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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24. 2024

다시 파란불이 켜지고 나는 떠났다

여정의 신호등

1.


차찬텡*을 먹자며 숙소에 짐을 풀어놓자마자 들른 카페에는 외지인의 영어와 현지인의 광둥어가 뒤섞여 있었다. 캐피탈카페(Capital Cafe) 또는 화성빙실(華星冰室). 그 건물은 생전 장국영의 소속사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내벽 곳곳에 장국영의 앨범 사진들 사이로 걸린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2023) 포스터가 타지에서의 낯선 만남의 현장에 나도 있음을 말해주었다. 카페에서는 마치 언어를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처럼 메뉴에 적힌 글자를 읽고 햄치즈 샌드위치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본 사람처럼 그것과 커피를 번갈아 입과 코에 가져다 대었다. 여기가 홍콩이구나.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여정을 움직였다.


대충 허기를 채우니 이미 저녁 일곱 시가 되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완차이 도심을 누비다 침사추이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숙소 근처로 향하며 겨울바람과 수평선과 야경을 맞이했다. 홍콩은 역동적이기보다는 지나온 시간이 고요하게 느껴지는 도시였다. 90년대 영화에서 보던 낭만이 살아 있는 한편, 명품 상점가와 고급 호텔들이 겹겹이 쌓아 올려진 좁고 높은 아파트들과 전통시장과 묘지와 함께 무질서한 듯 저마다의 채도와 명도를 갖고 공존하는 곳. 그 색색의 공간과 사람들 틈에 섞이다 보면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아도 오감으로 하루가 충분해졌다. 그저 낯선 빛과 맛과 냄새를 오롯이 기다리고 그것을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맞이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곳의 감각은 주로 신호등 소리로 기억된다. 띡, 띡, 띡, 띡, ... 귓가에 생생한 그 경보음은 어딘가에서 다른 곳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에서 스스로의 신분을 상기시켜 주는 한편 안전과 위험을 동시에 예보한다. 여행지라고 해서 생의 방향이 곧장 180도 바뀌는 건 아니었다. 교차로와 교차로 사이엔 언제나 직행하지 않아도 비스듬히 돌아가는 길이 있듯이 이번 초록불 신호를 놓쳐도 잠시 뒤 그다음에 건너도 된다는 사실이 변치 않는다.


홍콩에서의 낮과 밤은 그런 시간들이었다. 식사 뒤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 유달리 빠른 에스컬레이터에서 손잡이를 붙잡고 선 시간, 이층 버스를 타기 전 구글 지도를 보면서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가늠하던 시간, 빽빽한 인파에 섞여 쇼핑몰 사이를 건너는 시간, 그리고 엠퍼러 시네마에서 <듄: 파트 2>(2024) 상영을 기다리던 시간. 그 모든 곳들에 신호등이 있었다. 그때 거기를 건너는 마음은 빨간불 뒤 또다시 파란불이 점멸하길 예감하는 마음이다.


2024년 1월 12일의 홍콩


'신호등은 이제 점멸신호로 바뀌었다
그냥 알아서 해도 좋다는 시간인 것이다
종일 꽉 쥐고 있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규리, 「변두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서(문학동네, 2014)



2.


인생의 이정표와 신호등은 직접 세워가야 하지만 가끔은 딛고 선 곳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골똘하여 알고 싶을 때가 있다. 과거의 환희와 미래의 환상 사이에만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될 때, 이 기록과 이 걸음이 제대로인 걸까 하고 자문할 시기가 문득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몇 개의 신호등을 생각한다. 뉴욕에도 오사카에도 그리고 서울에도 있는 수많은 신호등들.


여행에서 만난 그 불빛들의 의미를 처음으로 달리 생각한 건 현 직장에 입사하기 전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였다. ID카드에 부착할 증명사진을 찍고 사진관을 나선 첫 출근 직전 금요일 저녁, 뉴욕 맨해튼 6번가(Ave)와 웨스트 52번가(St) 사이에서 귀국 전날 밤 봤던 신호등을 거의 같은 프레임과 약간 더 낮은 조도로 여의나루로에서 다시 만났다. 인천행 비행기를 타며 대책 없이 '내년에 다시 와야지' 같은 생각을 했지만 여행은 바람처럼 자주 떠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어떤 프레임에 기시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은 남아 있는 기억에 안도하면서도 낭만과 꿈은 언제 어디에나 필요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 주는 빨간불이었다. 요컨대 사진관 앞 횡단보도에서 만난 신호등은 "나는 이미 이만큼이나 흘러왔다"라고 쓰인 아직 다음 불로 바뀌기 전까지 남은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빨간불인 셈이다.


