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흔적이 너무나 많다.
집안일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먹고 자고 살아내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은 왜 이리 클까.
무지막지한 쓰레기, 플라스틱, 종이, 음식들. 대체 무얼 사고 무얼 쓰고 무얼 버리고 있는지 어지럽다.
생산적인 일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은 요즘의 생활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바쁘다.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가 많아 라벨을 떼고 분리해서 통에 넣어두고는, 아침을 위해 스프를 데웠다.
지난 밤에 건조기에 넣어둔 빨래가 있지만 그건 일단 모른 척하고, 설거지부터 한다. 명절에 가져온 갈비, 생선이 남기는 뼈와 가시가 한가득인 휴지통을 가만히 보다가 집안 쓰레기를 긁어 모아본다. 음식물 쓰레기는 도로 냉동실 행이다.
한참 그렇게 집안일을 하고 나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계란을 하나 부쳤다. 내내 명절음식만 먹기는 입에 물려서 볶음김치와 햄을 대접에 비볐다. 그러고 나니 볶은 후라이팬과 밥공기, 계란 노른자가 묻은 대접과 수저가 남아 다시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 시작하기 전에 모카포트에 커피 먼저 끓였다. 마치면 커피라도 마셔야지. 에어프라이어까지 닦고난 뒤 개수대에 고무장갑을 널어두고, 얼른 커피 한 잔을 컵에 따랐다. 책상인지 밥상인지 모를 탁자에 앉아 멍하니 커피를 마시다가, 그러다가 이 집안-일이라는 생각의 골에 쭉 빨려들어온 것이다. 벌써 세 시다.
이 많은 일은 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걸까. 이걸 엄마 아빠는 어떻게 다 해낸 걸까. 왜 난 이제야 알았을까.
생각없이 살다가는 정말 살아지는 대로 살겠구나, 눈앞의 일만 해치우기에도 집안일은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여하튼 이제, 오전 살림을 마치고 라디오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주부들의 일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한 잔에 괜히 여유로워진 기분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일과의 경계가 없는 프리랜서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예고편같은 날이었다. 이제 커피를 다 마시면, 건조기에 들어 있는 속옷 정리를 해야겠다. 저녁 시간이 되면 쓰레기도 버리러 나가야겠구나. 아, 집안일은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