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 이즈 본'(2018)에 관한 해설
*영화 <스타 이즈 본>(2018)의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동탄 문화살롱 '밸런스키친'에서 진행한 영화 모임에서 다룬 내용을 글로 풀어 옮긴 것이므로, 일반적인 리뷰와는 달리 문장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영화 <스타 이즈 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배우와 감독 이야기부터 해야겠어요. 영화 바깥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굉장히 많기 때문인데요, 원래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고, 비욘세 등이 여자 주인공 후보로 올랐었습니다. 브래들리 쿠퍼도 이때 이미 남자 주인공 후보로 제의를 받았는데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이 <스타 이즈 본> 연출을 처음 염두에 둔 건 2011년이었습니다. 당시 브래들리 쿠퍼는 남자 주인공 역을 맡기에 자신의 연륜이 아직 좀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출연을 고사했었는데요, 이 역할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크리스찬 베일 등 당대의 배우들 역시 물망에 올랐었다고 합니다.
이후 브래들리 쿠퍼는 <아메리칸 허슬>, <아메리칸 스나이퍼> 같은 영화를 거치면서 연기는 물론이고 연출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미 <아메리칸 허슬>에는 제작자로도 참여했었고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역시 여러 가지 문제로 이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게 되었고, 결국 브래들리 쿠퍼는 자신이 워너브러더스 측에 제안을 해서 2016년 3월 <스타 이즈 본>의 감독을 맡기로 했으며 그해 8월에는 직접 출연까지 하기로 합니다. 이때 레이디 가가의 출연이 성사되었고요. 2017년 4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갑니다.
다음 이야기는 레이디 가가입니다. <스타 이즈 본>의 주제곡인 'Shallow'의 작곡가 명단에는 영국의 프로듀서이자 DJ인 마크 론슨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마크 론슨은 레이디 가가의 2016년 정규 앨범인 'Joanne'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영화 <스타 이즈 본>이 레이디 가가 본인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레이디 가가는 세 번째 정규 앨범인 'Artpop'이 판매량 면에서도 평가 면에서도 모두 저조했던 터라 일종의 슬럼프에 빠져 있었는데요, 네 번째 앨범이 재즈 뮤지션 토니 베넷과 작업한 듀엣 앨범이고 그 다음에 작업한 다섯 번째 앨범이 바로 'Joanne'이라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평가나 흥행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담았습니다.
앨범명인 'Joanne'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레이디 가가의 고모 이름이기도 하면서, 레이디 가가 본인의 본명인 스테파니 조앤 안젤리나 저머노타에서 따온 '조앤'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장르가 섞인 이 앨범은 대박이 나지는 않았지만 전작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듬해 미국의 굉장히 큰 행사 중 하나인 슈퍼볼 제50회에서 하프타임 때 단독 공연을 하면서 이것 역시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중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레이디 가가가 첫 주연을 맡은 영화가 바로 <스타 이즈 본>입니다. 5집 앨범의 프로듀서였던 마크 론슨은 레이디 가가가 주연한 <스타 이즈 본>의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레이디 가가는 물론 브래들리 쿠퍼도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작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결과적으로 영화 <스타 이즈 본>의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60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고, 빌보드 Top 200에서 4주 동안 1위를 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 시상식 모두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주제곡 'Shallow'는 유튜브에서만 7억 뷰를 넘게 기록했습니다.
한마디로 <스타 이즈 본>은 브래들리 쿠퍼에게 처음 감독 데뷔의 기회를 주었고 레이디 가가에게는 슬럼프를 딛고 음악적 활동 반경을 넓히는 건 물론 재기의 기회까지 확실히 마련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방금 소개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각색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촬영상, 음향믹싱상 후보에까지 올랐는데요, 방금 제가 각본상이 아니라 각색상이라고 했죠.
영화 <스타 이즈 본>은 원작이 있는 영화, 그것도 이미 두 번이나 리메이크된 원작을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A Star Is Born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1937년에 선보였던 영화입니다.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는 똑같습니다. 이미 스타 반열에 올라 있지만 알코올 중독과 같은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 조금씩 하향세에 있던 남자 주인공과 꿈은 있지만 현실적 제약으로 펼치지 못하고 있던 여자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여자는 이후 스타의 길을 걷지만 남자는 몰락합니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남자 스스로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요. 여자는 남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에 남편 성을 붙여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 영화는 1954년과 1976년, 두 차례에 걸쳐 비슷한 이야기 구조로 다시 만들어지는데요. 말하자면 이번 <스타 이즈 본>은 세 번째 리메이크된 스타 이즈 본이라는 뜻입니다.
