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원점

결국은 글쓰기

by 수박씨

익숙해졌다 싶었지만, 불평과 욕을 듣고 매일같이 사과하는 일은 쉽게 익숙해지진 않았다. 괜찮다 하면서 머리와 가슴속에는 차곡히 쌓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동료들 덕분에 훌훌 털곤 했는데, 요즘은 동료들이 우후죽순 퇴사와 힘듦을 호소했다. 이곳에서는 미래가 없다,라고 퇴사한 동료가 말했다.


보통, 급여가 적으면 노동의 강도가 약하거나 스트레스가 적어야 맞는 이치인데, 최근 코로나 19 덕분에 과중된 업무강도가 퇴사 결심을 부추기는 듯했다. 회사 사정도 좋지 않아 부서이동의 기회도, 임금인상도 모두 줄어드는 추세니, 그만두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입사 초기 월급이 적어도 참을 수 있었던 건, 새로 나온 책을 제일 먼저 읽는 뿌듯함, 전문가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북소믈리에로 불리던 당시, 우리끼리는 전문가라고 인정하진 않았지만, 타인에게는 꽤나 글쓰기와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로 인정받았다. 취미처럼 일할 수 있었던 점, 맘을 나누는 동기가 있었던 것이 10년째 일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고객센터의 신입은 그런 점에서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사회적 인식도 낮고, 매일 욕을 들어야 하는데, 급여도 형편없다면, 일할 맛이 나겠는가. 나도 이곳에서 신입을 시작했다면, 한 달이나 버텼겠는가 싶다.


이따금씩 만나는 기분 좋은 고객들, 서비스를 잘 해냈다는 만족감 따위의 자잘한 것들로 그럭저럭 무탈하게 이 일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퇴사하는 동료를 보낼 때마다 고민한다.


새로 시작하는 월요일,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마다 이 주는 무탈할까, 회사에 별일은 없을까 따위의 걱정을 사서 하는 일, 좋은 고객을 만나는 기대감보다는, 이상한 고객을 만나지 않기를 마음 졸이며 시작하는 일상을 과연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퇴사한 옛 동료의 일상들이 궁금하다


퇴사해서 딱히 할 일도, 육아만 전념하는 것도 원하는 일은 아닌데,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퇴사 후에 어떻게 지낼까 자꾸 궁금하다.


최근에는 연락을 거의 안 했으나, sns 친구이기도 한지라, 예전 동료의 소식을 종종 접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조금 크자, 지금은 독서논술교사 자격증을 따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자격증은 있는데. 예전에 생각하긴 했었지. 잘하고 있나? 아이들 모집은 어떻게 했을까? 유지는 되나? 오랜만에 연락이나 해볼까?


또 이직했으나 최근 그 회사에서도 퇴사한다는 예전 동료의 sns를 보고, 그녀는 이후에 어떤 계획이 있으려나 궁금했다. 퇴사한 친한 동료도 옆에 버젓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연락도 잘하지 않던 동료의 퇴사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갖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는 퇴사해서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해외출장이 잦은 남편 덕분에 거의 혼자 아이들을 키워냈고, 틈틈이 방통대 유아교육과 공부를 시작하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 후엔 임용시험 자격도 있다고 하니 새로운 진로를 앞두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하도 마우스로 클릭하고 키보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쳐내야 하는 것도 일인지라, 오른쪽 팔목에 굳은살 같은 게 생겼다. 생전 없던 턱관절도 아파오고, 집에 가면 목이 아파 말하기도 힘들고, 고객들 성화에 대응하느냐 늘 긴장상태에 있다 보니 어깨도 굽은 것 같다. 적성을 떠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퇴사한 동료들이 부쩍 궁금한 이유일 테다.


그렇다고 퇴사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커가고, 유치원비만 해도 50이 넘는다는데, 나는 고만고만한 아이가 셋이나 있다. 남편이 고소득자도 아니고, 창의적으로 놀아줄 수도, 지적으로 가르칠 수도 없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엄마여서, 계속해서 돈은 벌어야 할 운명이다.


-지나친 나의 꿈들

1. 공무원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는 공무원,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대학 때야 아직 물정을 몰랐고, 회사에 입사하고 2년 후쯤, 낮은 급여와 진급체계 등에 대한 불만이 생기던 그때, 퇴사하려면 그때 박차고 나갔어야 했다. 입사 동기 중 하나는 바로 그 시점에 퇴사를 결심하고 대형 출판사에 입사했고, 지금은 재이직에 성공하여 과장이 되었다.


나 또한 그 시점에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했다. 글도 쓰고 싶었고, 심리상담사도 되고 싶었고,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고 싶기도 했다. 실제로 하고 싶은 건 상담일을 하며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 길도 만만치 않고 안정된 복지가 보장돼 있지 않기에 시험 준비만 하면 공정하게 입사할 수 있는 공무원이 가장 손에 닿는 미래였다.


그러던 차에 국립중앙도서관에 9월 시험이 있다는 공고를 보고 7월부터였나, 급하게 공부한 적도 있다. 전공만 보는 시험이어서 준비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3개월 정도 공부하기엔, 전체적으로 한 번 정도 강의 들으며 문제 체크하는 데만도 시간이 모자랐다. 결과는 역시나 낙방. 절박했다면 더 공부했겠지만, 잘리지는 않는 회사가 아직 있기에, 에이 그냥 여기서 얇고 길게 가자, 하는 맘으로 그만두었다.


2. 작가


결혼 전에는 글쓰기 수업도 열심히 들었다.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하나는 내야지 하는 맘으로 교육도 받고 쓰기도 했지만, 글을 쓸수록 내가 뱉어낼 무언가가 별로 없다는 절망감, 삶을 바꾸는 용기도 없는 게으름으로 자신감을 잃었고, 결혼과 맞물려 자연스레 작가라는 원대한 꿈은 고이 숨겨 두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노트북을 켰고, 글 쓰는 창에 끄적였다. 그러다 고객상담팀으로 복귀하면서 꾸준한 기록의 장이 열렸다. 다시, 꿈을 꾸고는 있지만, 출간 작가도 글로 밥 벌어먹기 힘든 마당에, 이 꿈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마음이다.

3. 심리상담사


결혼하고서는 심리상담 공부를 하고 싶어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지원해 합격하기도 했다. 돈 십 되는 전형료를 내가며 필기와 면접까지 봐서 합격했는데, 남편이 심리상담학과 나와봤자 지금 자리보다 수입도 적고 안정적이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많다는 부정적 의견에 힘입어 입학을 포기했다. 자신감도 없고 귀도 얇은 탓이었다. 이미 공부로 많은 돈을 써봤고, 부질없었다고 느꼈기에, 대학원이 꼭 가야 할 길인가 싶어, 일단 그때는 접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 낳기 전이 뭐라도 시작하기에 가장 여유로운 때였는데 해보기나 할걸, 지나고 나니 아쉽다. 그때 대학원 진학을 했다면 지금은 전업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봤던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겉핥기식으로 지나쳐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어린 시절, 어려운 형편으로 자랐던 나는 '안정'적인 직장이 우선순위였다. 일을 그만두고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다른 환경에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업무 스트레스에 취약한 종잇장 같은 정신은 지금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적게나마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익숙한 환경이 좋았고,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육아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WITH 코로나? WITH 글쓰기!


그럼에도 아이들의 돌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유로운 휴가가 어려울 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갖가지 스트레스로 퇴사 욕구는 마르지 않을 것이기에, 언제까지 직장맘으로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글쓰기만은 내가 일을 하든, 육아를 하든, 둘 다를 하든, 평생 함께 할 나의 '직업'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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