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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Nov 26. 2023

끊어지지 않는 인연들

엄마에게 갑작스레 들이닥친 암세포로 내 40년 인생이 휘청거렸다. 인생의 큰 고비 앞에서 지인들의 관심 한마디, 안부 한마디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30년 지기 친구라는 고딩친구들은 그 흔한 괜찮냐는 인사조차 없었다. 셋 중 두 명이 알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은 내 평생 단짝인 친구였음에도 연락 한 번 없기에 서운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 긴 우정 끊을 수 있으랴 싶어 내가 먼저 전화도 했었지만, 바쁜 그녀는 다시 연락하기로한 그날 2시를 훌쩍 넘어서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나는 그 고딩 그룹과는 연을 끊어야겠노라 다짐하고, 카톡방을 나오고,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인스타 팔로우를 삭제했다. 그리고 1~2주 지났을까 차단까지는 하지 않았던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가 왔다. 무심했다는 사과의 말들이었지만 그걸로도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학동기를 통해 연락을 취해오는가 하더니, 학교 도서관으로까지 전화를 하는 통에 차단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짝이었던 친구는 아빠가 아프셨을 때 괜찮냐고 묻는 질문이 그렇게 싫었단다. 일상을 살아가며 잊고 있는데, 괜찮냐는 말로 그 아픔을 끄집어내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럴 줄 알았다고, 그래서 부러 엄마 괜찮냐는 말만 피해서 했노라고. 


"그래도 한 번은 물었었어야지. 맨날 연락하는 사이도 아닌데, 한 번은 했어야지!!!"


라고 서로 울고 이야기하며 서운했던 마음을 풀어냈다. 다른 고딩 친구도 허울뿐인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차단에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나에게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에 고마웠다고 하니.. 이 관계는 내가 끊고 싶어도 끊을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이번 주말에는 갑자기 몇 년 동안 연락 않고 지냈던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카톡을 보냈다. 한참 후에 돌아온 답은 서울 신촌에서 만났던 우리가 2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인천에 와 살고 있다는 것. 서울에만 살던 우리가 같은 시기에 같은 동네에 있을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우리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그 주의 주일날 우리 교회로 그녀가 찾아왔다. 신앙이 없던 그녀에게도 새싹 같은 믿음이 자라고 있었나 보다. 20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스쳤던 많은 일련의 사건들은 그녀에게 신앙을 선물로 준 듯 싶다. 우리는 예배를 함께 드리고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을 사들고 교회의 한 구탱이에서 그간 업데이트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풀어내다가, 감격하다가, 공감하다가, 응원해 주다가, 틈틈이 들이닥치는 아이들 공격에 챙겨주다가, 정신없이 어제 만난 것처럼 수다 떨다가 쿨하게 헤어졌다. 다음 주에 또 온다는 그녀의 약속만을 남긴 채.


연락은 하고 지내지만 무심했던 인연과, 연락은 없이 지냈지만 다시 만나도 에너지가 넘치는 인연이 이번 주에 한꺼번에 왔다. 소중히, 알뜰하게, 예쁘게 가꾸고 싶다. 그들에게 나도 좋은 인연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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