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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Apr 27. 2024

또다. 또다시 그랬다.

아이한테 퍼부었다.

비난의 말을.

훈계가 아닌 비난을.

니 속에 뭐가 들었냐며. 썩은 것만 들었냐며. 그럴 거면 공부도 교회도 다 하지 말라며. 엄만 너무 싫다며.


핸드폰으로 영어 숙제를 하는 게 있었고, 아이가 숙제를 마치면 선생님께 영상을 카톡으로 공유했다. 혼자 알아서 할 수 있기에 그대로 두었는데, 뭔가 시간이 한참 걸리는 것 같아 뭐 하냐고 물었더니 선생님께 영상 공유하는 중이란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카톡을 보니 오픈채팅이 열려있다.


로블럭스 수다방, 이라는 채팅방이었다.

언더라는 닉네임이 자동 부여된 것 같았고, 아들은 빈정거리는 말투와 이상한 문자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이를 불러 세워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던 아이는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거짓말했다는 것, 채팅방에서 바르지 못한 말을 쏟아내는 것에 일장연설을 더해 평소의 말투도 그러지 말 것과, 속에 얼마나 나쁜 것들이 가득 찼기에 이상한 말을 쏟아내냐고. 이제 곧 있으면 욕도 하고 더한 것도 하겠다며,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아이를 공격했다. 작년 유튜브 영상에도 댓글을 달아 이런 식으로 혼난 전적이 있었다.


정작 핸드폰을 쥐어준 건 나고, 어떤 지침도 주지 않았으면서 애먼 아들을 잡았다. 반성문을 쓰게 하고 나도 진정한 후에 아이에게 그제야 그럴 수도 있다고. 네가 좋아하는 로블록스 채팅방이라니 궁금할 수 있었겠다고. 채팅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알 수 없었을 거라고. 채팅은 아직은 아는 사람하고만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픈채팅은 안된다고. 또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다 사람이 대화하는 곳이니 예의를 지키라고. 누구나 마음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 엄마도 사실 매일같이 나쁜 마음과 싸우고 있다고. 비난한 말들을 에두르며 지침을 내려줬고, 그렇게 폭풍 같은 저녁이 지났다.


다음날 밤, 침대에 누워 아이 다리를 주물러 주는데, 아이가 조그맣게 속삭인다.


자꾸 이상한 생각이 나. 네가 뭔데 라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ㅇㅇ는 줄넘기를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 대장이고, ㅇㅇ도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아, ㅇㅇ도 뭘 잘하고..... 나는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우리 아들은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영어도, 태권도도, 줄넘기도 다 잘하는 걸. 동생들도 잘 봐주고 얼마나 멋진데.


 수요일에 ㅇㅇ생일이라는데.


오 그래? 그럼 선물 준비해야겠네~


친구가 레고 사달래.


레고? 너네가 할 만한 레고는 너무 비싼데. 그건 부모님이 사주시는 거야.


아니야 ㅇㅇ가 사달라면 사줘야 해.


아니야. 친구가 사달래도 내가 줄 수 있는 적정선이 있는 거야. 그 이상은 친구가 사달래도 사줄 수 없어.


따끔히 이야기하고 아이를 재웠다.

새벽에 눈뜨니, 이게 다 나의 비난 때문이구나,

가슴이 저몄다.

자존감이 낮아져 친구에게 거절도 못하는 아이가 되었나.

이 모든 걸 어떻게 다시 바로 잡을까.

상채기 난 아이의 마음은 무엇으로 치유할까.

내 비난의 말들이 아이를 얼마나 괴롭힐까.


딸은 학교에 들어간 지 두 달여.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매일 화내며, 본인에게까지 그런다는 것이었다. 어르기도 달래기도 혼내기도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고 했다.


둘째인 딸은 기가 집에서도 센 편이다. 의견이 확실하고, 어른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그대로 따라 하며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있었다. 아이가 둘째로서 살아남는 방법이려니 하고 뒀는데, 밖에 나가서도 화를 내고 있다니.


그때도 아이에게 사회규범을 알려주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고함치고 화내는 나를 따라 했으리라.


나 때문이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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