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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20. 2024

모르는 사이에도 가르침이 된 불멸의 것들

서울시립대 경영학원론 수업에서 배운 것

그 교수님에 대해서는 수강신청 하기도 전부터 악명이 높았다. 교수가 학생들을 괴롭히는 사디스트다, 1학년이 들을 수업이 아니다, 단단히 각오해라... 등. 수능과 입시를 치르고 이제 막 낭만과 자유의 캠퍼스 라이프를 누릴 생각으로 가득했던 그 해 봄은 강의실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수업도 듣고 교정을 누비며 20대의 삶을 시작할 것을 꿈꾸던 시기였다. 그리고 각종 무용담과 헛소문 같은 무성한 말들을 지나 캠퍼스 라이프 대신 ‘원론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다 오신 경영학원론 교수님의 강의를 왜 기 수강생들이 제대로 각오하고 들으라고 했는지는 개강 첫 주부터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단지 경영학부 1학년 전공필수 세 과목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그것은 경영통계학과 회계원리가 주는 무게감과는 다른 것이었고 1학기가 만만치 않은 학기가 되겠구나 여겨지던 그 예감은 학기 말로 갈수록 확실한 실체로 다가왔다.


지금 듣는 수업이 마치 유일한 과업인 것처럼 몰아치는 여러 교수님들의 과제와 시험, 발표 준비 같은 것들 덕분에 나 말고도 원론 라이프를 함께하는 학우들은 학기가 지속될수록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다. 도서관에 가면 열람실에서든 PC실에서든 늘 보던 얼굴들이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는 걸 그때 배웠다. 집에는 가나? 아니 집에 지금 갈 시간이 있나. 그래도 옷은 갈아입는구나. 경영학원론 1학년 수업은 2개 세션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둘은 손 교수님 반과 서 교수님 반이다. 나는 악명의 그 손 교수님 세션이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경영학원론이 어떤 수업인지 잠시 분량과 배경을 할애해 설명해야 한다.


    Chapter Presentation: 수업 교재는 원서다. 매 시간 교재 각 챕터 내용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담긴 발표를 팀 단위로 준비해 진행한다.  

    Business Essay: 한국경제신문 또는 매일경제신문 기사를 골라 읽고 학기 동안 총 15개의 경영학적 관점이 담긴 에세이를 써야 한다. (통상 A4 1매 분량)  

    Book Report: 공지된 도서 중 하나를 자유롭게 골라 읽고 10,000자 이상의 책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Mid-Term & Final Exam: 수업 내용에 대한 오픈북 중간&기말 시험이 있다. 시험 문제는 영문으로 출제된다.  

    Courage Speech: (당시 신촌 현대백화점 앞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3분 이상 시끄럽게 자유주제로 발표하는 영상을 찍어 올려야 한다.  

    Team Project: 일상 혹은 사회 속 경영 전반의 이슈를 다루는 발표를 팀 단위로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전부가 아니다. 수업 공지사항 외 모든 수강생들의 과제물 등이 올라오는 네이버카페(이하 '카페')는 엄격한 규칙으로 관리된다. 예를 들어 게시물이나 댓글을 삭제하면 '용감한 학생상'을 받는다. 제출한 에세이는 교수님이 전부 직접 읽고 합격/불합격 여부를 댓글로 알려주는데, 통과하지 못한 에세이에 대해서는 '이머꼬 학생상'이 수여된다. [경축: 제620차 이머꼬 학생상 김동진 군] 교수님의 공지에 달린 코멘트는 이런 식이다. (붉고 진한 글씨로) “그래서 누가 멀 언제 어떻게 왜 해야대는데?” 글자크기 등 형식에 맞지 않는 글을 쓰면 돌아오는 건 '사오정 학생상'이다.


여기에 수시로 '보너스 과제'가 공지된다. 특정 주제에 대해 일정 분량의 긴 비즈니스 에세이 제출을 요하는 과제다. 학기 초에는 3,500자 정도 분량이지만 학기 말로 가면 10,000자가 된다. 보너스인 이유는 해당 과제의 'Winner(최우수 글)'로 뽑히면 학점 한 단계 상승 인센티브가, 'Runners-Up(우수 글)'으로 뽑히면 학점 반 단계 상승 인센티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할 것 같지만 상술한 발표 준비와 에세이 준비에 허덕이는 신입생들은 보너스 과제까지 감당할 여력을 쉽게 내지 못한다. 제출이 끝이 아니라 모든 제출자들의 글을 읽고 상호 평가도 댓글로 작성해야 해서다. 일정 인원 이상 참여하지 않으면 수강생 전원의 의무 과제로 전환된다. 내가 수강한 학기에 의무 과제로 전환된 보너스 과제는 전체 27개 중 7개였다.


