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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19. 2018

품위 있는 코미디의 여정이 내내 담고 있는, 선한 온기

영화 <그린 북>(2018)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를 주인공으로 본다면 <그린 북>(2018)은 평생에 결코 떠날 일이 없을 법한 여정을 평생 만날 일이 없을 만한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는 이야기겠다. '돈 셜리'(샬라 알리)가 주인공이라면 <그린 북>은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여정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와 함께하며 이제껏 내어본 적 없었던 용기를 실천하게 되는 이야기겠다.


영화 <그린 북> 스틸컷


뉴욕에서 만난 두 사람은 뉴욕을 시작으로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미국 동남부 주요 주를 돌며 한 명은 피아노 연주자로서 공연을, 다른 한 명은 그의 로드매니저로 동행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린 북>은 단지 인종차별이나 1960년대 시대상 자체를 다루고자 하는 영화는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데, 미국 남부 지역의 특성상 자연히 북부보다 흑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심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영화의 기본 배경으로 하고 <그린 북>은 전혀 다른 두 사람 '토니'와 '셜리'가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덤 앤 더머> 시리즈를 시작으로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 코미디 장르에 강점을 보여온 피터 패럴리 감독의 연출과 각본, 그리고 역시 각본에 참여한 실제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 '닉', 그리고 비고 모텐슨과 마허 셜 라 알리라는 검증된 배우의 앙상블로 <그린 북>은 단발성 웃음에 그치지 않는 좋은 코미디 기조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좋은 메시지를 지닌 영화가 스스로를 좋은 이야기로 발전시킬 줄 알 때에 전해지는 온기를 체감하게 한다.


영화 <그린 북> 스틸컷
영화 <그린 북> 스틸컷


백악관에서도 공연한 바 있으며 세 개의 박사 학위를 지닌 '셜리'는 흑인 중에서도 비교적 상류층에 해당하는 듯 보였지만 매 순간 차별의 일상을 감내하기 위해 품위를 강박적으로 체득한 인물이었다. 흑인에 대한 막연한 차별 의식을 지녔으면서도 자신 역시 순수 미국인이 아니기에 마찬가지로 멸시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토니'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여정에서 진정한 유대감과 삶의 열린 태도를 배워간다. 마찬가지로 '셜리'는 '토니'가 지닌 우직하면서도 따뜻한 면을 살릴 수 있게 영향을 주면서 자신 역시 (이를테면 맨손으로 프라이드치킨을 먹는 행위와 같은) 지금껏 겪어본 일 없는, 어쩌면 품위 바깥이라고 여기던 일들을 몸소 체험한다.


작 중 미국 남부를 지나는 흑인들을 위한 추천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을 담은 책자인 '그린 북'이 그대로 영화의 제목이 된 것은 <그린 북>이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 관한 영화임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토니'는 감정에 치우친 행동만이 아니라 삶에 품위가 필요함을 깨닫고, '셜리'는 내재된 차별에 의한 방어기제로 쌓여온 품위를 한층 유연하게 만들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강인하게 만든다. 운전 중 여러 차례 경찰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상황과,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빗속에서 나누는 대화를 미루어 <그린 북>은 감정을 고조시킬 줄 알면서도 전체 이야기의 일관된 흐름을 놓치지 않는, 품위 있는 드라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연말 분위기를 한가득 담고 있는, 귀를 풍족하게 할 음악으로도 가득하다.



영화 <그린 북> 국내 메인 포스터

<그린 북>(Green Book, 2018), 피터 패럴리 감독

2019년 1월 9일 (국내) 개봉, 130분, 12세 관람가.


출연: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린다 카델리니. 브라이언 스테파넥, P.J. 번, 세바스찬 매니스캘코 등.


수입: CJ엔터테인먼트

배급: CGV아트하우스


영화 <그린 북> 스틸컷

(★ 8/10점.)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관람 (2018년 12월 18일, CGV용산아이파크몰)

*영화 <그린 북> 국내 메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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