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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May 06. 2024

과학자, 걸어 다니는 과학관

경북 칠곡 꿀벌나라테마파크 탐방기

날짜가 다가올수록 이걸 내가 왜 하겠다고 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모름지기 주말의 묘미는 늦잠과 소파와의 물아일체 아니던가. 토요일 아침, 아니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서울역에서 KTX를 타야 했다. 나의 소중한 주말이 사라지다니, 몹시 애통했다. 게다가 나는 상당히 예민한 기질로 새로운 환경에서 꽤 긴장하는 편이다. 그런데 경북 칠곡이라니, 인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게다가 함께 하는 사람들도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모두 이전에 온/오프라인에서 한 번 즈음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렇게 잘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기에, 후회가 들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는 어쩌다가 과학관을 잃어버렸을까


이번 여행의 타이들은 ‘잃어버린 과학관을 찾아서’로, 함께 떠난 이들은 모두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이들이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며, 과학과 사람 사이에 일종의 다리를 놓는다. 과학을 즐기는 자 과즐러(정엽)의 기획에 나를 포함하여, 과학 여행가 유나(서윤), 과학의 울림을 전달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울림(승현)까지 총 네 명의 탐사대원이 함께 했다. 제각기 다른 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각기 다른 과학 분야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두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 지 1년 미만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덕분에 탐사 중간중간 활동에 대한 고민도 나눌 수 있었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운영하는 전국과학관길라잡이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에는 과학관이 193곳 있다. 과학관을 잃어버렸다니, 그렇다면 이 많은 과학관은 그러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잠시 마음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과학관을 얼마나 자주 찾는지 말이다. 솔직히 말해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통계물리학으로 석사를 받은 나도 과학관을 잘, 아니 거의 찾지 않는다. 과학관을 방문했던 초등학생 시절을 되돌아보면 실망스럽고 재미없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른 나라 과학관은 좀 다를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갔던 김에 방문했던 스페인 발렌시아의 과학관도 그저 그랬다. 유럽의 입자물리연구소 CERN을 소개한다는 점 정도가 특이했다.


조금 더 솔직해지면,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좋아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4호선 대공원역에 있다.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있는 바로 그 서울대공원이다. 같은 전철역에서 내리면 국립과천과학관으로 향하는 출구도 있다. 집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 30분이 넘는 그 먼 거리를 몇 번이나 오갔어도, 국립과천과학관에는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니깐 과학관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이 과학관을 찾고 과학관을 즐겨야 과학관이 존재하는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과학관’을 찾아 나섰다.


이번 탐사에 합류하게 된 이유는 일말의 책임감도 있다. 과학을 전공했는데, 과학관은 좀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류의 역할 의식 말이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과학관을 즐기지 못한다는, 어쩌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일종의 부끄러움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 혼자 가면 재미가 없을게 뻔했지만, 다른 과학 커뮤니케이터들과 함께 한다면 어떻게든 재미를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마음이 뒤엉킨 채로 탐사 당일이 되었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꿀벌나라테마파크


오전 10시 30분 KTX를 타고 김천구미역에서 내려, 과즐러의 차를 타고 꿀벌나라테마파크로 이동했다. ‘테마파크’라는 이름에 걸맞게 꿀뜨기 체험, 꿀비누 만들기, 천연밀랍을 이용한 립밤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나와 유나는 꿀뜨기 체험을 선택했다. 체험장 창밖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꿀벌들을 지켜볼 수 있었고, 해설사 님의 설명으로 문지기 역할을 하는 벌도 찾아볼 수 있었다.


체험 참여자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체험장 옆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공간이 있었다. 체험장 의자들은 크기가 작고 낮아, 아이들에게 적합했다. 이상한 나라에서 갑자기 몸이 커져버린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다른 체험장소를 둘러보니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듯했다. 더 나아가 꿀벌에 관한 전시장 내부에서도 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아이들은 꿀벌나라테마파크를 잃어버리지 않은 듯하다. 더 나아가 어른들도 과학관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났다.


