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최민준의 아들tv를 즐겨본다. 오늘은 이 영상을 봤다.
https://youtu.be/EHL3zbhGggs?si=XhqzGjqHV_B5tc1L
영상 댓글을 보면 아들 뿐만 아니라 남편을 대할 때도 유용하다는 내용이 자주 보인다. 나도 영상을 보다보면 남편이 내게 불만을 토로했던 내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식사 메뉴, 잠자리에 드는 시간, 집안일 수행 등등 남편에게 "~할까?"라고 물어보는게 내 언어습관이었다. 그게 뭐랄까 약간 부드러운 화법?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자기에게 선택권이 없는 문제를 선택권이 있는 것 처럼 현혹시키고, 애초에 자기에게 권한이 있었는데 없어지는 뭐랄까 줬다 뺐는 느낌이랄까 거의 나한테 속고 조금 더 가면 배신당한 그런 기분까지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 내가 습관적으로 "~할까?"라고 했다가도, 바로 덧붙인다. "이거 너 선택권 없어. 그냥 그렇게 하자는거야."
그리고 또 한편으로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다가 어떻게 답을 해줘야할지 모를 때에도 패닉이 왔던 것 같다. 내가 그냥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관심 없는 주제라던가 자기가 왜 그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던가, 자기 의견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다던가, 특히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혼나거나 싸울 것 같을 때에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혼란에 빠졌다. 그래서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남편에게 미리 알려준다. '무조건 내 말이 맞다고 해줘!'
함축적으로 쓰느라 저렇게 쓰기는 했는데, 막상 쓰고나니 굉장히 법적으로 무서운 선전포고 같아졌다.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가볍게 경고했는데, 자신이 그걸 어겼을 때에 돌아오는 처벌이 과도하다고 느낄 때 억울해 했다. 그러니깐 경고는 부드럽게 하기보다는 명확하게 말해주기를 원했다. 또 경고를 어겼을 때에 자신이 마주해야하는 상황이 자신의 과오에 비례하는, 합당한 수준이기를 원했다. 그러지 않으면 분명 내가 기분 나쁜 상황으로 시작했는데 정신차려보면 내가 사과하고 있었다…. 억울해ㅠㅠ 그래서 그런 상황을 방지하고자 나도 경고를 할 때에는 명확하게 하고, 또 잔소리의 양과 수준을 조정하는 식으로 남편이 억울해 하지 않을 수준으로 댓가를 치르게 한다.
반대로 남편이 나에게 사전에 미리 알리고 사후 조치까지 알려줬는데도, 내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멘붕이 왔다. 규칙은 필요없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는 내 태도가 남편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ROTC 장교로 근무한 경험이 여기에서 빛을 발했다. 훌륭한 지휘관의 자세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라는 마음 가짐으로, 남편은 변수에 변수에 변수까지 예측하지 못한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를 예측하기를 포기하고,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도 남편에게 최종 행동 개시를 알려주는 말은 진짜 진짜 진짜 내 준비가 마무리 되었을 때에 한다. 대표적으로는 집에서 나갈 때, 내가 신발을 신을 때가 되어서야 남편에게 "가자!"라고 한다. 그러면 남편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난다. 남편은 서서 기다리는데 혹은 이미 현관에서 신발 신고 기다리는데, 내가 말로는 준비 다 했다고 하면서도 시간이 한참 걸리는 것을 여러번 경험하고 나서는 그냥 소파에 앉아 기다린다. 남편도 진빠지지 않고, 나도 마음편히 준비하는 합의점을 찾은 듯 하다. 하지만 문 밖에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일이 있어도, 남편은 마음을 비운다 ㅎㅎㅎ
생각해보면 본가에서도, 아빠는 엄마를 집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진작에 밖에 나가서 차에 시동 걸고 핸드폰 하며 기다린다. 나는 보통 집 안에서 소파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데, 엄마는 "이것까지만!"을 외치며 집안일을 마무리하거나, 무언가를 막 챙긴다.
이건 영상을 보다가 발견한 점이다. 앞에 첨부한 영상에서 명령할 때에는 눈을 보고, 속마음을 듣고 싶으면 서로 나란히 앉기를 권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여성들은 대화를 위해 브런치 카페에 가서 마주 앉지만, 남성들은 게임을 하던 술을 마시던 공통의 취미를 위해 모여서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남아의 속마음을 듣고 싶을 때에는 나란히 앉아서 무언가를 같이 하기를 추천했다. 생각해보면 남편과 깊이있는 대화를 할 때에는 시선이 나란했다.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자기 전 침대에 누워 각자 찬장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주보고 앉아서 대화를 할 때에는 무언가를 정해야할 때 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사실 꼭 남편 때문만은 아니고, 뭐랄까 나 같은 경우는 좀 이완된 상태에서 내 속마음을 이야기 하기 편해서 그랬던 것도 있다. 그래서 감정이 격양되거나, 싸울 것 같으면 그냥 누워서 좀 릴렉스하고 마음의 경계를 내리고 이야기하는게 좋았다. 그리고 걸으면서 이야기하는건, 일단 우리가 같이 걷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또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하는건 좀 쑤시는데, 걸으면서 이야기하면 일석이조의 느낌도 나고, 또 움직이면 머리도 좀 더 잘 돌아가서 대화가 더 잘 되는 것도 있다.
그래서 대화의 방향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것 같은데, 같이 취미를 공유하니깐 확실히 공통의 언어가 생긴 기분이다. 같이 걷고 자전거 타고, 운동하는 취미가 겹치기는 했지만,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각자만 가지고 있던 취미에 서로 동참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은 게임을 같이 하자고 했고, 나는 노래나 춤을 같이 하자고 했다. 춤은 시간에 맞춰서 연습 장소에 가야하는 제약이 있어서 차츰 안하게 되었다. 대신 요즘에는 주로 게임을 같이한다. 그러다보니 남편이 게임을 하거나, 게임을 더 잘 하기 위해 유튜브를 찾아보는 등 남편이 시간을 쏟는 많은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남편 입장에서는 말로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 자기가 게임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나와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좋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학원에 다닐 때, 어떤 남자애가 학원 점심시간이었나, 학원에 오기 전이었나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왔다. 부모님을 통해 그런 상황을 파악한 학원 선생님이 학생에게 뭐라고 하니, 그 아이는 "게임도 사회생활이에요"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게임을 하는데, 자기만 게임을 안하면 무리에 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게임에 영 취미를 붙이지 못하던 나로써는 게임이 단순히 자기 혼자만의 재미가 아니라 일종의 친구 맺는 방법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그러니 대화할 때에 시선의 방향은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취미를 공유하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한다는 점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듯 하다.
남편과 이런 합의점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이 자신의 입장을 내게 충분히 납득 가능하게 설명해주었고 또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이 내 말에 따라주지 않으면 비열하게도 내게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곤 했다. 남편이 나를 안좋아하는거라며, 남편을 호도했다. (남편아 미안..) 하지만 남편은 나의 저급한 본질 흐리기에 넘어가지 않고, 나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논의를 침착하게 이어갔다. (아주 전략가야) 그런 남편 덕분에 나도 쓸데없는 자존심과 자격지심을 내려놓고 남편의 입장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말을 해도 이상하게 꼬아서 듣는 내가 남편 입장에서도 참 쉽지 않았겠고, 번거롭고 지난한 조정 과정을 무릅쓰는(이라 쓰고, 나의 터무니 없는 비난을 감수하는) 것도 남편 입장에서 쉽지 않았겠지만, 그런 과정을 감수해준 남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런 합의점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