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내공모
복직 전 원래 있었던 부서가 일반직 부서와 통합되면서, 직원 모두 일반직으로 직계 전환이 되었다. 그리고 팀원 중 한 명이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되어 TO가 발생했고, 잡포스팅으로 인원 충원 예정이었다. 내 복직 시점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TO가 없었던 건 아니었나? 그 부서에서 나를 거절한 걸까? 의심은 됐지만, 일단 지원했다. 눈이 빠지게 HR 시스템을 들락날락, 메일을 들락날락하며, 서류합격 소식을 기다렸다.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서류는 당연히 통과할 것이라 믿으며.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왜지? 어째서 서류조차 연락이 없는 거지?
전공이며 해온 일이며 내가 가야 마땅한 일 아닌가?
알고 지내던 단장님에게 연락해봤다.
아직 면접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고, 연락이 갈 거라고,
안 가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다.
위안을 삼고 다시 더 기다렸다.
일주일째 연락이 없자, 나는 인사과에 전화를 했다.
담당 팀장님은 휴가 중이고, 서류 절차는 발표가 났으며, 면접은 오늘 끝났다는 안내를 받았다. 나는 사유를 물었고, 전화를 받은 대리님은 당황하며 '사유요?' 하고 되묻더니, 사유는 팀장님 휴가에서 오시면 그때 물어보라고 했다.
분했고, 억울했고, 회사에 화가 났다.
이미 10년 차가 넘어버려서?
금을 받아버려서?
업무 능력이 안돼서?
육아휴직이 아직 남아서?
아이가 셋이라서?
가늠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 세어보았다.
다른 부서였다면 몰라도, 내가 있던 부서가 통합된 곳이고, 업무도 빤히 아는 곳이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서류부터 탈락이란 말인가?
휴가 후에 꼭 물어봐야지 했다.
하루 이틀 지나자,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사유 알아봐야 뭘 하나.
어차피 되지 않은 일이고, 되지 않을 일인데.
적성에도 맞는 일은 아니었잖아. 그냥 일반직으로 전환되고 싶었을 뿐.
회사에서도 그걸 설마 알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일반직으로 전환되고 싶은 건가?
급여였다.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고민이던 월급.
대리만 달아도 월급이 300으로 훌쩍 뛴다.
전문직은 200 언저리에서 매년 5만 원 오르는 게 전부다.
일반직으로 가서 업무량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데이터만 계속 입력해야 하는, 적성에는 전혀 안 맞는 일인데도 꾸역꾸역 돈만 받으면 하겠는가?
생각해 보니 회사를 그만두는 지름길이 될 것도 같았다.
직급과 급여가 비슷한 수준이라면, 상담팀에서도 열심히 잘할 수 있는데...
어쨌거나 마음 접고 상담팀에서 열심히 근무 중이다.
다시 잡포스팅이 뜨면, 지원을 해야 할까?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걸까?
우연히 잡포스팅 합격자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한번 식사를 한 적 있는, 상담팀 신입이었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어린 친구였으며, 학력도 인품도 훌륭했다. 내가 인사팀장이고, 부서장이었어도 그 친구를 택할 것은 명백했다. 인정을 하고 보니, 더 힘이 빠졌다. 내가 갈 곳은 어디인가.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내 나이 마흔이 가까웠고, 아이는 셋이나 되고, 나에겐 지금 이 자리가 딱인데,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인가?
- 두 번째 사내공모
복직 후 첫 사내공모의 쓴 물을 마시고도, 나는 공채 사내공모에 다시 지원을 했다. 줏대도 없지, 매장이라면 다를까 싶어서 다시 도전한 것이다.
직무 경력서를 정성스레 써내고, 실기 테스트를 보기 위해 회사 정관과 기초지식을 출퇴근 길 종이가 닳게 반복해서 보았다. 십 년을 넘게 다닌 회사에서 다시 신입으로 일하기 위해 책자를 들여다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착잡했다. 타사 입사의 경우 당연히 거쳐야 하는 수순이지만, 10여 년을 일한 곳이고, 보통은 경력기술서와 면접만으로도 뽑는 수순인데, 2차 실습과 면접까지 있는 이 기나긴 여정을 하는 게 맞는지, 한다고 되는 일인 건지 갈팡질팡이다. 회사에서는 공채 형식으로 전문직군을 일반직으로 전환시켜 주는데, 작년부터 이 제도가 생겼다. 초년생을 위한 제도일 텐데, 내가 지금 굳이 일반직을 지원하는 게 맞는지, 지원을 했으면서도 고민이다. 인사팀에 전화하니 일단 나이 제한은 없다고 확답은 받았다.
칼퇴가 보장된 직군으로 일하면서 나름 다른 공부도 해봐야지, 글도 써야지 야심 찬 포부도 있었는데, 공모가 뜨면 자동반사적으로 지원을 한다. 신분 극복을 갈구하는 사람마냥, 그냥 직군 전환을 하고 싶은 욕심이기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다.