뉴욕에 다녀올 무렵은 지금보다 더 들떠 있었다.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갈 면접도 보기 전에 일단 항공권 예약을 해두고는 면접 때 "제가 내년에 일주일 동안 어딜 좀 다녀와야 하는데..."라며 휴가를 미리 당겨 받았었다. (대신 같은 해 여름휴가는 무급으로 쉬었다) '#뉴욕이라니동진아' 같은 해시태그를 만들어 가며 생애 첫 해외여행에 큰 따옴표를 찍은 채 보낸 그 해 봄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렇지만 가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들, 그때와는 달라진 채로 있음을 깨닫는 것들이 있다.


내가 첫 한국인 손님이라고 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 셜리는 여전히 잘 있는 듯하지만, 브루클린 거주 13년 차이고 자기 카페를 하는 게 오랜 꿈이었다던 (그리고 그걸 이룬 지 4년 차가 되었다던) 콰스라 카페 사장님은 코로나19로 폐업한 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JFK 공항에서 내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던 산체즈는, 귀국날 숙소에서 다시 JFK 공항으로 데려다주었던 이름 모를 콜택시 기사는. 또 없어진 것들이 더 있다. 첼시부츠를 산 42번가 알도 매장, 짬뽕과 군만두를 먹은 코리아타운 홍콩반점, [가십 걸](2007-2012)에도 등장한 헨리 벤델 백화점 같은 곳들.

어떤 것은 언제나처럼 같은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상당수는 이제 거기 없거나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여행의 경험을 신격화하지 않게 해주는 듯하다. 어쩌면 그저 여러 여행들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는데 마치 생을 뒤흔들어 영혼 속까지 스며든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경험이었던 듯이 시절을 박제해두고 있지는 않나 되짚어도 보게 해준다는 것. 수많은 이방인들이 거쳐갈 여행지를 반드시 사적인 의미로만 기억할 필요는 없기도 하겠다는 것. 여행을 마친 뒤 만나는 신호등은 돌아서는 순간 조금 전 있었던 바로 그때 거기는 이제 같을 수 없을 거라며 건너가라고 바뀌는 파란불이었던 것 같다. 여행지가 일상과 유리된 채 스노볼 속에 반짝이며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들이 곧 일상의 연장이며 어디서든 돌아갈 곳이 있어야 나를 둘러싼 세계의 바깥을 더 높은 해상력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 역을 향하여'

-허수경, '시인의 말'에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 2016)



3.


그렇다고 해서 여행의 설렘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건 일상의 활력을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여권과 지도와 적당한 돈, 사방을 경계하듯 주시하는 약간의 긴장,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에는 비슷한 만큼의 인정이 있다는 약간의 낙관, 그 여정에는 끝이 있다며 돌아갈 길의 신호등을 켜두는 그런 태도 같은 것이 있으면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 홍콩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홍콩 관광청의 이벤트로 캐세이퍼시픽 항공권이 생긴 덕분이었다. 마치 로또 복권을 사듯 요즘도 종종 항공권이나 여행상품권 등이 걸린 이벤트가 눈에 띄면 열심히 응모한다.


몇 번의 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회사에서는 제법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게 될 거라고 생각지 못한 것을 넘어 이런 일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직무와 몸 담게 되리라 짐작하지 않았던 산업에 있으면서 지금은 이 커리어가 꽤 나쁘지 않다고 여기게 됐다. 입사하기도 전에 뉴욕행 휴가를 받아냈던 두 번째 직장에서는 이듬해를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그래도 휴가를 주는 회사는 좋은 회사다) 그 뒤로는 주말에 붙여 연차 하나를 사용하는 정도로 짧은 여정만 몇 번이 있었을 따름이다. 인생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다음 목적지는 어디가 될까. 종종 바깥이 어두워질 무렵이면 빠르게 내달리는 차들 너머 불을 밝힌 건물들이 늘어선 풍경 앞에 섰을 때 신호등을 찾는다. 그게 빨간불이든 파란불이든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2024년과 2025년 사이 문지방에 선 어느 평일의 저녁이다. (2024.12.23.)



*차찬텡(茶餐廳: Cha chaan teng): 홍콩, 마카오, 대만 등지에서 볼 수 있는, 현지화 된 서양음식들로 이루어진 서민적인 요리 혹은 음식점을 통칭하는 표현. 커피 또는 차와 베이커리 등을 곁들인 브런치와 일정부분 유사하다.


**이 글은 '2024 야놀자 낭만 여행기' 응모 글을 기초로 그 내용 및 분량을 확장하여 작성되었다.


2017년 3월 16일의 뉴욕
2020년 11월 5일의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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