1937년작과 1954년작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배우로 나오고요, 1976년작에서는 가수로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2018년작 스타 이즈 본의 오리지널리티는 1937년작에서 기인하지만 잭슨과 앨리가 가수라는 점에서는 1976년작과 유사성을 찾을 수 있죠. 이 이야기가 원작을 포함해서 총 네 번이나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매번 동시대의 트렌드, 예컨대 2018년작에서는 앨리가 잭슨과의 첫 듀엣 이후에 유튜브에서 유명해지고 나중에는 SNL에 출연을 하죠, 그런 동시대적인 소재가 등장한다는 걸 제외하면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리메이크라는 말 그대로, 새로운 기획이 아니라 기존에 만들어졌던 것을 안전하게 따랐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네 번에 걸친 '스타 이즈 본'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어요. 1976년작은 평가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나머지 세 편은 흥행과 비평 모두에 있어 성공했고 2018년작 스타 이즈 본은 게다가 브래들리 쿠퍼의 첫 감독 데뷔작이고 레이디 가가의 첫 영화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그 성취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죠.
1976년작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 잭 노먼이고, 1937년작의 남자 주인공 이름은 노먼 메인입니다. 그리고 2018년작의 남자 주인공은 잭슨 메인이죠. 이제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과연 좋은 이야기라는 게 꼭 새롭고 신선한 것이어야만 하는가인데요. 이 영화, <스타 이즈 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캐릭터와 장면들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그 답을 나름대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전반적인 스토리에 있어서의 특징을 먼저 살펴보고 음악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잭슨과 앨리의 첫 만남을 봅시다. 두 사람이 처음 술을 같이 마실 때 잭슨이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요,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내 식대로 들려줬는데 통한다는 건 특별한 재능이에요."라고 합니다. 뒤에 가서 이야기할 잭슨의 또 다른 말과 함께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들려주었는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 통하는 것이 재능이다. 잭슨은 어릴 때부터 귀에 문제가 있었는데 가수가 되었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잭슨은 천재입니다. 술 마시고 나서 마트 주차장에서 앨리가 한 번 들려준 노래를 전부 기억해놓았다가 편곡해서 앨리와 듀엣을 하죠. 드랙 바에서도 앨리가 부르는 라비앙로즈에 진심으로 감동한 건 앨리의 재능을 알아봤기 때문입니다. 즉 잭슨은 다른 사람의 숨은 재능을 발견할 줄 아는 안목도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술과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건 자신의 커리어가 조금씩 하향세를 타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뒤에 가면 자기가 유럽 투어를 갔던 게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고 하죠. 한때는 세계적인 스타였지만 이제는 미국에서만 먹히는, 그것도 옛날에 히트했던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는 가수가 된 겁니다.
잭슨이 자기 노래를 여러 번 부른다는 건 이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됩니다. 'Maybe It's Time'이라는 노래가 영화에서 총 세 번 등장하는데요, 한 번은 앨리를 처음 만났을 때 드랙 바에서 앨리의 동료 앞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두 번째는 잭슨과 앨리의 합동 공연 중 앨리가 'Always Remember Us This Way'를 부르기 전입니다. 세 번째는 잭슨이 욕조에 있는 앨리한테 심한 말을 하고 나서, 앨리를 찾아가 사과하기 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세 번째 'Maybe It's Time'은 전주만 나오고 잭슨의 목소리를 영화는 들려주지 않습니다. 이미 잭슨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영화 역시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잭슨의 이야기 하나를 더 꺼내야 할 차례입니다. 잭슨이 죽고 나서 형 바비가 앨리에게 해주는 이야기죠. "잭은 음악이란 건 옥타브 내에서 12개 음이 반복되는 거라고 했지.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얘기하는 것뿐이라고. 뮤지션은 그 12개 음을 자기 방식대로 들려주는 거라나, 그렇게 말했어. '앨리가 그 음들을 다루는 방식이 좋아.'"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이미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반복하는 영화이지만, 동시에 영화 안에서도 반복되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잭슨이 부르는 곡 'Black Eyes'는 두 번, 잭슨과 앨리의 듀엣곡 'Shallow'는 총 세 번, 앞서 말씀드린 잭슨의 'Maybe It's Time'도 세 번, 앨리의 솔로곡인 'Always Remember Us This Way'는 두 번 불립니다. 엔딩 크레딧을 포함해서요.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두 번 이상 반복되거나 조금씩 변주되어 영화에서 등장하는데요. 