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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야 Oct 02. 2021

공동체를 파괴하는 '능력주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마이클샌델 교수는 공동체주의자다. 그는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개인의 존엄과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추구할 방법을 모색한다. 이번 도서에서는 공동체를 붕괴하는 능력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비판한다. 그리고 공동체 회복을 위한 대안을 이야기한다.


‘아메리칸 드림’.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이 구호는 미국의 능력주의 선호를 보인다. 한국에서도 ‘노력하면 다 된다.’는 부모세대의 대표적 구호이다. ‘노력하여 능력을 쌓는다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중산층, 상류층으로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노력하여 능력을 갖추고 부와 명예를 쌓는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공정’이다. 능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외부 영향 없이 각자의 노력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그 만큼 ‘공정’은 핵심 윤리가 된다. 능력주의는 우리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가고 있을까?


똑같이 노력했지만 시장이 반기는 재능은 없는 탓에 뛰떨어져 버린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p.52

아주 가끔 스포츠 스타들의 이적료, 연봉이 핫한 이슈이다.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선수의 많은 사람들이 평생 모을 수 없는 금액이다. 물론 어릴 적부터 축구 하나만 해왔던 선수인 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호날두 같은 경우는 엄청난 자기관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과연 다른 선수들은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재능이 없는 것인가? 다른 종목의 스포츠 선수들은 어떠한가?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한 능력주의는 모두의 노력을 시장 가치로만 평가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회사, 연봉이 개인을 평가하는 가치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좋은 회사,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제한된 자원에서 서로 더 나은 노력의 대가를 받기 위해 삶은 경쟁이 되었다. 그리고 자본에 의해 평가할 수 없는 노력은 무의미한 삶이 되어버렸다.


모든 능력주의 윤리처럼, 개인의 책임을 극찬하는 그 개념은 일이 잘 되어갈 때는 기꺼워할 만하다. 하지만 반대로 일이 잘못될 때는?사기를 꺾고 심지어 자책에 시달리게 만든다. P.85

능력주의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개인화한다. 성공한 사람의 노력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 줄 일이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에 대한 노력은 봐주지도 않고 게으르다고 비하한다. 실패한 사람은 스스로 자책하면서 냉혹한 사회의 시선을 받는다.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하며 결국 사회성을 잃을까 두렵다. 

저자는 ‘우리 운명이 개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우리가 다른 사람까지 챙길 필요를 느끼기 힘들다.(p.105)’라고 말한다. 달리는 경주마는 우리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능력주의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 개인화된 책임은 사회성을 결여시키고 갈등을 조장할 것이다. 능력주의는 점점 더 ‘함께’ 보다 ‘혼자’를 만든다.


부유하고 유력한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들의 특권을 영구화하고, 전문직업인 계급은 자신들의 유리함을 자녀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아낸다. p.196

학력주의는 능력주의의 한 모습이다. 고등교육은 어느 순간부터 성공의 첫 단추가 되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SAT점수를 숨기기 위해 포르노 배우에게 로비한 이슈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한다. 전문직업, 관료들 역시도 학력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미 도덕과 윤리를 벗어나 정치영역에서도 학력주의를 통한 엘리트 중심사회가 되었다. 말 그대로 능력자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준다. 드라마 『SKY캐슬』를 보았는가? 2019년 미국에서는 실제로 이와 같은 ‘윌리엄 싱어의 스캔들’이 있었다. 결국 능력주의는 세습귀족제로 변질되었다. ‘무계급사회’를 원칙으로 해야 하는 능력주의는 이미 그 의미가 퇴색해버렸다.



혐오사회, 불평등사회 그리고 자본세습사회. 능력주의가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사회 갈등은 방향을 잃고 타인을 깎아내린다. 이 사회에서 희망을 갖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결국 엘리트만 남아 살아갈 것이고, 그 엘리트는 부모를 잘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만 나타날 것이다. 이 모습은 점점 더 소수의 엘리트와 그들만의 사회가 될 것이다. 능력주의가 만들어 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P.S.
저자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대학 입학을 선별제가 아닌 기본 요건을 갖춘 후 추첨제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최저 임금을 보장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구조를 만들어 일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대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안정망을 구축하고, 몇 년 째 국회에 계류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의 빠른 제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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