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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12. 2024

번역 앱을 사이로 오간 '대화'들

이른 아침 공항철도 안에서

오전 6시 20분쯤 지하철 2호선에서 이제 막 환승해 자리에 앉은 공항철도 안이었다. 아까 전 여기서 타면 공항으로 가는 게 맞냐고 물은 외국인이 내 앞의 캐리어 앞에 서서 스마트폰에 뜬 번역 앱 화면을 내밀었다. “공항 분실물 관리소에 전화를 해주실 수 있나요?” 나는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과 내 대화는 소리 없이 표정과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서만 진행됐다. (당연히 중국어 ‘간체’인지 ‘번체’인지 조차도 모른 채로 번역이 오갔지만 다행히 대화가 이어졌던 걸 보면 그걸 틀리게 고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자세히 물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공항 어디에선가 아이패드를 잃어버렸다는 그는 한국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숙소에 짐을 둔 채로,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을 아이패드를 급히 찾으러 이른 아침부터 공항철도에 몸을 실은 듯했다. 공항 홈페이지를 뒤져서 전화번호를 찾았고 전화를 거니 인천국제공항의 유실물센터는 오전 7시부터 전화를 받는다고 음성 안내 멘트가 되돌아왔기에 ‘우리’는 7시가 되기까지 어색한 침묵 속에 다시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되돌아갔다.


오전 7시가 되고 나니 관문은 또 남아 있었다. 마침내 전화를 받은 유실물센터 직원은 찾는 ‘아이패드’가 미니인지 에어인지 프로인지, 케이스가 착용되어 있는지 그 색상은 무엇인지 며칠 몇 시에 어디서 분실했는지 등 상세한 정보를 (당연하게도) 되물었다. 그때마다 “잠시만요” 하는 내 목소리와 번역 앱을 통한 정보 전달 뒤 다시 그 내용을 직원에게 전달하는 내 목소리가 서로 교차했다. 기억을 더듬는 한 사람과 번역 앱에 중국어를 지나 한국어로 표시된 정보를 오류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한 사람이 같이 앉아 있는 풍경은 그저 전화를 걸기 어려운 사람과 전화를 대신 걸어주는 사람 정도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는 보였겠다. 혹은 이어폰 등을 통해 각자의 프레임 안에 몰두하고 있던 탓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뒤 유실물센터 직원으로부터 “그 날짜에 들어온 아이패드는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옆에 앉은 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채로) 물건의 행방에 대한 정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그에게 “없다는데요”라고만 무심히 전달할 수는 없었기에 다시 공항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중국어 상담은 몇 시부터 가능한지까지 확인한 뒤에야 경과를 전했다. 중국어 상담은 오전 9시부터 가능했기에 그는 공항에 도착하고도 거의 1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1터미널 역에서 내려 출구를 향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대략 1터미널로 가는 방향과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나도 몇 해 전 늦은 밤 노트북이 든 파우치를 지하철 선반 위에 두고 내렸다가 다행히 누군가 역무실에 전달해 준 덕분에 다음날 그대로 되찾았던 적이 있다. 오래전이지만 만감이 교차했던 그 느낌 정도는 비교적 생생하다. 공항철도를 탄 그날 아침에는 공항에 도착한 뒤 출국을 위한 체크인 등을 진행하느라 이내 잊어버렸지만, 귀국 후 위탁 수하물을 찾는 동안 다시 그 중국인 여성과 그가 찾던 아이패드의 존재가 떠올랐다. 과연 그는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았을까,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만약 못 찾았다면 지금쯤 그의 여정 혹은 일상은 어떻게 보내지고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출근과 퇴근, 평일과 주말을 반복하는 일상으로 되돌아갔지만, 주인에게 다행히 돌아갔거나 불행히도 어디선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거나 타인들 손에 떠돌고 있을 누군가의 전자기기 하나가 문득 떠오를 때면 혹시라도 그날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를 도와줄 방법이 있었을지 궁금해하곤 한다. 어쩌면 거기 반드시 잃어버려서는 안 될 추억이나 생계에 필요한 정보가 들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번역 앱이라도 있으니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었던 거야’ 하고 생각해 버리는 편이 나을까. (2024.02.12.)


(뒤에 안 것은 중국어 전화 상담은 오전 9시부터 가능하다는 것이었지만, 대화는 이런 식으로 오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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