잭슨이 앨리를 불러서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초반과 후반에 한 번씩 나오고, 앨리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프랭크 시나트라 이야기도 반복됩니다. 잭슨은 자기 운전기사와 그리고 멤피스 공연 후 만난 옛 친구와 각각 그들의 아들 이야기를 합니다. 앨리와 잭슨이 서로 얼굴에 케이크를 묻히는 장면도 반복됩니다. 잭슨은 영화 내내 자기 청력의 문제 때문에 상대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서 자주 되묻습니다. 잭슨과 앨리의 첫 듀엣 공연을 앨리 가족이나 주변인이 유튜브로 보는 장면 역시 반복됩니다. 앨리는 결혼식 때와 마지막 추모 공연을 마쳤을 때 각각 한쪽 눈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영화에 한 번만 나오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반복의 산물입니다. 공연 후에 호텔방에서 잭슨이 혼자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데 옆에서 앨리가 "괜찮아요, 항상 이래요"라고 말합니다. 잭슨이 멤피스 공연 후에 친구 집 앞 마당에서 잠이 들어 있는데, 이때 친구의 대화를 보면 잭슨이 그런 적이 처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잭슨이 원래 노래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기타 연주하는 걸로 파트가 바뀌죠, 이것 역시 바비의 말을 들어보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지금 제가 이야기한 게 전부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스타 이즈 본>은 영화 전체가 반복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잭슨이 하는 말들처럼, 재능이라는 건,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기존에 있는 것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전체의 구조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절반씩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앨리가 잭슨을 만난 후 가수로 데뷔하게 되는 전반부와, 앨리가 스타가 되는 반면 잭슨은 계속되는 술과 약물 문제로 몰락하는 후반부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앨리와 잭슨이 음악적으로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한데요, 앨리는 이미 대단한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앨리가 가수가 되는 건, 즉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모두 잭슨을 만난 이후부터입니다. 주차장에서 불러주는 'Shallow'는 잭슨을 보면서 만든 노래고요, 거기에 자기가 전에 만들었던 노래 일부를 후렴으로 붙이는데 나중에 이것 역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는 건 잭슨이 편곡해서 두 사람이 함께 부르면서부터입니다.
앨리가 '집에 혼자야' 하면서 부르는 'Look What I Found' 역시 잭슨이 자기 고향인 애리조나에 데리고 갔을 때 작곡하는 곡이며, 앨리의 솔로곡인 'Always Remember Us This Way' 역시 애리조나를 배경으로 잭슨과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부르는 'I'll Never Love Again' 역시 잭슨이 만든 노래를 앨리가 그를 추모하면서 부르는 노래죠. 앨리가 팝 가수로 데뷔한 뒤에 부르는 노래들 역시 자작곡이 아니라 프로듀서가 만들어준 노래지만 앨리는 자기 스타일로 부릅니다. 친구도 앨리한테 "너 완전 팝스타"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죠.
잭슨은 앨리한테 "진심을 까놓고 누가 뭐라든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자신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처럼 잭슨은 앨리에게 노래할 이야기를 준 것이고, 앨리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와 자기 방식대로 노래한 거죠. 앞에서 제가 잭슨이 천재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이 영화는 재능보다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살펴봐야 할 건 영화에서 잭슨과 앨리, 앨리와 잭슨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고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가 일 것입니다. 그걸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제가 앞서 말한 <스타 이즈 본>은 '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들려주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면 여기서 말씀드릴 건 <스타 이즈 본>이 그 자체로 훌륭한 사랑 영화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누군가와 처음 신체접촉을 했을 때 그 순간이 어떤 강렬한 기억처럼 각인되었던 적이 아마 있으실 텐데요. 이 영화는 잭슨과 앨리가 만나는 매 순간 그 점을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하고 있습니다.
드랙 바에서 공연 중인 앨리가 잭슨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앨리의 표정, 잭슨이 분장실에 왔을 때 앨리가 테이프로 붙인 눈썹을 잭슨이 떼는 장면, 술집에 갔을 때 앨리의 코를 잭슨이 만지는 장면, 떠올려보시면 약간의 슬로모션을 활용하면서 그 신체 부위를 영화가 아주 가까이에서 보여줍니다. 뒤에 가면 클로즈업의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는 장면이라든지, 아니면 앨리 역시도 청력에 문제가 있는 잭슨의 귀나 옆얼굴을 자주 만집니다. 여기서 영화 뒤로 갈수록 아주 가까운 클로즈업의 촬영이 줄어드는 건 점차 두 사람이 친밀해져 이미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겠죠.
