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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07. 2020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엔터테인먼트

영화 '좀비랜드: 더블 탭'(2019)에 관하여

<좀비랜드: 더블 탭>은 과연 가치 있는 속편이었을까


<좀비랜드>(2009)에 이어 10년 만에 선보인 속편 <좀비랜드: 더블 탭>(2019)은 전작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및 주요 출연진, 심지어 포스터까지 전편과 겹치거나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초기의 기획이 극장용 장편 영화가 아닌 TV 시리즈였으므로, (작중 언급되는 좀비로부터 살아남는 규칙이 32개가 넘으니까 적어도 32회 분량의 시리즈였을 것이다) 영화로 만들어졌다 해도 그것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일은 그 자체로 이상하지 않다.


<좀비랜드: 더블 탭>이 <월드워Z>(2013)나 <부산행>(2016)처럼 본격적으로 전염병과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로 인한 대재앙을 다루는 작품이라기보다 어디까지나 코미디를 지향하는 작품이므로, 무엇보다 ‘좀비’라는 소재 자체가 엄밀히 현실적인 것은 아니겠으므로, 이 영화를 말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현실적인 내용과 흐름을 따지는 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콜럼버스’(제시 아이젠버그)가 ‘좀비랜드 합중국’이라 부를 만큼 좀비로 인해 사회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사회에서 10년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이 <좀비랜드: 더블 탭>에 등장하는데, 식량은 그렇다 치더라도 비폭력을 지향하는 ‘바빌론’의 사람들은 어떻게 계속해서 살아남았을까? 게다가 무기를 모조리 녹여버린 채 악기 연주를 하고 폭죽을 터뜨리는 등의 행동도 인근 좀비들의 주의를 제대로 끌어모았을 텐데 방어 수단이라고는 입구의 철문 밖에 없는 이들이 온전히 생존하는 게 가능했을까. 게다가 ‘콜럼버스’가 언급하는 ‘호킹’이나 ‘T-800’처럼 여러 면으로 진화한 좀비들이 등장하는데 높은 벽을 타고 오르는 좀비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영화 '좀비랜드: 더블 탭' 스틸컷


이런 식으로 하나 둘 생각하다 보면 <좀비랜드: 더블 탭>에는 적지 않은 구멍이 발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의 성격을 지녔음을 고려한다고 해도 반드시 나왔어야만 하는 속편의 느낌보다는 ‘만들 수 있으니까’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속편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2017년경 이미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전편의 주역들이 다시 의기투합해 스스로 즐기며 만든 팬 서비스 차원의 속편’에만 그치지는 않는 가치가 <좀비랜드: 더블 탭>을 다시 보면서 새삼 다가오기도 했다. 특히나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좀비랜드: 더블 탭>은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의 결과물로도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 다뤄보려는 이야기는 루벤 플레셔 감독의 <좀비랜드: 더블 탭>을 통해 생각한 것들을 전편인 <좀비랜드>를 비롯해 속편 ‘더블 탭’과 같은 해 공개된 짐 자무시 감독의 <데드 돈 다이> 등을 연관 지어서 떠올려 본 기록이다.


세계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기


많이 알려지고 회자된 것과 같이, 루벤 플레셔 감독과 작가 렛 리즈와 폴 워닉, 그리고 네 명의 주역 우디 해럴슨, 제시 아이젠버그, 엠마 스톤, 아비게일 브레슬린 모두 2009년과 2019년 사이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감독은 <베놈>(2018)을 흥행시켰고 두 작가는 <데드풀>(2016)과 <데드풀 2>(2018)을 연이어 선보였다. 배우들 역시 그동안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을 하고, 아역 스타의 이미지를 벗어나 성인 배우로 거듭나는 등 <좀비랜드> 때와는 많이 다른 위치의 배우가 되었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이전과는 달라진 사람들이 된 이상, 국내판 시놉시스에 적힌 ‘좀비로 세상이 망한지 10년, 자신들만의 재능을 발휘하고 생존 규칙을 지키며 여전히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희한한 가족 탤러해시, 콜럼버스, 위치타, 리틀록’이라는 내용은 글자 그대로 시놉시스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영화 순 제작비가 전편의 2,300만 달러에서 속편이 되자 4,200만 달러로 불어난 과정에는 단순히 외적인 스케일이 커진 것만이 아니라 10년이라는 간극을 메우기 위한 비용이 들어갔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세계관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미리 당겨 이야기하면 <좀비랜드: 더블 탭>은 이 점에서 해답을 잘 찾은 경우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빌론’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이라든가 ‘호킹’이나 ‘T-800’, ‘닌자’ 같은 진화한 좀비들의 존재, 혹은 네 사람 외 다른 생존자들이 있었다는 설정은 그것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적어도 전편에 이어 이 영화를 관람할 관객들에게는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콜럼버스’의 생존 제 첫 번째 원칙이 확인 사살이 아니라 ‘유산소 운동’인 것과 마찬가지다. 예컨대 그에게는 총을 잘 쏘거나 안전벨트를 잊지 않고 챙기는 것보다 지구력이 중요한 생존 기준이다.