그러니까 흔히 대학교 1학년이 가지고 있을 역량 이상의 스케줄 관리가 필요한 수업일 수밖에 없다. 에세이는 합격하지 못하면 통과할 때까지 계속 수정본을 제출해야 한다. 상술한 '-학생상'을 받으면 왜 그 상을 받았는지와 향후 계획 등을 담은 'AAR(After Action Review)'도 써야 한다. 수업 중 발표를 잘해서 칭찬을 받는다거나 혹은 해당 주간의 에세이를 최초로 제출한다거나 해도 '참 잘했어요 학생상'을 받는데 이 또한 본인이 왜 칭찬을 받았는지에 대한 AAR을 써야 상의 효력(특정 의무과제에 대해 제출 면제권을 쓸 수 있다)이 발생한다. 게다가 자신이 제출한 에세이는 의무적으로 최소 2인 이상의 상호 평가(댓글)를 받아야 카운트로 인정된다. 학기 말에 합격 에세이 15개를 채우지 못하면 개당 학점 반 단계 마이너스를 받는다.


모든 마감 기한은 엄격하다. 예를 들어 '~학생상'을 받으면 카페에 공지가 올라온 후 정확히 24시간 이내가 AAR 제출 기한이다. 보너스 과제 제출은 물론 카페와 강의실에서의 그 밖의 일간/주간 카운트가 모두 24시간 단위로 이루어지고 가령 어느 날 자정까지 제출해야 할 것을 0시 1분에 제출했다면 해당 글은 'VOID(불인정)' 처리된다. 대부분 1학년들이 듣는 1학년 전공필수 과목에서 신입생들은 상기의 커리큘럼에 대비 내지 준비가 되어 있을 리 없었다. 아직 스마트폰의 시대가 아니었고 3G 이동통신이 상용화되기도 전이었으므로 카페에 접속할 수 있는 곳은 집 아니면 교내 곳곳의 PC실 아니면 PC방이었다. 노트북을 가지고 있는 학우들은 다른 강의를 들으면서도 수시로 카페에 들어갔다. 0시부터 24시까지가 모두 원론 라이프였다. 놀기 바쁜 1학년 1학기,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은 나중에 재수강하겠다며 중도 하차했다.


당시 경영학원론 수업 카페의 기록들


손 교수님이 언제나 강조했던 키워드는 ‘Written Communication’이었다. 여기에는 카페에 올리는 짧은 게시글과 댓글 하나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댓글을 지우는 건 누군가에게 유용할 수도 있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무단으로 침해하는 일이었고 에세이를 쓰는 건 단지 매주 해치워야 할 과제가 아니라 경제 시사에 관심을 갖고 작은 것에도 경영학적 사고를 기해 고민해 보는 연습을 하는 일이었다. 1만 자의 글을 쓰는 건 단지 분량 채우기가 아니라 그러한 사고를 충분한 분량을 할애해 치열하게 풀어놓는 과정이었다.


'독재자'라는 카페 닉네임을 쓰고 마치 학생들을 갈구듯이 차갑게 수업하는 손 교수님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대체로 불만의 이유는 재수강생에게는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것이라든지, 여타 카페에 제출하는 수많은 글들을 지칭하여 학생들에게 그렇게 과중한 것을 부과해 학점에 영향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카페에는 사회에 나가보니 글쓰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졸업생들의 글이 끊이지 않았다. 교수님 역시 카페에 종종 과제 평가가 아니라 강의에 임하는 어떤 진심을 담은 글을 쓰시고는 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


"(...) 여러분의 1학년을 마치는 동안 타율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역량의 강화를 만들어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자율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하는 시기로 들어가는 것을 자각할 만큼 발전되었기를 기대하고 있다네. (...)" 2006.12.18. [밤을 잊은 그대에게])
"(...) 상/벌을 주는 이유가 무엇이라구요? 학생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글을 쓰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 순간, 글을 써야 하는 학생들은 짜증도 나고 화도 나겠지만, 결국에는 그 글을 쓴 경험은 학생들에게 남게 되지요. 경영학원론에 존재하는 무수한 상/벌의 유일한 공통점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 (2008.02.15. [사랑하는 서울시립대 학생들에게])


