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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8. 2024

소비만으로 살 수 없는 것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2018) 리뷰

그 내기는 술기운으로 시작되었다. IT 기업의 공동 대표인 ‘폴’(플로리안 데이비드 핏츠)과 ‘토니’(마치아스 슈와바이어퍼)는 거액의 투자 제안을 받은 날 사내 파티에서 내기를 시작한다. 서로가 소지하고 있는 (가구를 포함한) 물건들 모두를 창고에 넣은 뒤 100일 동안 하루에 한 가지씩만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 물건을 구입하거나 창고에서 한 가지를 넘는 다른 것을 꺼내면 내기에서 진다. 필름이 끊긴 채 잠에서 깬 다음날. 두 사람은 내기를 없었던 것으로 하려 했지만 서로의 묘한 자존심 싸움과 경쟁심으로 결국 이 100일의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 스틸컷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2018, 원제 ‘100 Dinge')​는 독일의 배우 플로리안 데이비드 핏츠의 각본 및 연출작이다. (감독 데뷔작은 아니다. 국내 정식 개봉하지는 않았지만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소개된 <우리 생애 최고의 날>(2016)을 비롯해 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제목과 앞서 소개한 대강의 내용만 보고도 이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가 어떤 영화일지 감이 잡힌다면, 일단 그것의 절반 이상은 맞을 것이다.


1일차. 창고에서 한 사람은 정장을 찾고 또 한 사람은 스마트폰을 찾는다. 2일차, 3일차에도 마찬가지로 각자 매일 자정마다 창고에서 무엇을 되찾는지를 통해 서로의 생활양식과 삶의 가치관이 어렴풋하게 엿보인다. 단지 “내기 하자!”라는 결심만 있었다면 무엇도 제대로 되지 않았겠지만, 사내 파티를 함께한 직원들은 내기의 생생한 증인임을 드러내듯 첫날부터 이미 모든 준비를 해둔다. 규칙을 어기지는 않는지 감시하기 위한 관찰 카메라를 두 사람의 집에 설치해두는가 하면, 둘 중 누가 내기에서 이길지를 놓고 서로 또 다른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단지 소비와 물욕의 공허함을 일깨우는 그렇고 그런, 예상 가능한 영화이기만 한가.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 스틸컷


글로벌 영화 정보 웹사이트인 IMDB에 표기된 이 영화의 영문 시놉시스에 눈길이 가는 단어가 하나 있다. "Best friends Toni and Paul decide to relinquish all of their belongings for 100 days, whereby they receive one of their items back on each day." 여기서, 'relinquish'는 물건이나 권리에 대한 소유권을 마지못해 포기한다는 뜻을 담은 단어다. ‘폴’과 ‘토니’의 행동을, 내기에 처음 임하는 둘의 모습을 제대로 꿰뚫는 단어 선택이라 하겠다. 증조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사람들이 쓰던 생필품의 개수를 언급하며, 두 사람은 오늘날 자신들(을 비롯한 현대인들)이 평균적으로 1만 개가 넘는 물건을 사용하며 산다는 것에 놀란다. 그것들에는 우선순위가 있을까. 어느 한 가지라도 없다면 이 생활은 어떻게 될까. 이 100일간의 내기만을 중심으로 삼았다면 평범하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을 영화에 갈등을 넣거나 활력을 주는 건 창고에서 만난 의문의 여성 ‘루시’(미리엄 스테인)의 존재, 그리고 ‘폴’의 가족들이다.


‘폴’과 ‘토니’가 주고받는 말들 속에서 엉뚱함과 유머를 영화의 주 동력으로 삼으면서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는 현대인의 소비 철학에 대한 탐구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물건들이 없다면 내 삶에는 무엇이 남을까’라든가 ‘소비를 한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같은 물음에서 시작해 우리의 일상이 무엇으로 규정되는지에 대한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두 사람이 100일간의 도전을 완수할 수 있을지 혹은 둘 중 누가 먼저 이 도전을 포기할 것인지 같은 것은 그래서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결국 이 질문은 식상하다고 할지라도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향한다.


의식주는 물론 각종 문화, 예술과 사치품 등에 이르기까지 돈만 있다면 부족함 없이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 현대인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불만족하거나, 명확한 목적의식이나 생활 감각 없이 소비하는 행위 그 자체에 골몰하기 쉽다. 나아가 <100일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는 한쪽에서 ‘한정판 신상’ 구매에 열중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과소비의 결과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 쓰는 누군가를 대비한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를 권장하는 영화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소비 행위로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소비로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작은 깨달음을 준다. (2019.10.14.)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 국내 포스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2021) 리뷰

https://brunch.co.kr/@cosmos-j/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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