영화 '데드 돈 다이' 스틸컷


비슷한 듯 다른 2019년 두 편의 ‘좀비 영화’


<좀비랜드: 더블 탭>보다 몇 개월 앞서 공개된 <데드 돈 다이>는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하위 범주 안에서 놓고 보면 <좀비랜드: 더블 탭>과 외적으로 유사해 보였다. 좀비 영화는 이래야 한다는 관객들의 기대 혹은 통념을 애초 거부하는 듯 보이는 두 편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유사성은 몇 가지 있다. 일단 좀비를 재앙이라는 표면적 환경으로서가 아니라 유머를 만들기 위한 수단 혹은, 시체가 되살아 움직인다는 소재 자체로 쓴다는 점이 그랬다. <좀비랜드: 더블 탭>에서 ‘콜럼버스’가 내레이션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관객을 향해 이야기의 발단과 자신의 생존 규칙을 설명하는 것처럼, <데드 돈 다이>에서도 ‘로니’(아담 드라이버)는 영화의 시나리오와 사운드트랙 언급을 하며 영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위치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게다가 차에서 노래만 틀면 계속해서 같은 곡이 나온다!)



그러나 <데드 돈 다이>의 캐릭터는 생동감 있는 인물이라기보다 짐 자무시가 (아마도 의도적으로) 설계해놓은 메시지 구현의 수단처럼 느껴진다. ‘로니’는 “예감이 좋지 않다”, “끝이 안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이나 식당 점원 등 그들로 인한 사상자를 보고도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타지에서 온 10대 여행객들의 주검을 보고는 좀비화를 막기 위해 거리낌 없이 목을 내리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겉으로 감정 변화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 외에 ‘로니’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조’(셀레나 고메즈)의 목을 내리치기를 망설이는 한 번의 순간 역시 인물의 감정적 동요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영화와 같은 제목의 ‘스터질 심슨 음반’이 옆에 놓여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로니’는 그를 연기한 아담 드라이버(그리고 짐 자무시)의 전작 <패터슨>(2016)에서처럼 쉽사리 동요하지 않는 평정심의 화신 같은 인물이지만 <데드 돈 다이>에서 그 모습은 자신의 말처럼 어차피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나리오를 읽어봐서) 알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일 따름이다. ‘로니’와 함께 순찰하는 서장 ‘클리프’(빌 머레이) 역시 마찬가지다. 오후 8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아직 수거되지 않은 죽은 이의 시신을 곁에 둔 채 홀로 당직을 서는 일도 대부분 잠으로 채워진다.


‘좀비랜드식’ 유머와 ‘데드 돈 다이식’ 유머의 결은 다르지만, <데드 돈 다이>의 캐릭터는 산발적이고 나른한 농담을 던지며 예정된 결말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물질주의적 소비 풍조를 향한 비판을 좀비라는 소재와 특정 단어를 반복하는 등 그들의 모습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바탕에 감독과 배우 특유의 풍자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데드 돈 다이>는 표면적으로는 여타의 좀비 영화들과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는 방식으로 좀비 영화의 기원을 충실히 따른다.


영화 '좀비랜드: 더블 탭' 스틸컷


사소함으로 채워지는 일상


반면 <좀비랜드: 더블 탭>은 전편이 그랬듯 풍자나 비판 같은 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전편에서 유사 가족이 된 네 명은 백악관에 들어가서도 집무실에 앉아 “내가 대통령 했으면 잘했을 거야”라고 말하거나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를 보고 “저 분이 바라봐 주시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지”라고 말할 뿐 정치 농담 같은 건 꺼내지도 않는다. 대통령령이라며 웨슬리 스나입스를 사면하는 등 어디까지나 ‘배우 개그’에 충실하다.


