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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Dec 23. 2020

20201223

26살 마지막 일주일을 살아갈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 우선 이번 한 해 무사히 잘 넘긴 거 축하해. 그래도 작년까지는 한 달에 한 번씩은 한국 갔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도 못하고 계속 홍콩에서 자금난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해서 많이 힘들었지? 한 해동안 건강하고 안전하게 너 자신을 잘 지켜 내서, 무급휴가와 정리해고로 회사가 엉망일 때에도 네 포지션 잘 지켜내서, 그리고 예전처럼 살지 못한다고 낙담만 하지 않고 너만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잘 달려와 주어서 정말 정말 고맙고 정말 많이 수고했어.


대략 3~4월 때와 지금의 네 모습을 비교해 보면 너무나도 달라서 정말 신기해. 예전의 너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너무 많이 내어 주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무래도 약속이 많다 보니 식음료에 돈을 정말 많이 썼던 거 같아. 너는 외부에서 에너지 발산을 하고 싶어 했어. 그랬던 덕에 주변에 사람도 많았고, 화려해 보인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듣곤 했었지. 그래, 지금에 비해서는 정말 많이 화려했어. 바빴고, 화장도 열심히 했고, 호텔에 오고 가는 손님도 많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기회가 많이 찾아왔지. 덕분에 콘퍼런스도 가고, 양질의 인맥도 쌓고, 한국으로 태스크 포스도 두 달 정도 다녀왔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너 역시도 참 열심히 움직였던 것 같네. 


그러다 시대가 변했어. 하늘길이 끊기며 예전 삶에 익숙해져 있던 너는 한동안 절망했지.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서 3~4월쯤에 정말 많이 힘들어했었잖아. 나는 무엇보다도 네가 그때 힘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성장을 키워드 삼아 열심히 움직일 생각을 했다는 게 정말 대견해. 그 당시의 너의 모토가 아직도 기억나. "Rational Human Being".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잡았던 The Selfish Gene. 아직도 반의 반도 채 읽지 못했지만, 오기 반 조급함 반으로 꾸역꾸역 읽어 내려가던 네 머릿속에 갑자기 스쳤던 구절이었지. 작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겨울에는 와인과 함께 이런 비문학도 원문으로 읽어야 비로소 지성인이다' 라며, 알 수 없는 허세에 이끌려 사고 말았던 책에서 그런 영감을 받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래서 너의 여정이 시작되었지. 2년 전 사놓기만 하고 묵혀 놓았던 일본어 문법책을 폈어. 이 책을 마스터하면 JLPT 2급 정도의 문법 실력을 갖게 된다고 써져 있던 작가의 머리말에, 일단 목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2급 정도 하면 일본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래서 시작했어. 처음에는 책을 펴는 날보다 처박아 놓는 날이 더 많았지만, 7월 달에 JLPT 접수를 하고 나니 어딘가 모르게 초조해져서 줄곧 책을 펴놓고 공부하기 시작했지. 대단해. 일본어 공부는 너의 라이프스타일을 많이 바꾸어 놓았어. 시간을 투자할 곳이 생기니까 어떻게 해서라든 공부할 시간을 만들려 노력하게 되었지. 회사에서 일이 없을 때에도 유튜브를 틀기보다는 일본어 공부를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끝내고 나서는 잠시 라운지에 않아 단어를 외우고. 시험이 취소되어서 너무 아쉽지만, 사실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단순히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었던 만큼 너는 너대로 정말 좋은 성과를 거두어 냈어. 

3~4월에 한참 힘들어하며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극복해 보려고 시작했던 운동도 너에게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 내가 기억하는 예전의 너는 항상 살을 빼고 싶어 했지만, 약속이 너무 많아 너 자신을 많이 돌보지 못했던 것 같아. 올해 처음 운동을 시작했던 이유도 사실 다이어트였고 지금도 살을 빼고 싶어 하는 너이지만, 나는 올해 네가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비로소 건강과 웰빙을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 참 기뻐. 최근 네가 체중 재는 습관을 버린 것도 대단한 용기를 낸 것 같아 참 대견해. 운동을 하며 너는 점점 택시보다는 대중교통, 대중교통보다는 걸어 다니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고 그에 맞추어 예쁜 옷보다는 레깅스와 후드 티 같은 편한 옷을 더 자주 입기 시작했지. 남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참 자연스럽고 너 다워서 보기 좋아. 

생산적으로 사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너는 발전과 성취감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리고 너의 그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주식 투자도 시작하고, 코딩 공부도 시작하고, 요즘은 브런치에 좀 더 자주 "뭐라도" 쓰려고 노력하고도 있지. 있지, 나는 네가 참 자랑스러워. 특히 이번 한 해에는 너에게서 너무나도 눈부신 변화를 본 것 같아서 절로 미소가 지어져. 동경하기만 했던 발전과 성장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고, 누가 봐도 가장 중요한 너의 가치관으로서 빛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한 네 수고가 참 고마워. 


지금의 너는 예전의 너에 비해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 매일매일 자신의 업적에 성취감을 느끼며 자신감이 생겼지. 원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있으니 훨씬 행복하기도 하고 말이야. 너의 26살 마지막 일주일도 지금까지 네가 쌓아 왔던 성장형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 별 탈 없이 흘러갈 거라고 생각해.     


27살의 너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26살이 시작될 때 그랬던 것처럼, 나는 네가 일 년 후에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 이 글을 읽고 있을지 알 수 없어. 하지만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 사항은 몇 가지 정도 가지고 있어. 우선, 난 네가 지금의 나보다 더 가치관이 확고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체중은 10킬로 정도 덜 나갔으면 좋겠고, 미용에 더 투자해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깔끔한 모습으로 매일을 살아갔으면 좋겠어. 아, 그리고 나는 네가 2021년 12월 23일에 이 글을 볼 때에는 홍콩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일본도 좋고, 뉴욕도 좋고, 베트남도 좋고, 영국도 좋아. 하지만 지금 내가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홍콩 완차이 집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하였으면 좋겠어.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으로 이직을 고민할(혹은 이미 이직해버린) 정도로 프로그래밍을 능숙하게 했으면 좋겠고-개인적으로는 파이썬까지는 능숙하게 다룰 줄 알면 좋겠네, 일본어도 N2 이상으로 구사했으면 하네. 욕심이 참 많다 그지? 아, 욕심이 아니라 그냥 지금의 너를 내가 죽 써내려 간 걸까? 하하. 


난 너를 언제나 믿고 응원하기에 그 누구보다도 네가 너의 소망을 마음껏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매일 아침 일어나 세면대 거울 너머로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흘러넘쳐. 마치 겨울 땅 속에서 발아할 준비를 하는 새싹처럼 너의 모습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요동쳐. 잘하고 있어. 네가 그리는 모습처럼 미래의 너는 부유하고, 성공적이고, 아는 것이 참 많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너의 그 재능을 필요한 곳에 마음껏 기부하며 살아갈 것이야. You have my full 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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