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쓰고, 출근도 합니다.

by 수박씨

브런치에 조금씩 썼던 글이 아까워, 나도 한번쯤은, 아니 시작이 어려운 거니, 발이라도 떼 봐야지 하고 기존 글을 바탕으로 목차를 구성했다. 새로 다시 쓰기도 하고, 예전 글을 가져오다 보니 내용이며, 목차며,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검색창에 '책 한 권 분량'을 검색해 봤다. 'A4용지로 110~120매, 2페이지가량의 글 40 꼭지'면 책 하나가 된다고 했다. 목차부터 촘촘히 다시 짰다. 이제 글만 빼곡히 채우면 되는데, 여정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써왔던 글을 재가공하려던 의도였지만, 책 하나가 만들어가는 분량으로는 어림없었다. 스멀스멀 의심이 끼어들었다.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정여울 작가가 최근 [끝까지 쓰는 용기]라는 글쓰기 책을 낸 것을, 우연히 광고로 접했다. 아직 읽진 못했지만 제목만으로 힘이 되었다. '끝까지만 써보자!'라고 다잡게 되는 문구였다.


그러던 중 메신저에 입사동기 동생이 보였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던 중 다니던 회사에서 이직하게 되어, 인수인계로 정신이 없다고 했다. 과장 승진은 물론이고, IT계열 책의 편집자가 된다고 했다. 편집자라고 하니 어쩐지 방금 써놓은 목차를 보여주고 싶었다. 목차와 함께 입사 초기 우리가 함께 했던 이야기도 보여주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꼭 쓰라고 응원해주었다.


그녀는 입사동기의 글쓰기 멤버였다.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던 4명의 동료들은 퇴사 후에도 연락하며 지냈는데, 멤버는 입사동기인 까르르 3인방과,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하여 당시에는 작가 지망생이었고, 퇴사 후에는 출간 작가가 된 한 명이었다. 요즘은 각자의 삶이 바쁘고 미혼과 기혼으로 삶의 풍경도 달라져 소원해져 있었지만, 내 글을 본 과장 동기는 작가 동료에게 내 브런치 주소를 던져주었고, A언니도 브런치를 하느냐고 묻길래, 당연히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글쓰기 멤버였던 4명의 동료는 모두 서로를 구독했다. 과장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이 언니들 다들 뭔가를 쓰고 있었네! 나도 이제 써볼래!"


나의 대답은 이랬다.


"한 번 글쓰기를 한 사람은 멈출 수 없지. 뭐라도 끄적이고 있지!"


아이와 밤에 읽던 책 중에 [가장 가장 멋진 소풍]이란 동화가 있다. 두더지와 다람쥐는 가장 친한 친구고, 서로의 모든 활동에 함께하며 즐거워한다. 두 친구는 도시락을 싸고 여행을 결심한다. 두더지는 보통 다람쥐의 의견에 따르는 편이다. 버터를 넣은 샌드위치를 싸고 싶었지만, 버터는 넣지 말라는 다람쥐의 요청에, 두더지는 버터 없는 샌드위치를 만든다. 다람쥐는 자신이 생각한 가장 멋진 여행지를 찾아 떠난다. 꽃이 만발한 들판은 그늘이 너무 많아서 싫고, 그늘이 많던 갈대숲은 해가 없어서 최고의 여행지가 아니라고 한다. 가방에 챙겨 왔던 도시락, 차, 담요, 그릇 등이 다 떨어진지도 모른 채, 두더지는 힘들게 다람쥐를 따랐고, 최고의 여행지를 발견했다던 그곳은 이미 지나쳐 왔던, 두더지는 멋지다고 이미 감탄했던 장소였다. 다람쥐만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챙겨 왔던 장비들은 모두 떨어뜨린 후였다. 이야기는 주변의 동물 친구들이 떨어진 장비들을 찾아다 주고, 이제는 다람쥐도 두더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함께 도시락을 즐기는 장면으로 해피엔딩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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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읽었던 동화가 이상하게 마음에 박혔다.

글쓰기가 소망이던 나는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아이를 돌보는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 아니라, 언젠가 글에 전념하는 때가 오리라, 막연히 기대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러더라. 언니야 말로 다 가진 거 아니냐고. 결혼은 하고 싶으나 일복만 가득하여 승승장구하는 친구는 평생의 반려자의 숙제가 남았고(결혼을 원하는 친구라는 가정이다.), 가정은 있으나 출산 후 다시 일할 곳은 없는 친구는 재취업의 숙제가 남아 있지 않냐고.


오호라, 맞는 말이었다. 때로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내 급여가 어떻든, 내 위치가 어떻든, 나는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었고, 가정도 있고, 심지어 이렇게 글도 쓰며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글쓰기에 전념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다가, 지금 여기의 행복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최고의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준비물들을 모두 잃을 뻔한 다람쥐가 내가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나의 해피엔딩은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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