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 배를 타고 지금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항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시험하고 있다. "지금부터 출항하겠습니다." 교감공명하는 현악기처럼, 쓰고 부르는 그의 이야기는 '룸메이트'들에게 한 음절 한 획 하나하나 마음으로 파고들어 벅차오름을 유발한다. 어떤 파도가 닥쳐올지 얼마만큼의 풍랑이 거기 있을지 모르지만 단독자들은 '우리'가 되어 그 여정을 함께한다. 그 순례를 같이한다.
<2024 심규선 단독 콘서트 - 요란: Tempest>의 테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 바깥의 고통과 시름을 잠시나마 잊거나 덜어낼 수 있다. 그것들은 주로 '나'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나 타인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없는, 엄연히 나의 일상을 잠식하거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되돌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다른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가능할 수 있는 건 예로부터 우리의 생에 낮과 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밤은 영원하지 않다. 반드시 낮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 찬란한 낮 또한 영원할 수 없다. 그렇게 흘러가고 순환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불안과 고통도 막아줄 수 있는 방공호가 있다. '심규선'은 이야기의 힘으로 그로부터 한걸음 나아가게 해 준다.
2024.10.19.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2024.10.19.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깨어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좋아하는 것' 또는 '좋아하는 일'에 기대는 것이 과연 나약한 일인가. 아니, 그것은 그가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강했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들은 다가올 위대한 이야기의 서막이다. 쓰고 부르는 '심규선'은 우리의 일상을 한걸음 진보하게 만들어주는 이름이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음악을 듣고 노래를 듣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그 무엇도 없이 오직 '심규선'이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가능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건 사실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그 이전 공연에서도 확인하고 경험한 것들이다. 생각한다, 이 경험은 수치로 환원되지 않을 것이고 이 체험은 그저 몇 개의 단어로 환원되지 못할 것이라고.
다시 길 위로 뜨거운 숨을 내쉬며 우리는 항해를 계속한다. 그러나 <요란 搖亂 : Tempest>을 만나기 전과 후는 같지 않을 것이다. 마치 창세기를 맞이하듯 우리는 오늘을 이 세계의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단지 한 마리 작은 새의 존재로 말미암아 앞으로 더 생생한 사랑이 깃든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더 단단해진 각오로, 더 결연해진 마음으로, 그리고 함께 세계를 살아내고 있음을 실감하는 온기로. (2024.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