클로즈업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공연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데요, 보통의 음악 영화에서 인물들이 공연을 하는 대목을 떠올려보시면 주로 부각되는 건 그 공연에 많은 사람들이 왔다, 혹은 많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 공연을 즐기고 흠뻑 매료되어 있다, 이런 것들입니다.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이 무대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는 걸 부각하는 카메라 워킹이 주를 이루죠. 그런데 <스타 이즈 본>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건 무대 위에 선 아티스트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한 그 공연장 무대에 서 있는 아티스트의 뒷모습입니다. 이건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공연을 하는 가수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 브래들리 쿠퍼가 어느 지인의 공연을 무대 뒤편에서 관람했을 때의 경험을 살린 것이라고 하고요. 이 영화가 기존에 있던 원작을 거의 대부분 따른다고 말씀드렸지만 촬영 방식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것을 시도한 겁니다.
공연 장면을 찍기 위해 <스타 이즈 본>이 택한 방식 역시도 독특합니다. 공연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역 배우들로 채우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단역 배우들을 쓰고 뒤쪽은 컴퓨터 그래픽 같은 것으로 구현하거나 합성을 하잖아요. 그런데 <스타 이즈 본>은 글래스턴배리 같은 실제 공연장이나 록 페스티벌에 찾아가 그 무대를 씁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한 10분 그 정도로 협조를 구하고 관객들에게도 "저희가 <스타 이즈 본>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다"라며 잠시 양해를 구하고 거기서 라이브로 촬영을 한 겁니다. 유튜브 찾아보시면 촬영하고 나서 레이디 가가가 관객들한테 고맙다고 자기 히트곡인 'Bad Romance' 무반주 라이브로 불러주는 장면도 나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1976년작의 주연 배우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록 페스티벌에서 자기 무대를 <스타 이즈 본> 제작진에 잠깐 빌려주었다는 뒷 이야기도 있는데요. 이렇게 이야기 듣고 보면 아 실제 공연장 가서 잠깐 빌려서 쓸 수도 있지 싶겠지만, 보통의 음악영화들이 써온 방식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영화만의 특장점도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잭슨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어 다행이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앨리의 노래를 보면 "해가 지고 밴드가 노래를 멈출 때"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미 예정된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잭슨의 노래에는 또 "이제 옛날 방식은 사라질 때인가 봐"라는 노랫말도 등장하죠. 그렇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스타 이즈 본, 스타 탄생입니다. 스타 탄생은 물론 앨리를 지칭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영화의 제목에는 'The'가 아니라 'A'가 붙어 있습니다. 더 스타 이즈 본이 아니라 어 스타 이즈 본. 정관사인 'The'는 특정한 어떤 한 대상을 가리킬 때 쓰입니다. 부정관사인 'A'는 정해져 있지 않은 그저 하나의 대상을 가리키거나, 수많은 것들 중에 어떤 하나를 말할 때 씁니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앨리라는 바로 그 사람만이 스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들려줄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때 우리는 스타가 될 수 있다, 스타로 태어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재능이 있다고 아무나 다 스타로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영화는 초반부터 강조하고 있고, 앨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잭슨이라는 사람을 만나 잭슨으로부터 이야기를 얻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배우 정려원 씨는 이 영화의 개봉 당시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것을 공유하고 같은 것에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그것이 단 한번 일지라도."라는 감상평을 남긴 적 있습니다.
이 영화를 사랑 이야기로 본다면 왔던 것으로 돌아갈 수 없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사람을 만나고부터 내 인생의 방향과 내 삶의 이야기가 영원히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기쁨의 눈물과 함께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혹은 이 영화를 예술가의 이야기로 본다면 좋은 이야기라는 건 반드시 새롭고 전에 없던 것이어야 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들려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이야기가 된다는 말을 하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모든 사운드트랙은 전부 오리지널 스코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좋은 노래는 한 번만 듣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 되풀이해서 듣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 노래를 다시 꺼내서 듣기 마련이죠.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적어둔 감상평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리면서 제가 준비한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별은 거기 있다는 것 자체로 이미 별이지만, 그 빛을 누군가가 바라봐줄 때 진정으로 탄생한다. 놓인 환경이나 위치보다는, 스스로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빛을 얼마나 잃지 않고 지켜내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누군가는 타고난 재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그 타고난 것마저도 사람으로 인해, 타인으로 인해 변화를 겪는다. 어떤 재능은 썩고, 어떤 재능은 새롭게 발견된다. 사랑도 꿈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재능'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살면서 겪어가는 것이듯이. 누구나가 원하는 바를 다 성취할 수는 없는 세상이지만 삶에는, 누군가 단 한 사람,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새로운 쪽으로 뒤바꿔놓는데 그 전혀 다른 곳에서도 여전히 나를 '나'이게 해 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타난다. 무수히 많은 별들 중 단 하나. 나에게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