<좀비랜드: 더블 탭>에서 언급되는 ‘콜럼버스’의 생존 규칙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은 역설적이게도 ‘사소한 것들을 즐겨라’다. 이 32번째 규칙은 ‘콜럼버스’가 만든 게 아니라 ‘탤러해시’(우디 해럴슨)의 말을 듣고 메모한 것이다. 백악관에 들어와서도 이들은 팔씨름이나 킥보드 경주를 하거나 산타 복장을 하고 선물을 교환하는 등 지극히 삶의 일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의 행동은 지극히 평범하게 상상할 수 있는 ‘내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면’ 같은 종류의 바람이 실현된 것에 불과해보인다.


생존 자체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좀비랜드: 더블 탭>의 인물들은 잘 보여준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생존이라 함은 위험으로부터 살아남는 것 그 자체를 말하거나 재앙을 종식시키고 인류를 구하는 등의 더 큰 사명을 뜻하는데, <좀비랜드: 더블 탭>에서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잡초가 무성해진 백악관의 전경을 멀리서 보여주는 컷에는 고스란히 외부를 걸어다니는 좀비들의 모습이 외벽 너머로 잡힌다. 무엇보다 좀비를 죽이는 일은 소탕이 아니라 유희다. 당장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좀비 킬’은 폐허가 된 마트에서 ‘탤러해시’가 먼저 총을 쏘려는 ‘콜럼버스’를 제지한 후 던진 술병을 자기 총으로 쏘아 깨뜨린 뒤 눈앞의 좀비를 향해 이어서 격발하는 장면이다. 드라마적 설정인 ‘이주의 좀비 킬’ 같은 것도 좀비를 많이 죽이거나 소탕하는 게 아니라 높은 곳의 피아노를 떨어뜨리거나 피사의 사탑을 무너뜨리는 등 가장 기발한 방식으로 좀비를 죽인 이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라는 ‘콜럼버스’의 언급은 허풍이 아니라 정말인 것이다.


이 사소함이라는 키워드는 <좀비랜드: 더블 탭>이 전편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비롯한 것으로도 보인다. 전편은 사람들이 좀비로 변한 세상에서 서로를 믿지 못해 이름이 아닌 목적지로 서로를 부르고 총을 겨누거나 가진 것을 꾀로 빼앗아야 했던 네 인물이 점차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였다. 놀이공원을 벗어난 이들이 주인 없는 백악관에 입성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속편 ‘더블 탭’은 자연히, 이미 가족 같은 관계가 된 이들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보여줘야만 했을 것이다. 10년 동안 각지의 좀비들을 죽이고 다녔다고 하는 건 오히려 이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므로, 워싱턴으로 무대를 옮긴 네 사람은 전직 대통령들의 초상과 기념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백악관을 ‘집’으로 삼는다.



비일상적인 상황 속에서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중요한 것은 캐릭터의 세부를 만드는 일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물론이고 평소에 취미나 스포츠 등 무엇을 좋아하는지, 타인과 대화할 때의 화법은 어떻고 어떤 영화나 배우를 좋아하는지와 같은 것들도 물론이다. ‘탤러해시’가 트윙키 과자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나 그가 <고스트 버스터즈>(1984)의 빌 머레이를 비롯해 엘비스 프레슬리 등 자신의 ‘덕질’ 취향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직접 표현하는 데 서툴러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어디론가 떠나는 ‘리틀록’(아비게일 브레슬린)의 행동도 되풀이된다.


영화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기념품을 파는 호텔이 등장하는 건 ‘콜럼버스’, ‘탤러해시’, ‘위치타’(엠마 스톤), ‘리틀록’ 외에 다른 생존자들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 속에서도 부각되는 건 ‘탤러해시’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상과 신발을 설렌는 표정으로 착용해보는 것이나 ‘콜럼버스’가 호텔에 방문한 ‘플래그스태프’(토머스 미들디치)와 서로의 생존 규칙 대결을 하는 대목이다. (생존 규칙의 다양함 자체가 이 영화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대변하기도 한다.) 촬영감독 정정훈의 카메라를 통해 담긴 액션 신들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액션 자체보다 그것을 행하는 캐릭터의 표정 혹은 리액션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 어떨지.