필기시험 전형은 코로나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렀다. 아주 신박한 경험이었다. 핸드폰으로 내가 시험 보는 영상을 찍어 시험관이 감시하는 방법, 코로나 시대에 맛보는 시험방식이었다. 정해진 분량을 공부하는 거였기에 시험은 무리 없이 봤다. 아마도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음으론 면접 일정인데, 5인 이상이 모여야 하기에 진행이 안되고 있다. 그리고 해가 바뀐 마흔의 초입 화상 면접이 진행됐다.
1차만 두 달여 기다렸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지 않아 결국은 화상으로 진행된 면접. 모바일로 하는 건지, 노트북으로 하는 건지부터 헷갈렸다. 방법을 보니 모바일인데, 모바일로 10명 이상이 모여 다대다 면접이 가능하다고?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이 안됐다. 노트북으로 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모바일로 미팅에 참여했다.
마이크를 켜고, 카메라를 켜고, 한 명씩 테스트를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도 면접을 볼 수 있구나! 필기시험 때도 놀라웠지만, 면접은 더 신선했다. 면접자는 각 휴대폰을 사용하고, 심사위원은 한 명씩 차례로 휴대폰을 옮겨가며 질문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외부차단을 해놓지 않은 나는 면접 후 만나야 할 대출상담사 전화를 끄느냐고 미팅장을 몇 차례 들락날락했다. (이상하게 전화를 거절하고 나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런 사건사고에도 무사히 면접은 진행되었다.
매장직 공모였으나 본사 직무가 가능한 인재를 뽑는다고 했다. 질문은 날카로웠다. 2명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매장일을 하고 있던 직원들이기에, 그분들에게는 좀 더 구체적인 성과나 계획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공통적 질문은 본사에 가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지 이유와 함께 설명하라, 오프라인에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향후 5년간 집중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 어떤 게 있는가 등의 질문이었는데, 추운 건지 긴장한 건지 초반에는 바들바들 떨며 대답했다. 그건 다른 면접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면접 경험이 많지 않아서, 집에 오고 보니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저 말은 왜 안 했지, 그 말은 뭐하러 한 거야. 면접관은 왜 나에게만 그런 질문을 했을까, 혹시 합격인가? 근데 저 면접관에겐 너무 이상한 말만 했잖아.. 떨어진 것 같아..
떨어지면, 더 이상의 사내공모는 지원하지 못할 것 같고, 회사에 대한 상처도 클 것 같았다. 붙으면, 주말근무와 오후근 무시 아이들을 어떻게 케어해야 하나, 어머님한테 다 부탁드려도 괜찮을까, 주말 도우미를 써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을 뒤척인다.
마지막에 인사팀장님이 화상면접에 대한 소감을 물었었다. 다들 만나지 못해 아쉽고 더 떨렸다고 했는데, 나는 신선하다고 답했다. 그게 사실이었고, 내가 어디 가서 화상면접을 해보겠나 싶었다. 면접이란 것이 현재 내 위치를 알기에는 더없이 좋은 관문이고, 여실하게 나의 부족함을 목격하고 한없이 작아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잘했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두 번 면접보고 싶진 않지만, 수고했다!
-미련은 남지만, 이제는 떠나보낸다.
면접을 보고 합격 당락은 빨리 결과가 나오는 편이다. 합격자는 전화로 가장 먼저 알려준다. 면접을 보고 휴일이 지나고 출근길에, 빠르면 오늘도 결과가 나오겠거니 하며 길을 나섰다. 수십 번 메일을 들락날락, 부재 전화가 없는지 들었다 놨다, 결국 퇴근길에 인사팀에 전화했다. 결과가 혹시 나왔는지. 지금 정리해서 보고할 거고, 빠르면 내일 나온다고 했다. 작년에도 무작정 기다리다 이미 결과가 다 나왔던 전적이 있어, 마냥 기다리기 싫어 인사과에 바로 전화해 물었다.
내일이 되었다. 두 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처음 입소하게 되어 아침부터 준비하느냐 정신이 없었다. 이 날 등 하원만 세 번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휴대폰으로 회사 메일을 새로고침 해가며 수시로 확인하고, 전화기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오후가 늦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또 인사과에 전회하긴 민망해, 담당 과장님께 문자를 넣었다. 결과가 나온 거냐고. 오늘 중 메일로 공지된다고 했다. 실시간 메일 새로고침. 드디어 메일에 1이 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불합격이다. 필기시험은 30점 만점에 27점이었으나, 면접점수는 30점 만점에 15.6. 1그룹에서 3그룹으로 나뉘었고, 나는 2그룹에 속했다. 공통역량은 우수하나 직무역량 향상을 위해 현직무에서 지속적인 성과창출이 기대되는 자, 란다. 망할. 그냥 니 자리에 만족해, 라는 메시지였다. 시험 결과는 면접이 다였다. 허무했다. 자신감도 바닥을 쳤다. 퇴사하고 싶었다. 내 나이 마흔이고, 이젠 나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가 없다. 지금까지 해온 성과가 나의 전부였다. 회사의 마음을 알아버려, 회사에서의 나의 미래가, 낙심됐다. 앞으론 어떻게 지내야 하지. 난 뭘 해야 하지.
다시는 지원하지 않겠다, 사내공모.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