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렇게 싸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또 그렇게 둘 일도 아닌 그런
결혼기념일.
어떤 커플은 그저 그런 날이 있는갑다 하고 넘어가고,
어떤 커플은 이 날만큼은 먹고죽자 하고,
그렇게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욕망도 적절히 버무리면서 보내는 날.
남편에게 7월에 있는 우리의 이벤트에 대해 그렇게 귀띔을 했는데, 아침에 디딩 하고 오는 것이 카톡으로 2만원 대의 목걸이였다. 목걸이. 2만원. 이걸 결혼기념일 선물이라고 줘? 화가 미친듯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남편에게 내가 준비한 선물은 20만원대의 면도기였다. 그러니까, 여기서 착각할 만한게 돈의 가치가 날 생각하는 마음의 크기 정도로 보이는 것이다.
뭐, 나는 그렇게 세속적이고 욕망에 찬 아내라서.
그리고 중요한건 말이다. 우리는 함께 모아서 함께 쓰는 사이기 때문에 20만원대가 아니라 200만원대로 갔으면 당연히 내가 제지하고 싫어했을거란 말이다. 그런데! 그래도, 심했잖아?
갑자기 또 시부모님이 느닷없이 오셔서 애아빠랑 오후 2시에 식사를 하셨다니,
그러니 또 내 분노는 이글거리면서 기름이 콸콸콸 부어지고 있었다.
전날 남편의 방에 들어가 밍기적 거리면서 남편과 결혼기념일의 계획을 짜고 싶어서 있었는데,
그때 왜? 난 유일한 휴식이라고 이게! 라고 하는 말에
기분이 팍 상해부렸고.
뭐 그렇게 쭈그러지고 화난 멘탈에 2만원대의 목걸이가 얹어지면서 이쯤되면 오후 6시 퇴근하자마자
불을 뿜는 공룡이 될 지경이었다.
내가 원하는거? 그때까지만해도 브래지어 하나 정도 비비안같은 데에서 예쁜걸로 사는거였는데.
이상한 목걸이에다가(분명 한번쯤 흘러가는 얘기로 V사 목걸이를 보여줬었는데? 그리고 심지어 그 목걸이를 사달라는 말을 한 적도 없다. 왜 이상한 비슷한걸...)
아...
차라리 손편지! 손편지라도 써달라고.
무슨 카톡 선물하기에서 베스트 1위같은거 주지말라고. (딱 성의 없음의 결정체)
그걸 왜 남편은 모를까. 하던 찰나에, 물론 그때까지만해도 기분을 꾸욱 누르며 아이 밥을 급히 먹이고 있었다.
친정부모님께 아이 맡기고 저녁 먹으러가자고 할 때 즈음에,
"그럼 우리 막창집 갈까?"
후... 정말 거기서 난 쪼각쪼각 터져버렸다. 남편은 정말 이벤트를 한번도 제대로 안했고, 프로포즈 조차 가성비로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정말 너무해서! 속옷 한 번 선물할때도 지마켓 베스트셀러에서 제일 싼거로 하더니, 이건 성의의 문제 마음씀의 문제인데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우린 대판 싸웠다. 남편은 본인이 하루종일 육아하는데 이런것까지 챙겨야하냐 마음씀을 알아달라고 했고, 나는 하루 종일 일하다 와서 저녁같이 먹자마자 육아 체인지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했고.
혼란의 도가니, 그와중에 친정엄마는 애들이 온다면서 안오네 하고 케이크를 전달하러 오셨고.
그때부터 엄마에게 왜그리 미안하던지. 엄마에게 듬뿍 사랑받고 행복하게, 편안하게 살던 나를 왜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가련한 여주인공 마냥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서른셋에 감정 과잉이 되어서 남편이고 아이고 다 떠나보내고 혼자서 그냥 콱 사라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슬펐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놈의 결혼기념일이 뭐란 말인가.
선물주는 날? 아니다.
그냥 내가 원한건 육아로 지쳤었던 서로를 위로하는 따뜻한 식사자리. 일년간의 계획과 더 잘살아보자는 다짐. 그런 소소한 로맨틱한 분위기였는데.
두돌 전, 말이 완전히 트이기 전의 아이를 키운다는건 왜이리 고된 일인지. 그날 깡소주를 들이부은 덕에(밥도 못먹고 빈속으로)
고해성사를 하는 마냥 남편에게 감정의 밑천까지 끌어올려 내보였다. 뭐, 그런데 남편은 참...
남편이 기대한 나는 왕후의 밥, 걸인의 찬처럼 고고하고 돈 하나도 신경 안쓰는 그런 여자였을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과소비는 아니어도 적당한 소비생활로 행복을 느끼고, 평범한 사람인데.
기념일 선물이란 것은 정말 교환의 의미가 있어서,
그게 설마 내 돈으로 하는 선물일지라도 (우리 부부 완전히 내돈네돈내돈네돈 개념)
적당히 좋은 걸 했으면 했는데.
생채기 난 마음을 위로하는건 결국 그날밤 남편이 끓인 라면이었다.
한젓가락 안 먹고 보기만 했지만.
일도 힘들고 육아도 힘들고, 반대로 육아를 주로 전담하고 일도 하느라 힘든 남편과 어서 아이 잘 키우고 소소하게 낭만을 즐기며 살았으면...그런 소망을 가져본다. 연애 기간이 짧았던 것이 참 아쉬웠는데, 요즘은 더 아쉽다. 결혼하고나서 연애하듯이! 라는 말은 애 가지기 전에나 가능한 것이라구.
사랑하는 남편이랑 사랑하는 아이가 있는데, 소소한 연애 감정이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그런 기름칠하는 감정이라도 요새는 보습제처럼 발라야 하는 심정이다. 육아를 하는 부부의 마음은 점점 피곤으로 메마르고 날카로워진다. 3주년 그렇게 또 허무하게, 어이없게 보내고 말았다. 하루 늦게 먹은 파스타는 전날 과음한 죄로 변기를 부여잡고 토해내야만 했다.
아직도 거칠고 소화하기 힘든 이 생활을 몇십년 영위하기 위해서, 얼마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해야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