영화 '좀비랜드: 더블 탭' 스틸컷


일상을 통해 비로소 만들어지는 입체적인 캐릭터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 영화는 각각의 인물들이 지닌 사연이나 그들의 성격을 대충 생략하거나 중요할 수도 있는 생애의 맥락을 건너뛰기 쉽다. 그러나 <좀비랜드: 더블 탭>(그리고 <좀비랜드>)은 자신의 세계 속 여러 모습들을 열거하는 대신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정확히는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 혹은 세상을 구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전편에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느라 바깥 세상이 ‘좀비랜드’로 변한 것도 몰랐던 ‘콜럼버스’는 좋아하는 여성과 가정을 꾸리는 것 정도가 꿈인 소박한 인물이었다. 속편 ‘더블 탭’에서는 사랑에 빠지게 된 ‘위치타’와의 결별과 화해가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전편에서 트윙키를 찾아 마트를 샅샅이 뒤지며 스노우볼 따위는 필요도 없다며 성을 내던 ‘탤러해시’는 10년이 지나 유통기한이 남은 트윙키는 구할 수도 없게 된 속편의 세계에서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한편 호텔에서 만난 ‘네바다’(로사리오 도슨)와도 공통의 취향을 통해 친밀해진다.



전편에서 ‘콜럼버스’와 ‘탤러해시’의 총과 차를 빼앗는 등 철저히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최적화 한 인물처럼 보였던 ‘위치타’는 10년이 지나 동생 ‘리틀록’을 향한 미안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마침내는 정을 주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고 ‘콜럼버스’와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10년이 지나 성인이 된 ‘리틀록’은 여전히 자신을 꼬마 아이처럼 취급하고 과잉 봏호한다고 여기는 ‘탤러해시’를 떠나지만 결국 그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인 총을 통해 후반부 바빌론에서 벌어지는 좀비 죽이기 작전의 종지부를 찍는다.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코미디 영화에서 그 캐릭터의 일상이 중심이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같은 출연진과 제작진이 만든다 해도 10년의 시간을 잇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그리고 그 점을 <좀비랜드: 더블 탭>의 시나리오와 연기는 해낸다. 좀비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인물들의 이야기였다고 해도 거기에 유머와 사연을 넣는 일은 가능했을 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업 영화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한 재료에 그쳤을 것이다. 제목부터가 테마파크를 연상케 하는 ‘좀비랜드’와 그 속편 ‘더블 탭’은 서로 비슷한 형식을 반복하되 폐허된 세계 속 유사 가족의 탄생 - 그 가족의 반목과 화해로 요약되는 과정을 10년에 걸쳐 다룸으로써 살아남기를 넘어 ‘살아있기’의 영역에서 캐릭터를 구축한다. 어쩌면 이들이 세상을 구하는 일에 관심 없는 것도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변화에 순응하는 나름의 방식이겠지만, 이는 진정 체념과 비관이 아니라 ‘이미 이렇게 된 세상’에서 생존법을 터득해가는 과정에서 나오며 거기에는 외로움을 잊게 하는 타인과의 유대감, 그리고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태도가 있다. 그리고 이건 <데드 돈 다이>가 풍기는 비관과는 구분된다.



세상에 필요한 영화 혹은 그 속편을 고민하는 일


<데드 돈 다이>와 <좀비랜드: 더블 탭>의 차이는 좀비를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결말이 안 좋을 거라고 예견한 채 그것을 향해 느리게 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예정된 것처럼 좀비로 대변되는 비판적 메시지로 향한다. 그러나 좀비를 죽이는 일을 생존 투쟁이 아니라 유희로 승화시킨 이들의 이야기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존하는 일상과 그 안팎의 희로애락을 다룬다.


