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인터뷰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식민분단을 겪으며 슬픔과 ‘한(恨)’의 정서를 갖고 있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로써 ‘평화’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패권 다툼으로 인해 자주적 외교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운이 ‘외교’에 달려있다고 할 만큼 국제사회에서 다른 국가와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국제사회의 규범이 되는 ‘국제법’ 전문가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국제법을 알아봤다.
이장희 명예교수는 “외교라는 것이 힘 있는 나라는 힘으로 하지만, 힘없는 나라는 원리 원칙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해요. 그래야 침해를 당했을 때 방어도 할 수 있고, 국제법 논리로 국제사회를 설득 시킬 수 있죠”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1876년)’을 맺으며 식민주의적 침략을 받았으며, 1966년 대전협정을 대체한 한미 SOFA 협정 체결로 미군의 범죄에 대해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많은 피해에도 미군 범죄에 대한 재판권이 아직까지 미국에 있는 상황이라 개정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일 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이 이뤄지면서 미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일본의 자위대가 군사행동에 가담할 수 있게 됐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최근 만난 이장희 명예교수는 활력이 넘쳤다. 특히 ‘국제법’의 중요성에 대해선 20대 청년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설파했다.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 회장을 지냈고,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상설중재 재판소(PCA) 재판관이기도 한 그에게 분단국가의 외교와 그 중심이 되는 ‘국제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국제법학계의 권위자로 저명하시다. 언제부터 국제법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
197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시절 유학 온 재일교포 학생에게 민족 차별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부모님이 2차 대전 때 태평양에 끌려갔고, 본인은 나오게 됐는데 일본에 오니까 국적도 뺏기고 외국인 등록령이라고 목걸이를 차고 다니게 했는데, 안 지키면 감옥에 갔다고 해요.
1965년 한일조약이 맺어졌는데도 말이에요. 학교를 졸업해도 학력 인정도 안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도 임용도 안 해주고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찾아보니까 외국인 신분이 아닌 ‘소수민족’으로 분류가 되어 그들이 주장할 권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 이건 국제법을 알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가 힘이 있으면 모르지만, 힘이 없으니까 원리원칙을 제대로 알아서 국제 사회의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 국제법아카데미를 개설하셨는데, 어떤 내용을 배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서 안보외교를 잘해야 해요. 자원이 없어서 지적재산을 투자해 고부가가치인 상품을 팔아 에너지를 사서 쓰는 통상외교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분단이기 때문에 안보외교, 통상외교, 평화외교가 중요하죠. 외교라는 것이 힘 있는 나라는 힘으로 하지만, 힘없는 나라는 원리원칙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하거든요. 그게 ‘국제법’인데 아카데미에선 일반, 심화과정 나누어서 가르치고 있어요.
▲ 힘없는 나라가 국제법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조금 더 보충 설명을 해주신다면.
국제법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에서 시작했어요. 그 당시 국제법은 제국주의, 식민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에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방을 시작했는데, 일본의 강제성이 있었죠. 중국은 1842년에 아편전쟁으로 인한 난징조약을, 일본은 1854년 미일화친조약으로 개방을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개방을 시작한 것은 중국이었지만 국제사회 변화를 빨리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항한 일본은 그것을 이용해 비록 전쟁이었지만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켰죠. 당시 일본이 우리에게 들이 댄 무기가 바로 ‘국제법’이에요. 그 안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 논리가 다 들어있어요. 강화도 조약을 보면 상당히 불평등한 내용이 많죠.
막상 당해보니 우리나라도 국제법 논리로 국제사회를 설득시켜야 한다는 거죠. 당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제법을 맡은 선각자들은 다 국제법에 관심이 있었어요. 좋아서 그런게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죠.
▲ 국제법 주체가 주권국가인데, 그러면 힘 있는 나라는 안 지켜도 되는 것 아닙니까?
국제법의 핵심은 조약과 국제간섭법이에요. 그러면 이런 약속을 잘 만들어야 하고, 또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야 하고, 침해를 당했을 때 방어도 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침략당한 나라는 그것을 정확히 알아야 해요. 억울하긴 한데 왜 억울한지 이유도 모르면 안 되죠.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것은 도덕성, 책임성, 원칙성이에요. 위안부 문제를 보면 일본이 1927년 노예금지조약에 가입해 놓고 여성 성적 노예 행위를 한 것은 위반이거든요.
▲ 정작 현실은 법과대학이 줄어들면서 국제법을 배울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법과대학에서 국제법 기초를 강의해야 하는데, 2010년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헌법, 민법, 형법이라는 필수과목에 몰입하니까 국제법은 찬밥이 됐죠. 전국의 25개 대학이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그 학생이 졸업하게 되면 법과대학이 없어져요. 그래도 이 나라가 국제법이 필요하니까, 올바른 비전을 바라보고 반드시 달성하라고 하죠. 그래서 국제법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고요.
▲ 과거 국제법이 식민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됐다면, 지금은 어떤가요?
오늘날 국제법은 보편적 가치로 발전하게 되면서 ‘평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국가 사이에 전쟁이 없고 간섭하지 않으면 된다는 ‘소극적 평화’였는데 그건 힘에 의해서 유지가 되잖아요. 그에 비해 지금은 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적극적 평화’로 바뀌었어요.
주체도 과거 주권국가 중심에서 국제기구인 유엔, 유네스코 등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개인 등 비국가적 단위도 국제법의 구체로써 기여를 하고 있고요. 대상도 과거에는 정치, 군사, 외교였다면 요즘은 80~90%가 장사에요. 그러니 비정치 비군사적인 교류 내용이 많아졌어요. 이와 같이 국제법이 목적이나 주체, 대상 등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사진, 글 : 김영은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