보도 잘 봤고, 음정도 정확해, 금방 선배들의 눈에 들었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 파트의 장을 뽑아야 했는데, 나는 유력한 후보였고, 결국 파트장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그때 친한 친구 두 명이 2학년 때는 공부를 해야겠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딱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친구들 말에 휩쓸려 파트장을 포기하고 함께 탈퇴했다. 후로, 예뻐해 줬던 선배들은 교내에서 마주쳐도 쳐다보지도 않았고, 담당 선생님도 많이 실망하셨다.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 그때 리더를 잘해보았다면, 지금은 어떤 삶이었을까. 자책감과 후회만 남겼던 그날의 포기와 탈퇴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열등감 다루기

그럼에도 나는 리더가 되었다. 연차와 나이 덕분에. 고등학교 합창단에서는 명백한 실력이 있었는데, 회사에선 특출 나다 할 건 없었다.


8명의 파트에서 최고참은 두 명이었고, 팀의 리더는 한 명이면 족했다. 선배들이 나가고 우리는 갖가지 상황과 조정 끝에, 내가 대표로 업무보고 등의 일을 맡고, 동기는 지원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자꾸 삐걱거렸다. 집에서 첫째이기도 하고, 반장을 도맡아 하던 동기는 뭘 해야겠다 생각하면, 상의 없이 혼자 후배들을 불러내고, 의견을 던지고, 일을 지시했다. 나는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나하고 먼저 상의하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를 리더로 생각은 하나? 맞는 말을 하긴 하는데, 후배들과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몸이 뒤틀리고 얼굴 근육이 경직된다. 이게 뭐지, 열등감인가. 왜 나는 그녀보다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지 못했을까.

그래, 열등감. 네이버 지식사전을 뒤졌다.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무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며 무의식 속에서 자기를 부정하기도 한다.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하고 불안심리를 동반한 이상행동을 보이며, 항상 경쟁에서 자기는 실패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한다.


여러 가지 점에서 타인과 비교했을 때 자기가 못하다고 느끼는 기분으로 우월감의 반대 감정이다. 신체적인 결함이나 환경 등에 의해 생기는 것이며 보통은 이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여러 가지 심리적 경향을 수반하게 된다. 때로는 이것이 오히려 보통 이상의 일을 해낼 수도 있으나 신경증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 청년기에 많이 나타난다.

외적 조건에 대한 인간 소질의 반응 지향성(指向性)의 하나이며, 특히 인간관계에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고 자신이 없는 성질을 말한다. 안전관리를 수행하는데 개인교육에 의해서 시정이 필요한 성격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 사전]

나의 부족한 면을 너무 잘 알았다. 동기는 내가 가지지 못한 리더십을 가졌다. 내가 자신이 없는데, 보는 후배들이라고 몰랐겠는가! 아, 쪽팔리다! 쿨하게 따라주고 인정하고 싶은데, 이건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행동으로 일관이다. 얼굴 표정은 점점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반응에 누구라도 '저 언니 기분 언짢구나' 알 수 있을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하고 있는 찰나, 네이트온의 메신저가 꿈뻑꿈뻑거린다. 동기다.

"언니, 지금 기분 안 좋지!"


"응"


"왜?"


"나는 네가 그렇게 혼자 결정하고 행동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내가 뭘 그렇게 혼자 결정했는지 모르겠어."


"예를 들면, 내가 회의에 다녀와서 나 혼자 알고 있는 걸 후배들이 다 알고 있는 투로 말한다고 네가 조언했던 것처럼, 나도 그런 거 하고 같아. 적어도 후배들한테 얘기하기 전에 나하고 먼저 상의했으면 좋겠어."


"아, 그건 인정.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꾸 혼자 나가네."

그 당시 동기와 나는 회사 합숙소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날이 선 대화들로 고단했던 다음 날 아침, 동기는 시원~하게 끓인 오징어 뭇국을 내놓으며 말했다.

"언니를 위해 준비했어! 어제 생각해보니까 잘못한 게 많더라고. 네이트온 대화를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봤어. 언니의 반응도. 언니는 처음부터 참고 있었더라고. 나중에야 티 낸 거지만. 맞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애틋한 동기였기에, 동생이기도 한 동기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열등감에 빠져있지 않고 다음을 도모할 수 있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경쟁해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열등감을 가져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참 다행인 것은, 그런 숱한 고민들이 언제고 내 곁을 지키고있지는 않다는 것. 시간에 기대면 해결은 안되더라도 흘러가기는 한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도, 지나친 상황과 환경들이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 시간에 기대어봐도 되는 이유다.


기대하지 않았던 직원이 의외로 오래 버티고, 잘 나가던 유망주는 더 좋은 곳을 찾아가고, 우리네처럼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전념하고자 퇴사하기도 한다. 열등감처럼 날 선 감정도 세월에 무뎌지기도 하고, 의식하지 못한 사이 약했던 감정들이 단단해지기도 한다.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던 직원이 의외로 진국임을 발견하기고 하고, 세상 좋은 사람인 줄 알았지만, 나에게는 의미 없는 사람임을 깨달을 때도 있다.


견디고 버텨온 시간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다는 게, 삶의 신비고, 살아 볼 만 이유 아니겠는가!

keyword
이전 12화입사 3년 차, 아직 열정은 많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