한편으로 <데드 돈 다이>를 향해 짐 자무시 감독의 다른 영화보다 밋밋한 반응이 돌아은 건 현대사회의 분별없는 소비를 향한 비판 자체가 그다지 새롭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순간순간에는 웃길지 몰라도 결국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결말은 그 상징성과 메시지 자체가 유의미한 것일지라도 방식에 있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LA타임즈의 저스틴 창은 “짐 자무시의 비관적 결론에 공감은 할 수 있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피로감을 주고 생기가 부족하며 자기만족적”이라고 <데드 돈 다이>에 대해 평하기도 했다. 같은 연도라 해도 공개된 시기도 다르며 제작비도 지향점도 상이한 두 편의 영화를 단순히 좀비라는 소재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일선상에 놓아두는 일이 무리에 가까운 것일 수는 있다. 게다가 좀비가 나오고 유머가 나온다고 해서 한 영화에 있지만 다른 영화에는 없는 특징을 언급하거나 지적하는 일 자체가 유의미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좀비랜드: 더블 탭>은 뉴욕타임즈의 A.O. 스콧이 언급한 것처럼 애초 목표점을 낮게 설정('Sets the bar low')해서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영화다. 목표라고 한다면 전편처럼(만) 만드는 것 혹은 전편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을 테다. 가령 좀비 창궐의 진원지가 밝혀진다거나 혹은 네 명의 주역 중 누군가가 죽는다거나, 아니면 이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혹은 자신의 원래 목적지(곧 각자의 가명)로의 여정을 다시 떠나기로 결심하는 등 극적인 변화가 행해졌다면 <좀비랜드: 더블 탭>은 다수의 혹평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추가 설정을 더하면서 캐릭터의 일관된 특징을 유지한 채 오히려 전편이 구사했던 유머를 반복하거나 되가져오는 방식으로 <좀비랜드: 더블 탭>은 ‘확인사살’하듯 동일한 타깃을 한 번 더 겨냥하고 거기 어느 정도 적중한다. 장르를 떠나 오랜만에 나온 시퀄이나 리부트 중 <덤 앤 더머 2>(2014)처럼 혹평을 받는 사례와 <쥬만지: 새로운 세계>(2017)처럼 전편을 뛰어넘는 사례가 확연히 나뉘는 일도 여기서 기인할 것이지만, <좀비랜드: 더블 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1편에서 좀비 분장을 하고 나타나 ‘콜럼버스’의 총에 맞아 죽은 ‘빌 머레이’ 본인이 시점상 1편의 이야기인 영화 말미의 보너스 영상에서 재등장해 ‘재탕’을 서슴지 않는 한편 그 자체를 유효한 유머로 연출해낸다.



오리지널 스토리보다 실화 혹은 다른 매체의 이야기를 각색하거나 철 지난 이야기를 속편으로 꺼내고 마무리 된 시리즈를 한 번 더 만드는 것이 이미 영화계, 적어도 할리우드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영웅이 되어 세상을 구하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듯 각존 리부트와 리메이크, 프리퀄의 범람에도 언젠가는 피로해지지 않을는지. 결국 영화를 이끄는 건 캐릭터, 생생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다. 그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조금씩 서사를 만들고, 그것이 영화의 세계를 이룬다. 나아가 직접 메시지를 전파하거나 주입하려 하지 않아도 캐릭터의 언행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비록 ‘콜럼버스’는 ‘영웅이 되지 말자’는 규칙을 깨고 ‘영웅이 되’는 상황을 전편에서 보여주었지만, 그건 자신이 그동안 좀비보다 광대를 더 무서워했다는 계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좀비 세계에서도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콜럼버스’ 같은 인물이 있다. 좀비를 죽이고 난 뒤 좋아하는 영화의 명대사를 따라하는 인물이 있다. 서로 자신의 생존 규칙을 자랑스럽게 나열하며 ‘누가 더 체계적으로 생존하고 있나’ 경쟁하는 두 인물도 있다. 그리고 ‘이주의 좀비 킬’ 같은 것으로 좀비를 제압하는 일을 생존을 넘어선 놀이로 만든 인물들이 있다. <좀비랜드: 더블 탭>은 재난 자체에서 시선의 중심을 옮겨서,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작은 웃음과 평온한 일상을 담는다. 영화 오프닝의 콜럼비아 픽처스 엠블럼 속 여신이 횃불로 좀비를 제압하는 모습 같은 작은 장난과 유머도 이 영화만의 지향점의 하나처럼 보인다. 개봉 당시가 아니라 지나고 나서야 그 필요성이 다시 느껴지는 영화가 있다. 더 이상 극장만이 아니라 여러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경험하는 시대가 된 이상, 사후의 의미도 중요하게 생각된다. 영화 바깥의 사소한 일상이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영화 안에서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의 의미를.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더 많은 영화에서 이런 낙천성과 삶의 일상성을 보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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