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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gom Feb 12. 2022

일이 사라졌습니다. 임신하였습니다.

회사도 나도 날벼락인 걸.



머리가 혼란스러운 요즘, 8년차로 접어든 기자직을 그만둘 상황이다. 회사는 '비매출부서'의 종료를 예고했고, 권고사직을 받던가, 타부서 이동을 종용했고 나를 두고 이것저것 시켜 볼 생각에 단꿈에 젖어있는 국장의 모습에 기가 찼지만, 조용히 대답했다. 내가 이동하면 지금 뽑을 그 팀 신입은 뽑지 않을 것이라며 신나서 떠들어댔다.


"제가 임신했거든요."


이런 걸 임신 공격이라고 하나. 임신 대답이라고 해야하나. 이 팍팍한 세상에 임신이 두번째라니, 회사 입장에선 기가 찰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첫째애 복직 이후 회사는 꾸준히 내 일을 종료할 태세를 보여왔고, 세이굿바이의 시간은 째깍째깍 다가왔다. 쐐기를 박은 것은 다른 기자들과의 회동. "언제 둘째를 가질 셈이냐. 더 터울이 나기 전에 빨리 가져라." 이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역시 내가 출산휴가, 육아휴직 쓰고나면 돌아 올 자리는 없겠다 싶었다. 매일 통화하며 우리는 이제 우리 살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누군가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고, 미래를 위한 궁리를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더이상 터울이 지기 전에 둘째를 낳아야겠구나. 회사는 모르지만, 만 3년 정도 일을 쭉 할 수 있도록, 아이를 일부러 갖지 않았다. 그래야 출산 휴가, 육아 휴직, 실종(?)의 역사를 끊고 복직의 테이프를 처음 끊어낸 사람으로서 다음 턴의 사람이 생기길 바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회사를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일했는지 마음이 서운할 지경. 비매출, 비매출하는 것도 참 듣기 싫고. 비매출을 만들어 나를 채용한 것도 그들이건만. 더 이상 돈 까먹는 인력 취급하는 현실이 슬펐다.


9월달까지 업무하면 고작 7개월이 남았을 뿐이다.


다음 날 회사는 권고사직과 실업급여를 받는 쪽을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 하나만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신입이 오래 일해줄 것이라고 (우습게도 6개월 못 넘긴 신입을 7년간 본 것만 다섯은 넘을 듯) 굳게 믿고있는 듯 했다.


다들 그랬다. 버티라고. 다른 팀에 가서도 딱 7개월이라고.

어떤 이는 막 분개했다. 이것이야말로 눈에 띄는 임산부 차별이라고.

남편은 언제든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내 마음은 네가 지금 그만두는 것인데. 너무 오래 다닌 직장이라 너의 선택에 따른다고.

회사는 남편이 더 다니라 말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고양이 쥐 생각하듯이 "네가 안정해야 하는 시기라며, 집에서 많이 얘기해보고 대답해주는 것이 좋겠다." 라고 되돌았다.


뱃속 아이에게 참 미안하다. 무능력해져서, 더이상 글이 필요없는 세상이 와서 엄마는 집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는구나.


나의 결정은 만 이틀이 남았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고민하겠지. 그러나 사실 대답은 기운 상태. 저는 일하겠습니다. 당장 벌 수 있는 돈이 있어야 유지되는 생활이고, 그래서 출산 이후에 육아휴직이 절실하다. 어차피 회사는 나를 내칠 카드를 던졌고, 나역시 회사를 내칠 카드를 던졌고. 우리는 아름다운 이별은 못되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가고, 머릿속은 이글거리던 분노의 시기가 지나 고요해진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일은 시작부터 험난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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