언제나 말하는 것보다는 글로 적는 게 더 익숙하고 성향에 맞다고 여겼던 내향적인 내게도 원론 라이프는 만만하지 않았다. 15개의 에세이는 결국 하나를 채우지 못했고, 보너스 과제 Winner를 한 차례 차지한 덕분에 학점 한 단계 인센티브가 있었지만 중간/기말 시험을 그리 잘 본 편이 아니었던 탓에 1학기 종강 후 받아 든 학점은 B0 였다. 곧이어 찾아온 2학기는 회계원리 수업과 교양 몇 개를 들으며 학부 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보냈고 자연스럽게 경영학원론 수업의 잔영은 조금씩 잊혔다. 이듬해 잠시 가깝게 지냈던 다음 학번 후배의 에세이를 조금 도와줬던 걸 제외하면 그 뒤로는 원론 라이프를 돌이키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난이도의 수업을 만날 일은 없었다. 어느 날 새벽 그때가 불현듯 생각난다든지 수강 시절 과제로 제출했던 글들이 문득 궁금해진다든지 하는 계기가 아니면 말이다.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기에 1학년의 글은 그렇게 경영학적이지도, 비판적이지도, 능숙하지도 않았고 단지 분량을 채우기 위해 과제 제출기한을 어기지 않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 했던 부끄러운 기록들일 뿐이었지만 그것들 하나하나가 성장의 과정이자 흔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제법 오래 걸렸다. 대학생활 후반부를 보내고 학생 신분이라는 울타리를 빠져나오면서 그때 경험한 모든 것들이 회사와 사회의 일부이자 거의 전부라는 걸 실감했다. 구두로 무엇을 하더라도 결국 업무의 시작과 종결은 '문서'였고, 업무의 많은 것들에는 짜인 일정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경영학원론만큼 열심히 임해야만 했던 강의가 없었고 그걸 대입 첫 학기 때 수강한 건 꽤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여기게 됐다.


방문 3,147회, 내 게시글 128개, 내 댓글 2,228개. 내 대학생활 기간의 절반 정도는 스마트폰이 없는 시절이었고 교우관계가 넓지도 깊지도 못했으므로 지금 대학생 시기를 돌이킬 때 편린은 곳곳에서 발견되거나 회상은 될 수 있을지라도 보다 정확한 실체로서의 기록은 오직 카페에 한 단어도 삭제되지 않은 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타인은 여러 의미에서 각자의 선생이기도 하겠지만, 어리고 미숙한 시간들을 잘 건너올 수 있게 해 준 이들에는 비록 희미할지라도 선생님들, 교수님들이 모두 포함된다. 가르침을 주는 모든 이들의 말과 글을 그 자체로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중 어떤 것들은 모르는 사이에도 스스로에게 깊숙하게 각인되어 자신의 인장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 모든 시절의 선생들을 찾아뵈어 인사를 드린 적이 없다. 그건 그 무렵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버리는 마음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 것 같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어떤 자각 내지는 착각. 다른 면을 갖게 된 건 맞지만 10대와 20대의 나 역시 지금의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30대에 접어들면서 사는 일에 바쁘다며 외면해 왔다는 걸 글 쓰는 사람이 되고 난 뒤에야 점차 깨닫게 됐다. 그런 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글 쓰는 일이 업과 별반 관련이 없는 사람이 되었거나 지금과는 많이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이 글은 대학 1학년을 글쓰기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손 교수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걸 이렇게 쓰는 이유는 교수님이 돌아가셨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처럼 연에 한두 번쯤 무심코 카페에 접속했다가 전체공지에 쓰인 교수님의 부고 안내를 읽었다. 이미 게재된 지 몇 달이 지난 학부 조교의 게시물. 부고를 듣고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기 수강생들이 적지 않았다는 게 체감될 만큼 그 몇 달 동안에도 원론을 거쳐간 이들의 안타까움과 감사함이 담긴 댓글들이 거기 달리고 있었다. 지금 카페에는 286,443개의 글이 있다. 교수님은 카페에 39,579회 방문했고 52,698개의 게시물을 등록하셨다. 카페를 거쳐간 몇 천 명의 수강생 중 한 명일 뿐인 나를 교수님은 기억하지 못하실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내게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큰 지분을 차지하는 '선생'이었음을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지성은 한정되고 그 수명은 짧지만, 그가 가진 기억에 의해 인간은 정신의 불멸성을 획득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바치는 사랑은 변덕스럽고 불완전하지만 스러지는 인간은 그 사랑을 가장 완전하고 가장 영원한 "형상으로 간직"해둘 수 있다. 삶은 덧없어도 그 형상과 형식은 영원하다. 그래서 한번 살았던 삶은 그것이 길건 짧건 영원한 삶이 된다."

-황현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 난다, 2018,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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