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이 쓰고 GPT가 그리다
할 수 있을까,
핏줄 안 곳곳
말갈 숙신 여진 선비 거란 그리고 몽고
의 피를 모두 모으면
나는 어쩌면 이 각진 콘크리트 궤짝을 떠날 수 있을 것도 같다
굽은 쇠를 들고
온종일 각진 땅을, 각진 땅을 마주한 각진 땅을 헤집던 내 조상, 조상의 조상…
그로부터 전해진(모으면 한 움큼이나 될는지),
오랑캐 적(敵)의 피,
많지 않아도 좋다, 이 사무실 문고리를 돌려 나갈 만큼만 되어도
아니, 문맹(文盲)이 되어버리도록 내 눈을 가려버린다면,
주식, 채권, 등기 따위, 구겨버리면 그뿐인 종잇장에 코를 훽, 풀고
오랑캐 적들처럼 사납게 웃으며 훌쩍 떠날 수 있을 것을…
말 한 필, 그도 아니면 혹이 둥근 낙타 한 마리,
직선과 직선, 날과 모서리뿐인 이 곳을 떠날 수 있도록,
나는 둥근 발굽을 가진 짐승이 필요하다
어딘가 있거니, 전근대의 공간, 위성을 찾아볼 수 없는 밤하늘, 태고의 항성들만이 깜박이는 곳, 맡아지는 것은 오로지 짐승의 묵은 털, 오래전 길 잃은 가축이 흘린 마른 변이 타면은 눈 맵도록 부서지는 연기, 새벽이 오면 별똥은 사위고 모닥불은 깜부기불을 하늘로 불어 올리는 곳.
그곳에 나의 혼(魂)이 앉아 있거늘…
그러나 여기 나의 몸뚱어리는 오늘 점심에 중국집을 갈지 백반집을 갈지 정하지 못한 부장의 물음 앞에 네네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아아, 내게 필요한 것은, 말갈 숙신 여진 선비 몽고…각진 땅에 갇혀 연해지고 흐려진 오랑캐 적의 피. 순종하지 아니하고 복속되지 아니한, 콘크리트로는 가둘 수 없는 전근대의 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