꿀체험이 끝나고 다른 이들과 합류했다. 그 사이 과즐러(정엽)는 칠곡 주민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만나고 있었다. 평소 과즐러의 활동을 관심 있게 보던 분으로, 10대 아들 두 명을 데리고 오셨다. 주말에 엄마가 가자는 대로 따로 나온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했고, 몇 번이고 왔을 과학관에 우리를 만나기 위해 다시 오다니 무엇이든 잘해주고 싶었다. 부끄러움을 타는 듯하면서도 묻는 말에는 잘 답해주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지 물으니, 한 아이가 고생물학을 좋아한다고 했다. 마침 얼마 전에 출간된 고생물학자의 에세이집과,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화석을 주제로 한 책을 추천해 주었다. 탐사를 마치고 헤어진 뒤에 아이들의 후기를 전해 들었다. 과학자라고 하면 근엄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친근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조금은 편하게 다니기를 바랐던 마음이 전달된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들이 ‘과학자’라는 정체성으로 인해서 더욱 특별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를 이어가는 진정한 의미의 과학자는 과즐러 한 명뿐이었지만, 과학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내 머릿속에 정립된 과학자의 영역에 비해 일반인들은 더 넓은 범위의 사람을 과학자로 여긴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대학원을 다니던 지난 몇 년 간 대부분의 시간을 과학자 또는 예비과학자들과 보낸지라, 나에게 과학자는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과학자를 주변에서 볼 일이 없던 아이들의 시선은 내 시야를 넓혀주었다. 예비과학자로서 훈련받다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사람들에 어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였다. 아이들의 후기에서 일종의 실마를 얻었다.



과학자, 걸어 다니는 과학관


과학관을 찾아 떠난 이유는 과학관이 과학을 배우는 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주제가 궁금하다면 유튜브를 검색할 수도 있고, 책을 찾아볼 수도 있다. 유튜브나 책에서는 지식으로서 과학을 접할 수 있는 반면에 과학관에서는 보다 실험과 관찰을 통해 직접 경험하면서 과학을 배울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학을 전공한 나조차도 과학관이 재미가 없었다. 과학관이 제 기능을 찾도록 과학관을 발굴하자는 마음으로 꾸려진 탐사였다.


아이들의 후기를 듣고는 어느 위치에 고정된 건물만이 과학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 혹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나 스스로 과학관이 되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아이들을 만난 우리가 바로 걸어 다니는 과학관이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과학관은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나라는 사람도 내가 잊지 않고 발굴해내야 하는 과학관이었다.


이번 탐사를 함께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지점을 짚어낸 준 탐사원들 덕분에 꿀벌에 대해서 더욱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칠곡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해온 유나 덕분에 꿀벌이라는 과학관의 주제인 꿀벌뿐만 아니라 칠곡이라는 지역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해산하기 전 잠깐 들렀던 양조장에서는 울림의 전공 지식 덕분에 효모와 효모의 작용에 더욱 감탄했다. 함께 과학관을 찾아 떠나자고 기획을 하고 제안해 준 과즐러는 어쩌면 과학관 전시 기획자였다.


스스로 과학관이기를 의식하지 않았지만 다들 이미 과학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과학은 지식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과학을 만들어가고 과학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치는 특별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한 때 과학을 공부했던, 그리고 지금은 과학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잃어버린 과학관을 찾아 칠곡으로 떠난 여행에서 ‘나’라는 과학관과 또 함께 고민하고 나아갈 수 있는 동료 과학관을 얻고 돌아왔다.  게으른 마음을 다독이며 다녀온 보람이 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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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다해(https://linktr.ee/dahae.roh)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단법인이다. 주로 회계/세무를 담당하지만, 사무국 규모가 작아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대고 있다. 부캐로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다. 과학 강연, 과학 글쓰기, 과학책 번역을 하고, 과학 타로도 만든다. 과학과 과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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